‘누군가 처음부터 내 탓이 아니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었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여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모두 여자 탓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 문구들은 서지현 검사가 1월 26일(금)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e-Pros)에 올린 일기형식의 글 중 일부다. 글 속에는 서 검사 본인을 타자화한 ‘여자’가 등장한다. 여자는 수많은 성추행, 성폭력 피해자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어디선가 ‘네가 이러니 그런 꼴을 당했지’라며 수군거리고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글에는 고소를 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2차 가해에 대한 두려움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이 글을 비롯해 방송에서 서 검사가 폭로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성폭행 사건과 당시의 심정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이슈화된 미투 운동(The #MeToo Campaign)은 우리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부당함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미투 운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이하 SNS)를 통해 성범죄 피해자들이 ‘나도 말한다’는 뜻의 ‘MeToo’에 해시태그(#)를 붙여 자신의 피해사실을 고발하는 운동을 뜻한다. 미투 운동은 미국의 영화제작자이자 감독인 하비 와인스타인(Harvey Weinstein)의 성추행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시작됐다. 배우 알리사 밀라노(Alyssa Milano)는 자신의 SNS에 ‘#MeToo’와 함께 자신이 겪은 성범죄를 폭로했다. 이후 수백만 건에 달하는 다른 피해자들의 성폭력 피해 고발이 이어졌다.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퍼진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과 권력에 의한 억압에 저항하는 목소리들이 커짐에 따라 더욱 확산됐다. 이는 나아가 ‘나부터 먼저’라는 뜻의 ‘미퍼스트(#Me_First)’, 미투 운동에 함께한다는 뜻의 ‘위드유(#With_You)’, 부당한 성폭력의 문화는 이제 끝났다는 뜻의 ‘타임스업(#Time’s_up)’ 등으로 이어졌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의 김은희 연구위원은 “타임스업은 기득권 권력 관계에 기반을 둔 시대는 끝났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혁명적인 의미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2018년 초, 타임스업 재단이 설립돼 여성 노동자들의 법률소송비용을 지원하고 성폭력 방관 기업의 처벌을 촉구하는 등 일터에서의 성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미투 운동이 시작됐던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미투 운동은 올해 1월 29일(월) 서 검사의 폭로를 계기로 시작됐다. 서 검사의 증언을 필두로 법조계뿐만 아니라 문학계, 연예계까지 미투 운동이 퍼지며 많은 논란이 일었다. 서 검사의 증언이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피해 사실을 밝히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하기까지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김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기 어려웠던 이유에 대해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증언한 이후 당연하다는 듯 따라붙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나 ‘무고죄’가 피해자들의 입을 닫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강간죄 성립에 요구되는 범죄구성요건인 ‘항거불능’ 수준의 폭력에 관한 사법부의 판례나 정부의 정책대응 의지 부족 등도 영향을 미쳤다.

미투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에도 부당한 성폭력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은 존재했다. 김 연구위원은 “미국의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Tarana Burke)가 성폭력 피해자를 돕기 위해 2007년 설립한 단체 ‘저스트 비(Just Be)’에서 미투가 처음 슬로건으로 사용됐다”며 “우리나라에서도 2016년 9월 김현 시인의 기고를 통해 형성된 ‘#문단_내_성폭력’ 고발과 ‘미술계_내_성폭력’ ‘영화계_내_성폭력’ 고발 등 다른 분야로 번져간 운동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미투 운동에 대해 “그동안 계속돼 온 여성들의 목소리에 이제야 세상이 귀를 기울이고 손을 잡았다”고 덧붙였다.

김 연구위원은 “미투운동을 막연히 낙관하기는 어렵다”며 “가해자들의 ‘사과’에서 보이는 책임 회피식의 전형적인 태도나 가해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서 여전히 우리 사회가 미투운동을 낡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음이 드러난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앞으로도 피해자들의 고발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피해자들의 증언만을 기다리기보다는 그들과 함께 말하고, 그들의 곁에 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용기 있는 폭로를 지지합니다
미투 운동은 연극·뮤지컬계 등 공연예술분야에도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지난달 11일(일) 이명행 배우의 성추행 논란으로 시작된 공연계 미투 운동은 이후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연출, 밀양연극촌장 하용부 등의 성추행, 성폭행 폭로로 이어졌다.

이에 분노한 연극·뮤지컬 관객들은 지난달 25일(일)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서 ‘연극·뮤지컬 관객 #With_You 집회(이하 위드유 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 관계자는 “좋아하던 배우나 제작자가 과거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관객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성범죄자의 공연을 소비했다는 생각에 많은 관객들이 자책했다”며 “누구보다 그들의 작품에 애정을 갖고 있던 관객들이 느꼈을 배신감을 업계에 전달하기 위해 집회를 고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집회 주최 측의 사전 조사에 의하면 대략 6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위드유 집회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연극·뮤지컬 관객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참여한 이번 집회는 ▶성폭행 피해자의 #MeToo 응원과 지지 ▶가해자 비판과 처벌 촉구 ▶피해자 보호 및 재발 방지 대책 수립 요구를 목적으로 진행됐다.

집회가 시작된 오후 3시부터 마로니에 공원은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온 시민들과 취재하기 위해 모인 여러 언론사 기자들로 북적였다. 집회가 시작되자 시민들은 ‘관객은 성범죄자의 공연을 원치 않는다’ ‘#용기있는폭로 #With_You’ 등의 문구가 적힌 종이피켓을 들고 “예술의 근간은 사람이다” “사람을 짓밟는 예술은 없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피켓시위에 참여했다. 이어 피해자의 미투 운동을 응원한다는 내용, 자신이 겪은 부당한 경험이 담긴 내용 등의 자유발언이 그 뒤를 이었다. 자유발언자가 발언을 할 때마다 집회 참여자들은 호응하며 지지의 목소리를 냈다. 

최근 계속되는 성범죄 폭로에 대해 피해자들을 지지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집회에 참여했다는 익명의 한 시민은 “미투 운동과 위드유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성범죄와 같은 부당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함께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민(남·22) 씨는 “지금까지 드러난 범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며 “앞으로도 미투 운동을 통해 성범죄뿐만 아니라 상하관계를 이용한 모든 악행들이 밝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집회 주최 측 관계자는 “가해자에게 관대한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가해자는 합당한 처벌을 받고 피해자는 더 이상 숨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약 4시간 동안 진행된 집회는 비록 쌀쌀한 날씨였지만 참여자들의 열정적인 목소리와 피해자들을 향한 따뜻한 응원 덕분에 무사히 막을 내렸다.

▲ 지난달 25일(일),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서 ‘연극·뮤지컬 관객 #With_You 집회’가 열렸다. 집회에 참석한 진행자와 참여자는 미투 운동(The #MeToo Campaign)을 응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대하는 숙명, 사회에 메시지를 보내다
학내에서도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지하고 미투 운동을 찬동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박수빈(한국어문 17) 학우는 피해자들의 제보에 힘을 싣고자 위드유 집회에 참여했다. 박 학우는 “폭로 후 사회적 시선이 가해자의 범죄행위와 그 행위의 심각성보다 피해자의 신상에 집중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며 “가해자가 처벌받고 피해자가 당당할 수 있는 사회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해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것이다”고 덧붙였다.

본교 공익인권학술동아리 ‘가치’ 역시 지난해부터 미투 운동을 지지해 왔다. 가치의 회장인 장현주(법 17) 학우는 “과거에도 SNS에서 ‘#○○계_내_성폭력’과 같은 해시태그를 이용한 여성 혐오 범죄를 고발하기 위한 시도들이 계속 있었다”며 성범죄 고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가치는 페미니즘 출판사 ‘봄알람’과 함께 ‘참고문헌 없음’ 출간프로젝트의 참여하며 미투 운동에 대한 관심을 이어갔다. 장 학우는 “지난해 발간된 「참고문헌 없음」의 수익은 대부분 문단 내 성폭력 관련 법률비용과 의료비 등으로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가치는 미투 운동대학여성단위연대의 ‘#MeToo 운동’에 여대서명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장 학우는 “우리 사회엔 부당한 권력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차별과 폭력에 더욱 민감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중들 앞에 본인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그들을 응원한다”며 “우리는 함께할수록, 연대할수록 강하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사회 각 분야에선 ‘나도 말한다’는 성범죄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폭로와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과 함께 성범죄에 맞서겠다’는 피해자들의 폭로를 응원하고 공감하는 사회적 운동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사람들의 활발한 움직임에도 미투 운동이 피해자의 고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피해자가 증언을 결심하기 어렵게 만드는 법 제도과 2차 가해 등의 문제들로 아직 우리 사회는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마음 놓고 고발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있지 않다. 지금의 미투 운동이 그저 한낱 일시적인 사회적 사건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는 계기 혹은 과거의 소극적, 수동적이었던 피해자가 ‘증언자’로 당당히 사회에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용기 있는 목소리와 적극적인 연대 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