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이 책에서 배운 지식과 살면서 경험한 것이 모두 진실이라 여기며 살아간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명성황후를 시해했던 사람의 후손이 우리나라에 찾아와 사죄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가. 반면 나치에 무지한 상태로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사람이 의심하지 않은 죄로 인해 전범 재판에서 사형을 구형받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전자는 자신의 근본을 생각해보며 조상이 했던 일을 의심하고 성찰한 사람이다. 의심과 성찰은 ‘생각’에서부터 나온다. 그러나 후자는 몰(沒)이념을 생각 없이 따라가 결과적으로 수천만 명의 죽음에 가담한 사람이다.

가장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람들만 있을 것 같은 이 시대에도 의심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많다. 본인이 배워온 종교나 정치, 사상에 대해 오직 진리라고 생각하며 한 번도 의심하지 못하는 사람들 말이다. 심지어 때로는 명백하게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까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과 다른 정치적 이념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특정 세력과 연관 지어 음모론을 만들어 내는 집단이나, 사람을 신처럼 절대적으로 숭상하는 이들은 어떤가. 어린 시절부터 그들은 잘못된 지식을 쌓아왔지만 그것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성찰하지 않았기에, 즉 생각하지 않았기에 타인에게로부터 가장 몰상식한 집단으로 비춰진다. 또 각종 커뮤니티에서 본인들이 바라보는 정치적, 사회적 관점이 세상의 전부인 것 마냥 글을 쓰고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자위하는 경우도 있다. 데카르트가 현대에 살아있다면 이런 상황이 얼마나 비탄스러울까. 그런 사람들을 본다면 데카르트가 살던 중세시대에 비해서 달라진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고 생각할 것 같다.

그의 책에서 ‘이런 일은 아주 힘이 드는 것이므로 조금만 나태해도 나는 일상적인 생활 태도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사실 늘 모든 것을 의심하고 성찰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데카르트에게도 말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존재하기 위해서 ‘생각’을 해야 한다. 의심과 성찰은 모두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앞으로 더 발전하기 위해, 내가 가진 사상과 감각이 거짓되고 오염되지 않기 위해 매일 고민하고, 의심하고, 성찰하고, 생각해보자.

정인지 (작곡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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