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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조용한 움직임, 셉테드 디자인
이수연 서가영 기자  |  smplsy94@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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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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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은 밤, 어두운 골목길을 걸을 때면 종종 걸음으로 집으로 향하게 된다. 인적이 드문 어두운 골목길에 ‘셉테드 디자인(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CPTED)’이 적용된다면 어떨까. 셉테드 디자인은 든든한 방범대원의 역할을 할 것이다. 셉테드 디자인이란 도시 환경을 바꿔 범죄를 예방하는 디자인을 말한다. 폐쇄회로 텔레비전(이하 CCTV)을 환한 노란색으로 칠해 잠재적 범죄자들의 범죄 실행 가능성을 줄이는 것도 셉테드 디자인의 예다.

셉테드 디자인은 설계자의 사소한 의도로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넛지(Nudge) 효과’와 연관돼 있다. 넛지 효과는 범죄를 예방하는 셉테드 디자인에 적용돼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을까.

 

강요 아닌 작은 개입,
행동을 바꾸다

넛지 효과라는 용어는 2017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탈러(Richard H.Thaler) 교수의 저서 「넛지」로부터 비롯됐다. 본래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의 의미를 지닌 단어다. 리처드 교수는 이런 넛지의 의미를 확장해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넛지라고 칭했다.


넛지의 대표적인 예로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국제공항에 위치한 남자화장실이 있다. 이 화장실의 모든 소변기에는 중앙 부분에 검은색 파리가 그려져 있다. 검은색 파리는 소변이 변기 주변에 튀는 것을 막고자 고안됐다. 사람들이 눈앞에 있는 검은색 파리를 목표로 삼아 볼일을 보면 주변에 튀는 소변의 양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경제학자인 아드 키붐(Aad Kieboom)에 따르면 검은색 파리를 그려놓은 디자인 하나로 실제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80%나 감소했다고 한다.


책 넛지에서는 검은색 파리가 그려진 소변기를 설계한 사람을 ‘선택 설계자’라고 부른다. 즉 선택 설계자는 검은색 파리와 같은 사소한 의도나 개입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다. 리처드 교수에 따르면 우리는 선택 설계자가 만들어놓은 세상 속에 놓여 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선택 설계자가 설계한대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넛지는 사람들의 선택을 금지·강요하거나 그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방법이 아니다. 단지 작은 개입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리처드 교수는 정부나 사회가 넛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하면 사람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넛지 이론을 잘 보여주는 디자인 중 하나가 바로 셉테드 디자인이다. 어두운 골목에 가로등을 설치하거나 벽을 노란색으로 칠해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것도 셉테드 디자인의 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셉테드 디자인은 잠재적 범죄자들의 범죄 실행 의지를 꺾어 범죄율을 떨어뜨린다. 이처럼 셉테드 디자인은 넛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특정 행동을 강요하지 않고 부드러운 개입으로 선택 설계자가 의도한 행동을 유도한다.

 

셉테드 디자인,
서울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다

서울특별시(이하 서울시) 디자인정책과는 지난 2012년부터 시행된 범죄예방사업에 셉티드 디자인을 활용하고 있다. 노후한 벽을 밝은 색으로 도색하고, 버려진 공간을 리모델링(Remodeling)하여 우범지역의 환경을 개선하는 정책이다. 실제 셉테드 디자인을 이용한 정책은 2012년 4월에 실시된 ‘시민들이 공감 가는 정책’에서 1위를 하며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경기도, 대구광역시, 부산광역시를 비롯해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잇달아 셉테드 디자인을 정책에 포함했다.


서울시 노원구의 경우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일반주택을 대상으로 셉테드 디자인 사업을 시행했다. 이후 2017년 현재 *6대 범죄율은 약 17%가 감소했고, 침입절도범죄의 경우는 50%가량 줄어들었다. 이에 대해 김영재 노원구청 주무관은 “셉테드 디자인을 적극 활용한 이후 범죄율이 감소했다”며 “앞으로 2019년까지 셉테드 디자인의 적용을 늘릴 계획이다”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셉테드 디자인 정책에 전문가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노원구의 경우 지역 주민들도 범죄예방을 위해 주체적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2014년 설립된 ‘담장도색 전문봉사단’은 지역 주민 80명으로 구성돼 있다. 청소년과 성인으로 이루어진 봉사단은 매주 1회씩 노후한 담장을 도색하는 봉사를 한다.


용산구의 경우에도 신흥로에 위치한 ‘해방촌’을 중심으로 셉테드 디자인을 활용하고 있다. 2013년 처음으로 셉테드 디자인을 위한 예산이 투입됐으며 오는 21일(화) 해방촌 주민들이 모여 셉테드 디자인에 대한 자치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렇듯 셉테드 디자인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아직까지 셉테드 디자인을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도 존재한다. 송파구의 경우 서울 문현초등학교(이하 문현초) 앞에 옐로 카펫(Yellow Carpet)을 설치했다. 옐로 카펫은 인도 부분을 노란색으로 칠해 인도 위에 서있는 사람이 잘 보이도록 고안된 디자인이다. 옐로 카펫은 학생들이 신호등의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면서 노란색으로 칠해진 안전한 곳에만 서 있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옐로 카펫의 의도를 인지하지 못한 주민이 많았다. 송파구에 거주하는 이세희(여·43) 씨는 본지 기자의 설명을 듣고, “옐로 카펫을 만든 목적이 있는지 몰랐다”며 “정말로 그것이 효과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셉테드 디자인의 낮은 인지도는 주로 외진 곳에 설치되는 셉테드 디자인의 특성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 디자인정책과 주무관은 “도시 전체가 변화되는 도시 재개발과 다르게 셉테드 디자인은 도시 모든 구역에 적용되지 않아 변화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며 “주민들이 인지하지 못할 뿐, 셉테드 디자인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적은 예산으로 고안된 디자인이다”고 말했다.

골목골목 숨어있는
셉테드 디자인을 찾아나서다

본지 기자는 지난 16일(목)과 17일(금) 이틀에 걸쳐 서울시 노원구, 송파구, 용산구를 방문해 셉테드 디자인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노원구 상계동 당고개역에서 약 5분을 걸어 도착한 불암산의 길목에는 셉테드 디자인이 적용된 벽이 있었다. 벽의 일부가 밝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었으며 그 위에는 ‘공경마을’이라는 문구와 ‘우리 동네는 범죄 없는 안전한 마을입니다!’는 문구가 등산로 안내와 함께 쓰여 있었다. 철판으로 세워진 벽을 노란색으로 칠한 것으로, 전체적으로 회색빛이 도는 골목에 밝은 느낌을 더했다. 어두운 골목을 밝은 분위기로 만들어 범죄율을 줄이고자 한 것이다. 실제 노원구 상계동에서는 불암산 등산로를 잘못 알고 들어온 외부인과 지역주민 사이에 갈등이 있던 적이 종종 있었다. 셉테드 디자인에 등산로 안내를 포함한 이유는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송파구 장지동에 위치한 문현초의 경우에는 셉테드 디자인이 주민들이 신호등을 이용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문현초 근처에는 셉테드 디자인의 일환인 옐로우 카펫이 있다. 저녁 8시 해가 진 시간임에도 횡단보도 반대 측에 설치된 노란 삼각형 모양의 옐로 카펫은 눈에 확 띄었다. 
본지 기자는 옐로 카펫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직접 들어보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초록 불을 기다리던 문현초 학생의 얘기를 들어봤다. 익명을 요청한 한 초등학생은 “학교 주변에서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며 “안전을 위해 옐로 카펫 영역 안에 서 있으려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두 명의 부모인 이영균(남·35) 씨는 “사거리에 세워진 모든 신호등이 일괄적으로 신호가 바뀌고 옐로 카펫도 있어 등하교 시간에 마음이 놓인다”라고 말했다. 현재 송파구에 위치한 문현초는 등하교 시간에 사거리 신호등이 한꺼번에 켜지도록 설계돼 있다. 사고로부터 등하교 시간에 신호등을 이용하는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용산구에 위치한 해방촌에서도 골목골목에서 셉테드 디자인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해방촌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간 곳에는 셉테드 디자인이 적용된 벽화와 CCTV 있었다. 벽화에는 쓰레기의 무단 투기를 하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언제, 어디에, 어떻게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간단한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벽화를 쭉 따라가다 보면 칙칙한 색을 가진 다른 곳의 CCTV와 달리 노란색의 CCTV를 볼 수 있었다. CCTV가 설치된 기둥 밑단에는 매우 밝은 색깔로 ‘SOS’라고 써져있는 그림판이 있었다. 이후에도 해방촌의 길을 계속 걷다보면 꽃 그림이 그려져 있는 벽화도 보였는데 우중충한 날씨와 대비돼 더 밝게 보였다. 셉테드 디자인은 이렇듯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어 범죄율을 낮춘다.


넛지 효과와 셉테드 디자인은 우리의 삶속에 스며들어 있다. 선택 설계자의 작은 의도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셉테드 디자인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우리를 범죄나 위험으로부터 지키고 있다.

*6대 범죄: 강도, 절도, 방화, 살인, 성폭력, 폭력을 포함한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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