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봉준호 감독이 광고에 나와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시나리오를 쓰고, 고치고 또 고친다.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감독이다. 윤제균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나리오를 안 쓰는 순간 초심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기발한 생각이 나면 즉시 휴대전화 메모장에 저장 한다”

영화감독은 두 종류로 나뉜다.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감독과, 시나리오를 못 쓰는 감독.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감독의 영화는 스토리가 탄탄하다.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는 것은 탄탄한 집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집중해서 2시간 동안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능력이다. 「아바타」 감독 제임스 카메론도 스스로 시나리오 작업에서부터 시작했다. 8년 전에 「아바타」의 시나리오를 쓴 다음에 기술적인 구현 방법을 찾아다녔다.

미국드라마의 인기도 창의력 있는 극본의 힘이다. 작가가 대본을 통해서 설계도를 그리면 감독은 그걸 토대로 집을 짓는다. 좋은 대본에 나쁜 배우나 감독은 없다. 하지만 나쁜 대본에 좋은 배우나 감독은 나올 수가 없다.

시나리오나 대본은 철저히 관객을 위한 상품이다. 관객이 보고 즐거워하고, 2시간 동안 세상 시름을 잊을 수 있는 흡인력 있는 이야기여야 한다. 철저히 상품이어야 한다. 상품을 만들 것이 아니라면, 그냥 일기장에 쓰거나 혼자 블로그(Blog)를 하면 된다.

결국 작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라는 건 그 작가의 경험의 최대치를 벗어나지 못 한다. 직접 경험한 범위가 넓어야 좋은 글이 나온다. 소설 쓴다고 세상 경험도 하지 않은 20대가 산 속의 절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치열하고 다양한 경험을 많이 쌓아야 쓸거리가 더 많아지게 된다.

경험이 없으면 취재를 치열하게 해야 한다. 의학 드라마를 쓰기 위해서 최완규 작가는 병원에서 2년 정도 살다시피 했다. 이유 없이 치고 싸우는 장면이 많은 드라마나 영화는 흥행하지 못 한다. 스토리텔링을 위해서 꼭 필요한 거라면 괜찮다. 그런데 관객이 무술 시합 보러 온 거라고 착각하는지, 별 이유도 없이 치고받는 싸움만 치열하게 벌이는 종류는 관객의 외면을 받는다. 이야기 없는 스펙타클(Spectacle)도 곤란하다. 아무리 스펙타클해도 이야기가 시원찮으면 실패다. 이야기 없는 스펙타클 영화는 절대 성공하지 못 했다.

예전에는 ‘블루 칼라(Blue Collar)’ ‘화이트 칼라(White Collar)’가 직업의 종류를 구분했다. 앞으로는 아마도 ‘창조계급(Creative Class)"인가 아닌가로 직업의 종류가 구분될 것이다. 결국은 창조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다. 있던 것을 재조합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창조하건,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 내건, 결국 창조력이 관건이 될 거라고 본다.

건설회사만 공사를 하는 게 아니다. 컨텐츠 산업도 공사를 한다. 그것도 큰 공사를 한다.  잘 하면, 세계를 상대로 한 엄청난 규모의 공사를 한다. 두바이에 100층짜리 빌딩을 짓는 것만 세계적인 공사가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도 세계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공사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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