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숙케치]

 

그날따라 유독 날씨가 좋았다. 한여름이라는 말은 거짓이라는 듯이 시원하고, 또 적당히 화창했다. 나와 내 친구는 이른 아침부터 역으로 향했다.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철로와 난간이 눈부시게 빛났다.

7월의 끝자락, 나는 요코하마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요코하마는 일본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개방했던 항구도시다. 넓게 펼쳐진 바다와 항구, 그리고 ‘근대’라는 단어를 빚어놓은 듯한 저택에서 낭만적인 바다 내음이 나는 듯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본으로 떠난 내 친구도 요코하마에는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요코하마에 도착하자마자 짠 바람이 불었다. ‘정말로 바다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우리는 차이나타운에서 점심을 먹고, 긴 치맛자락을 팔락거리며 언덕을 올랐다. 슬슬 다리가 아파질 때쯤 이탈리아산 정원이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슬리퍼를 신고 저택에 들어서자 짧은 시간 여행이 시작됐다. 백 년 전, 어느 외교관이 거닐었을 복도를 따라 걷자 마루에서 기분 좋은 소음이 났다. 백 년쯤 됐을 오래된 가구에도 손을 얹어보았다. 마치 동경하는 소설 ‘빨간 머리 앤’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기쁘게도 야마테 지역의 근대 건물들은 서로 가까운 곳에 모여 있었다. 색색의 꽃이 핀 정원을 나와 조금 더 걷자 가톨릭 야마테 교회와 베릭 홀, 에리스만 저택이 차례대로 나타났다. 건물 안을 거닐 때마다 ‘고풍스러운 원피스라도 한 벌 사 올걸’하고 후회했다. 그랬으면 정말 앤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물론 나는 부풀린 소매 원피스 없이도 충분히 행복했다.

어느덧 저녁이었다. 광장을 따라 붉은 햇빛이 떨어졌다. 저녁도 간식거리로 때운 채 서둘러 아카렌가 창고로 향했다. 그 이름처럼 붉은 벽돌로 지어져 웅장하기까지 한 아카렌가 창고의 앞에는 그토록 기대하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바다를 보자마자 입에서 와, 하고 탄성이 나왔다. 세상이 온통 붉고 푸른빛으로 물들어 눈이 부셨다. 노을 속으로 멋지게 점프하는 친구의 사진을 찍어줬다. 사진으로밖에 이 순간을 남길 수 없다니 분한 마음마저 들었다.

떠나는 것이 아쉬워 아카렌가 창고 앞에서 계속 맴돌았다. 얼마나 아쉬웠던지 ‘조금만 더…’를 계속하다가 버스가 완전히 끊겨버렸다. 바보처럼 깔깔거리며 니혼오도리 역까지 걷는 길에 조명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카나가와 현청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요코하마는 눈부셨다.

이혜빈 (IT공학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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