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납치 및 감금 사건의 피해자가 탈출에 성공한 자신의 이야기를 자서전 형식으로 출간한 책이 있다. 이야기 속에서 제3자에 의해 피해자의 목소리가 ‘입막음’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범인이 그녀를 길들였던 방식은 북한 정부가 주민들을 통제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한국 사회가 북한 이탈 주민들에게 강요하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은 북한 이탈 주민들에게 북한에서 살아온 방식과 체계를 부정하고 비난할 것을 강요한다.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주목을 받는 데 비해 그렇지 않은 사람은 통계상의 수치로만 존재하기 마련이다. 일부 언론의 기사를 통해 그네들의 어려운 생활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그들이 토로하는 정착과정에서의 어려움은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한 조언이 아닌, 선의에서 비롯된 베풂에 대한 배부른 불평 정도로 치부된다. 간혹, 정착하기 전의 삶이 그립다고 말하면 그것은 독재체제에 대한 옹호이자, 일종의 배신의 목소리로 비치기 십상이다.

북한을 향한, 북한 주민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저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었네’란 인식변화는 북한 주민들을 ‘보통 사람’의 자리로 되돌려줬지만, 여전히 그들은 우리 눈에 어딘가 모자라고 구제해줘야 하는 사회적 불구자다. 지금껏 그래왔듯 통일이나 남북관계에 대한 담론 역시 정해진 틀을 넘어 가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정권과 북한 주민을 순전히 분리해서 보기란 어렵다. 북한에서의 국가는 주민의 사고를 철저하게 통 제하고 지배하는 의식 그 자체이기도 하다. 오늘날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일본정 권과 일본 국민 대다수의 정서를 결코 분리해서 볼 수 없는 것이다.

「3096일」의 저자이자 피해자인 나타샤 캄 푸쉬(Natascha Kampusch)는 ‘감금 생활 동안 한 권의 책이 가장 소중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사람들의 비난에 대해서도 비교적 담담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범인이 그녀의 삶의 전부였을 때, 책은 유일하게 그녀가 지하 방 너머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였다고 한다. 우리가 북한 주민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들의 목소리를 지우기보단 그들의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 발화되고,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분명 북한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내는 목소리의 위치는 다를 것이며 평양의 어느 10대 소년과 함경도의 50대 여성이 경험한 북한의 모습은 절대 같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북한 주민의 삶과 이야기가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될 수 있길 바란다.

이수민(역사문화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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