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야구는 팀을 위한 희생을 기록하는 유일한 스포츠라고 말한다. 타자의 *희생타(Sacrifice Hit)를 통해 주자는 홈에 더 가까워진다. 희생타라는 이름으로 남은 이 아웃카운트(Out Count)는 그 공헌을 인정받아 타격한 횟수에서도 제외된다. 

사회에서도 희생타와 같은 상황을 자주 볼 수 있다. 지난 15일(월) 본지 1332호 3면 ‘민주화에 대한 갈망, 끝내 찾아온 봄’ 기사에서 다뤘던 5·18 민주화운동도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이었다. 10일 동안 광주를 지킨 시민들은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에 맞서 피를 흘리면서까지 민주주의를 연호했다. 자신을 지켜야 할 자국의 군대에 맞서야 했던 시민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물론 희생만이 남은 것은 아니었다. 당시엔 신군부에 의해 언론이 통제당했음에도 광주의 참사는 곧 전국을 넘어 세계로 알려졌다. 5·18 민주화운동의 민주주의 정신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을 통해 보통선거를 이뤄냈다. 동아시아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공로를 인정받아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희생을 통한 발전은 상처를 남긴다. 희생자들의 가족은 평생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5월만 되면 집집이 차리는 제사상 하나하나엔 남겨진 자의 슬픔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진실을 알기 위해 상처입기도 했다. 85학번이었던 익명의 A 씨는 5·18 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알기 위해 이념 서적을 읽었다. 학내 시위에 참여하면 다음 날 아침 경찰서로 끌려가던 시기, 불심검문에 들키면 바로 구속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A 씨는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진실 속에 남겨진 희생을 기억해야 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은 결과는 잊힐 때쯤 아파져 오는 흉터를 남겼다. 

지난 9일(화)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기대하며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이제는 국민을 위하지 않는 대통령을 쫓아내는 데 국민의 피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목소리를 한데 모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광화문 앞에 모인 국민의 목소리는 더 이상 묵살되지 않았다. 

이전 세대가 희생한 결과로 우리는 희생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났다. 국민은 민주주의를 자유롭게 누릴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이를 위해 지금껏 희생한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희생타가 기록으로 남아 타자의 가치를 보여주듯, 우리도 기록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와 희생을 후세에 전해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당연한 것을 요구할 때 희생이 필요한 사회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희생타: 자신은 아웃되는 것을 감안하고 선행 주자의 진루나 득점을 돕는 타격. 희생 번트와 희생 플라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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