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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화정책의 역사[작은 강의]
숙대신보  |  shinbosa@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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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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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프랑스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인이라면 누구나 문화가 국가 이미지를 구축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프랑스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프랑스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중앙정부 주도로 문화 정책을 실행해 왔으며, 이렇게 축적된 문화예술 행정의 노하우와 자부심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영향력 외교’라는 이름하에 문화를 여전히 프랑스 외교의 중요한 축으로 활용하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프랑스의 문화정책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문예 부흥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수아 1세(1494-1547)는 프랑스 문화정책의 효시로 여겨진다. 그 이유는 1539년 빌레르-꼬뜨레 칙령으로 라틴어 대신 프랑스어를 법률, 행정 공식 언어로 채택했고, 왕실도서관에 모든 저작물을 납본하는 제도를 만들었고, 고등교육기관인 콜레주 드 프랑스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루이 13세는 아카데미 프랑세즈를 창설했고, 루이 14세는 그의 재무장관인 꼴베르로 하여금 분야별 프랑스 최고의 장인들을 모아 왕실 제조소들을 설립하게 했다. 왕실 제조소들은 과거 외국에서 고가로 수입하던 물건들을 자체 제작해 왕실에 납품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베르사유 궁을 일종의 프랑스 상품의 전시실으로 삼게 했다. 태양왕은 왕실 제조소들에서 만들어진 상품들을 외국 왕이나 대사들에게 과시하기도 하고 선물하기도 하면서 프랑스 장인의 탁월함을 느끼게 하는 계기로 삼았다. 이것이 오늘날 프랑스 초호화 산업의 근간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프랑스라는 국가 이미지를 위해 도구화됐던 문화 예술이 왕실, 귀족의 전유물이었다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엘리트층뿐만 아니라 가급적 많은 이들에게 접근 가능 하도록 하는 정책을 구현하게 되는 시기가 오게 된다. 이른바 문화 민주화라고 하는 정책을 시행하게 되는 시기는 드골 장군이 대통령에 취임하면서이다. 1959년 우파인 드골 대통령이 좌파 친구인 앙드레 말로를 문화부장관으로 임명하면서 모자이크 상태로 존재하던 문화관련 업무들이 한 곳으로 모이면서 문화부가 창설된다. 이 신생 부처는 드골의 문화에 대한 강력한 정치적 의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정보부 장관이던 말로를 밀어내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낸 우연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연유는 말로가 드골의 문화 자문역할을 하다가 1958년 정보부 장관이 되지만, 알제리 독립운동과 드골에게 적대적인 공산주의 기자들과의 싸움 등으로 각종 정치선전과 검열을 시행해야 했던 드골은 이에 능하지 못한 말로를 정보부 장관에서 밀어내야 했다. 이때 총리실에 근무하던 드골의 가까운 자문위원인 뽕삐두의 조언으로 1959년 말로를 위한 다른 자리, 즉 문화부가 창설되게 된다. 말로는 문화 민주화라는 그 만의 분명한 문화정책을 가지고 일반 대중의 문화 접근성 향상에 이바지했다.

그러나 말로 이후 우파정부의 좌파 예술가들과의 동거는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뽕삐두 대통령의 말로라 불리던 모리스 드뤼옹 문화부 장관은 이런 불편한 심기를 숨기를 않았다. 한 손에는 동냥하는 통, 다른 한 손에는 화염병을 들고 오는 좌파 문화계의 ‘악습’을 너무 솔직하게 언론에 이야기하다가 문화계의 집중포화를 받게 되는 드뤼옹은 이 인터뷰를 계기로 장관직을 내놓아야 했다.

 그러다가 지스카르 데스뗑대통령 임기에 이르면, 문화부는 어두운 시절을 맞이하게 된다. 문화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던 대통령은 국가 사무국으로 부처의 위상을 낮췄고, 예산은 더 축소했으며, 잦은 장관 교체로 문화 정책의 연속성이 없어지게 됐다. 

말로 이후 이 문화에 대한 신념을 확고하게 하는 계기는 1981년 모두의 예상을 깨고 사회당 미테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오게 된다. 20년이 넘도록 우파가 집권해 왔었고,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채 집권한 사회당 정부는 우파가 안하던 것을 시도하고, 새로운 정책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그리하여 자크 랑 문화부 장관은 파리 시민들을 위한 보자르 미술 담당 부처가 아닌 모든 프랑스인의 부처가 되고자 했다. 이러한 야심 찬 정책을 실행하려면 당연히 그에 마땅한 재원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지방정부들과 협력해 예산을 투입하는 문화의 지방 분산화 정책도 펼치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문화부의 역할에 대한 많은 의문과 함께 부처 재편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기술혁명으로 인한 문화 현상에 뒤처지는 문화부, 지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문화부, 각자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문화부 지방 분점인 문화사업지역국(DRAC) 등의 문제이다. 그리하여 문화부의 영역을 관광과 같은 영역으로 확장할 것인지? 아니면 문화가 소비적인 오락개념이 아니고 매우 생산적이며 국가 경제와 지역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생존해 나갈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문시연 프랑스언어문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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