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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수 기자, 편견을 뛰어넘다
박희원 기자  |  smpphw94@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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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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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만이 출입하던 국방부에 당당하게 출입증을 찍고 최초로 문을 통과한 여성이 있다. 국민일보 정치부 소속 최현수(여·57) 기자다. 최 기자는 국가의 중요한 군사작전과 국방 사안들을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방부에서 배포하는 공식적인 보도자료를 꼼꼼히 살피고 군사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국방부와 합동참본부 관리들의 해명도 유의해 관찰한다.

 본지 기자는 국내 유일의 군사 전문 여기자인 최 기자를 만나기 위해 용산구에 위치한 국방부를 찾았다. 최 기자는 다른 언론사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국방부 본청에 자리한 출입기자실에서 근무한다. 국방부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에는 국가를 위해 항상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출입하는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뒤 국방부 본청으로 들어서 이내 밝은 웃음으로 본지 기자를 맞아주는 최 기자를 만날 수 있었다.

 

1.최현수 기자, 최초의 국방부 출입 여기자 되다

1988년, 국민일보가 창간됐을 때 창간구성원으로 들어와 현재까지 기자로 근무하고 있는 최 기자는 대학생 시절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처음 국방 관련 기사를 쓰게 됐을 때, 전공과는 관련이 없었기에 기사를 쓰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병역의 의무를 다하며 군사작전, 무기 등에 대한 정보에 익숙한 남성 기자와는 달리 최 기자는 무기체제, 군사용어 등이 생소했기 때문이다. 최 기자는 기본지식이 부족한 만큼 책과 공개된 자료를 통해 군사에 관한 공부를 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정확한 사실이 담긴 기사를 작성하려 노력했다.

최 기자는 “무기나 군 관련 사안에 흥미를 느껴 기자를 직업으로 삼게 됐죠”라며 “국방부 기자가 되면 국방 사안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최 기자는 국제부, 사회부, 종교부 등 다양한 부서에서 근무하면서도 늘 국방 사안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국제부 재직시절 표면적인 모습만을 보여주는 기사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현상 이면에 흐르는 원리와 이론을 공부할 필요성을 느껴 유학을 결심했다.

최 기자는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국제관계학 석사과정을 밟으며 전쟁에 대해 심도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최 기자는 “유학 당시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 배우는 ‘전쟁과 휴머니티’라는 강의를 재밌게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또 전쟁과 국가건설의 상관관계, 전쟁사의 고전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수강하면서 군사문제에 관심이 깊어졌다. 최 기자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후 다시 국민일보로 복귀해 국제부 기자로 활동했으며 외교부를 거쳐 국방부 출입 기자로 근무하게 됐다. 국방부 기자 시절 국방대학교의 안보과정을 거치면서 군사적인 전문지식을 쌓았고 이어 군사전문 기자로 활동하게 됐다.

최 기자는 지금도 군사전문 기자로서 전문성이 담겨있는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최근 그녀가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미사일’과 ‘핵’이다. 소련 지도자가 쿠바를 핵으로 무장하고 미국과 핵균형을 이루고자 했던 ‘쿠바 미사일 사태’가 최 기자의 미사일과 핵에 대한 관심의 시작이었다. 최 기자는 쿠바 미사일 사태를 보며 “미사일은 무기를 넘어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이후 그녀는 미사일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졌다.

최 기자의 미사일에 대한 연구는 다른 2명의 전문가와 함께 책을 내는 성과로 이어졌다. 지난 7월에 발간된 한반도에 사드(THAAD)를 끌어들인 북한 미사일이 그 결실이다. 세계 미사일의 현황, 미사일의 역사, 미사일의 구동 원리 등을 자세히 다뤘다. 최 기자는 “군사 분야는 끊임없는 연구를 필요로 하는 분야여서 어렵지만 매력적이에요”고 말했다.

 

2.공부에 대한 열망, '기자'의 꿈으로 이어지다

국방부 군사 전문 상주 여기자로서 인정받은 최 기자의 본래 꿈은 기자가 아니었다. 최 기자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외교 안보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곧바로 취직해야만 했다. 그녀는 “일단 직장을 다니고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 했어요”라고 말했다. 공부에 대한 열정은 최 기자가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또 다른 계기가 됐다. 최 기자는 “기자는 사회문제에 직면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기자의 업무가 일종의 공부라고 생각했어요”라며 기자를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기자가 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최 기자는 수차례 낙방이라는 고배를 마셔야 했다. 마냥 놀 수는 없어 학교의 추천을 받아 무역대리점에 취직했다. 좋은 조건이었지만 최 기자의 적성과는 맞지 않았다. 최 기자는 1년 만에 직장을 그만두고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기독교 계통 비영리단체(Non-Governmental Organization)에서 일한 뒤 잡지사에 들어갔다. 잡지 일은 기사도 쓰고 사진 편집도 하고 아기자기한 일 맛이 좋았다. 국민일보가 창간되면서 추천을 받아 일간지로 직장을 옮기게 됐다. 결국 기자일을 하게 된 것이다. 최 기자는 “우리들은 뭔가 하고자 하는 것이 맘대로 안 되면 좌절하곤 하지만 뒤늦게 기자가 되고 나니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이뤄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후배들이 쉽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접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남겼다. 남들보다는 늦게 신문사에서 일을 시작한 최 기자는 “다소 늦은 나이에 기자가 됐지만 어렵고 힘들다기보다 기자란 직업에 애착이 컸어요”라며 본인의 직업에 애정을 드러냈다

대부분이 남성인 국방부 상주 기자들이 그들끼리 정보교류를 해 정보습득에 불편함이 있기도 했다. 최 기자는 국방부에서 겪는 정보습득의 어려움에 대해 “취재에 불이익을 받지는 않았지만, 정보의 제한성이 느껴질 때는 아쉬움을 느꼈어요”라며 여성 기자로서 어려웠던 점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최 기자는 국방부 군사전문 기자로 일할 때, 어려움보다는 오히려 여성 기자라는 사실이 갖는 장점을 더욱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같은 기사를 써도 여기자라는 희소성 때문인지 남들보다 주목을 한 번 더 받을 수 있었던 점이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3. 27년간 걸어온 기자의 길, 그 결실을 맺다

최 기자는 2010년 우리나라 46명의 해군 장병들이 목숨을 잃은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단독·특종기사를 내며 기자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냈다. 최 기자가 특종으로 내보낸 기사엔 취재원의 제보가 많은 도움이 됐다. 폭발력이 강한 화학성분인 *Research Department Explosive(이하 RDX)가 **연돌 에서 발견되고 한글이 새겨진 ***어뢰 추진제가 발견됐다는 기사 역시 취재원의 제보를 통해 쓸 수 있었다. 당시 연돌에서 화약성분이 발견됐다는 사실은 알려졌었지만 그 화약성분이 RDX라는 것은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최 기자는 연돌에서 화약성분이 발견됐다는 다른 언론사의 기사를 본 뒤 이 분야 취재원에게 전화해 성분을 알아낼 수 있었다. 한글이 새겨진 어뢰 추진제의 발견은 취재원이 공중전화를 통해 알려준 사안이었다. 최 기자는 당일 이 사안을 취재하기 위해 하루종일 다양한 취재원들에게 알아봤지만 확인하지 못했다. 이처럼 낙담한 상황에서 걸려온 전화는 최 기자가 특종기사를 작성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취재할 땐 보안이 중요한 국방부의 특징에 따라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취재원 보호가 매우 중요하다. 최 기자는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몇 가지 정보를 약간 바꿔서 기사를 내보내기도 해요”라며 기사를 작성할 때 주의해야 하는 점을 설명했다. 이어 “취재원에게 정보를 받기 위해 신원보호를 철저히 한다는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죠”라며 당시 천안함 폭침 사건 기사를 작성할 때 취재원 보호에 신경 썼던 상황을 덧붙여 설명했다.

최 기자는 천안함 폭침 사건에서 발굴한 특종 덕분에 2011년 ‘최은희 여기자상’과 ‘올해의 여기자상’ 수상의 영예를 얻었다. 당시 천안함 사건 때문에 밤낮으로 열정을 쏟은 터라 많이 지쳤던 그녀에게 기자상은 특별했다. 최 기자는 “그동안 수고했다는 평가와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생각해 아주 감사했어요”라며 소감을 말했다.

그녀는 5년째 국방홍보원이 운영하는 국방TV의 주요 시사프로그램인 ‘국방포커스’를 진행하고 있다. 생활과학부와 외교부 출입시절부터 라디오 방송에 패널로 자주 참석해왔지만 본격적인 방송 진행은 국방부를 출입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김준범 국방홍보원장으로부터 국방포커스 진행을 제의받았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프로그램 진행이었지만 사안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정리하고 부드럽게 이어가는 모습으로 ‘명사회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여성보다는 남성이 많은 국방부에서 일하는 최 기자는 “준비가 되지 않았어도 ‘해 보겠습니다’고 답하는 남성은 쉽게 볼 수 있어요”라며 “반면 여성들은 ‘조금 더 갖춘 다음에 하겠습니다’고 말해 기회를 놓치는 여성들이 많아요”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어 “부딪혀보기 전에는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가췄는지 알 수 없어요”라며 “기회가 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부딪혀야 해요”라고 조언했다. 최 기자는 국내 최초의 여성 군사전문 기자로 인정받았다. 남들은 가지 않는 길에 도전하고 꿋꿋하게 노력해 오늘날의 그녀를 만들었다.

 

*Research Department Explosive(RDX): 백색의 결정성·비수용성 강력폭약 성분.

**연돌: 배기가스 통로의 끝에 연결되어 상갑판에 설치되며, 배기가스를 대기 중에 신속히 확산하며 한편, 통풍력을 일으키는 부분.

***어뢰: 자동장치에 의해서 물속을 전진하면서 군함·잠수함 등에 닿으면 폭발하는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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