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깡’거리는 소리를 내며 철재들이 옮겨지고, 불꽃이 튀며 용접 작업이 진행되는 문래동의 철공소 골목길. 그 사이의 벽화들과 다양한 전시 공간, 여러 공방과 작업실들은 어쩌면 낯설어 보일 수 있다. 철공소 골목길에서 젊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꿈을 펼치며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의 예술 활동은 단순한 창작 활동에 그치지 않고 ‘문래창작촌’을 형성하며 철공소와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본지 기자는 문래창작촌이 어떻게 형성 됐고, 어떤 예술 활동이 진행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 8일(목)과 9일(금) 이틀간 문래동을 방문했다.


문래동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의 작품이 되다
어둠이 내려온 문래동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투박하고 거친 느낌의 철공소 건물이었다. 오래된 철공소 건물들 사이 어지럽게 쌓여있는 철재들을 피해 골목길을 지나자 밝게 빛나는 네온사인이 보였다. ‘유니온’이라고 쓰인 네온사인 간판 위 2층 창문에서는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건물 입구로 들어가 곳곳에 페인트칠이 벗겨진 허름한 계단을 오르니 따뜻한 느낌의 전시 ‘사물이야기’의 작품들이 본지 기자를 반겼다.

사물 이야기는 문래동 주민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물과 얽힌 이야기를 사진과 영상 그리고 미술 작품의 형태로 창작한 전시다. 2층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사물 사진 옆에 붙어있는 손 글씨였다. 문래동 주민들의 소중한 사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담은 따뜻한 손 글씨는 글을 읽는 사람마저 그들의 이웃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사물 이야기 전시는 서울문화재단 소속 문래예술공장의 지원을 받아 ‘2017 문래창작촌 지원사업 MEET(Mullae Emerging Energe-Tic)’의 일환으로 열렸다. 지난 8일(수)부터 시작된 이번 전시는 오는 18일(토)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사물 이야기를 기획한 김진(여·30) 작가는 “문래동 주민들의 이야기를 단순히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를 이해하고자 했어요”라며 “사물이야기를 통해 주민들에게 이웃처럼 다가가 그분들의 진실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력했죠”라고 말했다. 이어 김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문래동’ 하면 철공소만 떠올리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문래동 주민들 각자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연령, 성별,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어요”라고 설명했다.

사물 이야기 전시 활동에 참여한 문래동 주민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자신이 사용하던 *‘글라인더(Grinder)’를 주제로 사물 이야기를 쓴 ‘드림산업’의 김희석(남·34) 씨는 “이번 활동을 통해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철공소 일도 단순 노동이 아니라 무언가를 창작해내는 예술 활동이라고 생각해요”라며 “문래동의 분위기가 예술 활동으로 인해 더욱 밝아지길 바라고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26년째 문래동에서 ‘극동정밀’을 운영하고 있는 박상선(남·57) 씨는 자신이 직접 만든 ‘콤파스’를 주제로 사물 이야기를 썼다. 박 씨는 “매일 공장에서 기계들만 만지면서 일하다가 예술 활동에 직접 참여하며 잠시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어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26년의 세월 동안 문래동의 변화를 모두 지켜봐 온 박 씨는 처음 예술가들이 문래동에 입성했을 때를 회상하며 “삭막했던 공장 지대에 예술가들이 들어와 활동하자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며 친분을 쌓는 등 따뜻한 분위기가 형성됐죠”라고 말했다.
 

철공소 골목에 예술이 꽃피다
젊은 예술가들의 갤러리,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카페, 햄버거 가게 등이 즐비해 있는 문래창작촌은 오늘날 많은 이들이 문화를 즐기는 장소다. 하지만 문래동은 본래 서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철공소가 위치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를 겪으며 규모가 큰 철공소들이 경기권으로 이전해 텅 빈 공간이 됐다. 이후 2000년대가 되면서 2층과 3층이 비어있는 건물에 홍대와 대학로에서 밀려난 예술가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사물 이야기의 김 작가는 “원래 홍대에서 예술 작업을 했지만, 홍대의 임대료가 오르자 비교적 저렴하고 홍대와 가까운 문래동에 작업실을 얻게 됐어요”라며 문래동으로 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오래된 건물을 재사용해 환경은 열악했지만, 조형을 만드는데 나는 소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이 예술가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문래동 건물의 지하에서 플라워 스튜디오(Flower Studio)를 운영하고 있는 이선우(여·35) 씨는 “저렴한 임대료뿐만 아니라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철공소와 예술이 공존한다는 문래동만의 독특한 특성 때문에 문래동에 가게를 차리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이 씨처럼 문래동의 매력에 빠진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모여 문래창작촌을 이뤘다.

문래창작촌을 부르는 단어는 ‘문래예술촌’ ‘예술공단’ 등 다양하다. 한정희 문래예술공장 매니저는 “현재는 200여 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있지만, 이곳에는 여전히 철공소의 기술자들도 많아요”라며 “이를 통합해 부르기 위해 공식적으로는 문래창작촌이라고 불러요”라고 말했다.

문래창작촌의 형성은 독특하다. 문래동은 준공업지역으로 지정돼 재개발이 되지 않았고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예술가들이 직접 문래동을 찾아와 자생적으로 문래창작촌을 형성했다. 남기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정부의 지원으로 시작된 다른 예술촌들과는 달리 문래창작촌은 자발적으로 형성된 후에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된 드문 경우에요”라고 말했다. 문래예술공장의 한 매니저도 “지금까지 한국엔 예술가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대규모의 예술 공간이 없었어요”라며 “문래창작촌은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예술가가 스스로 만든 공간이라는 점이 특별하죠”라고 설명했다.

문래창작촌이 예술가의 공간으로 알려지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낡고 오래된 골목에는 활기찬 분위기의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철공소 건물 사이에는 아기자기한 공예품을 만드는 가게들도 들어서 있다. 사람들은 문래창작촌을 방문해 사진을 찍고 음료를 마시며 문래창작촌만의 분위기를 즐긴다.
 

늘어가는 발걸음, 커져가는 문래동의 걱정
문래창작촌이 활기를 띠고 빛을 발할수록 그 이면에는 그림자 또한 짙어지고 있었다. 문래동 골목길에 그려진 벽화나 철공품으로 만들어진 조형물과 함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철공소에서 일하는 기술자들은 불편을 겪었다. 한 매니저는 “문래동이 예술촌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방문으로 문래창작촌 골목이 번잡해지고 있어요”라며 “이 때문에 관광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철공소 기술자들이 점점 늘고 있죠”라고 말했다. 실제로 철공소 골목 곳곳에는 ‘문래동 풍경에는 일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초상권은 일하는 분들의 권리입니다’ 등의 경고문구가 부착돼 있었다.

문래창작촌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는 이뿐만이 아니다. 창작촌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임대료가 서서히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 재생 사업으로 인해 낙후된 지역이 명소가 되면서 임대료가 올라 원래 있던 주민이나 상인들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문래동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도 나타났던 현상이다. 그러나 남 교수는 “문래동은 대학로, 홍대 등의 다른 명소보다는 임대료 상승이 급격하게 이뤄지지는 않고 있어요”라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무조건 없애야 하는 나쁜 현상은 아니에요”라고 덧붙였다. 임대료가 상승하는 것은 그 지역이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고,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인구의 이동을 유발함으로써 사회 구조의 고착화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여전히 문래동의 철공인과 예술가들에게 부담을 안기고 있다. 더욱이 문래동은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로 예술가들의 발길을 끈 지역이기에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더욱 민감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극동정밀의 박 씨는 “예술가들이 문래동을 찾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상업적인 시설이 점점 늘어나면서 문래동이 어수선해지고 있어요”라며 “임대료가 오르면 창작 활동을 하는 철공인과 예술가 모두 타격을 받아 문래창작촌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어요”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어떻게 완화될 수 있을까. 정부는 임대료의 연간 상승 폭을 제한하고, 영세 상인들의 권리금을 보호해주고 있다. 남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국민 개개인의 행동도 중요해요”라며 “젠트리피케이션의 핵심인 대형 자본을 이용하기보다는 그 지역만의 특색 있는 문화를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죠”라고 말했다.


‘글라인더는 더 이상 돌아가지 않지만 제 꿈은 절대 멈추지 않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제가 공장 일을 하는 데까지는 이 콤파스가 있어 주기를 바랍니다’ 김 작가의 사물 이야기 전시에 참여한 드림산업의 김 씨와 극동정밀의 박 씨가 쓴 손 글씨의 내용들이다.

문래동은 누군가에겐 꿈을 이뤄가는 공간이며 누군가에겐 단순한 일터를 넘어 삶의 일부다. 예술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기다리는 문래동은 철공인들과 예술가들의 꿈과 삶을 담아낼 것이다.
 
*글라인더: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금속 등의 재료를 깎아내는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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