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행]

만주와 요동을 지배하는 최강국 대한민국을 꿈꾸며

우리 민족의 웅혼한 기상을 느낄 수 있는 유물. 고구려 최전성기 때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나열한 이 비석은 만주 지방을 호령했던 고구려의 찬란한 역사를 말해주는 유물이다. 이 비석을 통해 우리는 현재 중국이 점령하고 있는 랴오둥반도와 만주 지방을 우리 영토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게 되었다.

고구려는 결코 중국의 지방 정권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영토와 인식은 한반도에서 만주와 요동으로 반도와 대륙을 아우르는 넓은 기상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414년 고구려 제19대 광개토 대왕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아들 장수왕이 세운 비석이다. 사면에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높이 6.39m, 너비 1.35~2m에 달하는 한국 최대의 비석이다.

비문의 내용 중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은 제2부의 정복 관련 기사이다. 그중에서도 신묘년 기사는 최대의 쟁점이 되어 왔다. 현재에도 완전한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이 비석이 광개토 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전체적인 내용은 고구려의 성장과 발전 과정에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내용이 광개토대왕릉비에는 699년 신라구원전쟁에 병력을 5만 명 파견했는데 이는 왜와 가야로부터 신라를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보내게 된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보고 있다. 어떻게 보면 698년 신라가 고구려에 사신을 파견하면서, “태왕의 신하 신라왕 천민으로 변해 태왕께 귀의하며 지시를 듣길 원함”이라고 하면서 고구려와의 조공 관계를 체결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은 삼국사기에는 기록이 없는데, 광개토대왕릉비와 70년대 이후 발견된 중원고구려비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가 나타나 있는데 비슷한 내용이 적혀있다. 그리고 고구려왕이 신라왕에게 옷을 하사하였다는 것이 나오고, 신라는 광개토대왕께 제사를 지냈다. 그러한 증거는 신라 영토 내에 고구려 군사들이 주둔하여 신라를 지켜주었고, 천마총에서 호우가 왕의 무덤에까지 들어갈 정도로 중요한 물건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만으로도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중요한 사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비석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우리 민족이 잊고 있던 고구려 광개토대왕을 다시 살리려 할 때 대한민국은 가장 강성한 국가와 영토를 가지게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인이란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만주와 요동을 통해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는 내가 바로 진정한 현재 한반도에 살고 있는 `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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