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문학기행]

죄수 그루누이가 최고의 향수를 뿌리던 광장(스페인광장)


스페인,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영화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파트리크 쥐스퀸트의 동명 원작 소설(1985)이 지닌 그로테스크 하면서도 주제의 깊은 의미를 잘 담아낸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잘 읽히면서도 뛰어난 묘사가 돋보이며, 근대를 비판하는 철학적 깊이를 갖추고 있는 이 소설은 감각적인 독일 감독인 톰 티크베어에 의해서 영화화됐다.

먼저 원작을 살펴보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세계관이 상당히 아이러니하다는 점이 발견된다. 우리 삶의 목표와 결과는 배반될 수 있다는 점을 그가 미리 간파한 것이다. 향수 제조업자 발디니는 그르누이에게서 향수의 비밀을 모두 알아내고 그르누이를 떠나보냈다. 그 후 행복감에 젖어 잠이 들었을 때, 다리 위에 지어진 그의 집만이 지반이 약해 무너져 내리게 된다.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설정이다. 그르누이 역시 아이러니한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르누이는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최고의 향수를 완성하고 사형장에서 빠져나와 자신이 태어났던 시장통으로 돌아가서 온몸에 향수를 뿌리게 된다. 그러자 가난한 사람들이 미친 듯이 그에게로 달려들며 존경한 그를 가지고자 하고, 심지어 그를 먹기까지 해서 그의 존재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모든 인물이 자신의 욕망을 달성한 다음에는 비참한 최후나 파멸을 맞이하게 되는 작가의 아이러니한 세계관은 영화 속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을 18세기로 설정한 것은 근대적 사유체계의 근원인 데카르트를 비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쥐스킨트는 감각의 영역이 지성적인 모든 것을 누르는 것을 그려서 데카르트의 인간관을 부숴보려는 의도에서, 가장 원시적인 감각이라 일컬어지는 후각을 소재로 이야기를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향수」는 속도감 있는 편집과 색감이 돋보이는 영상미로 주제를 잘 전달하고 있다. 특히 광장에서의 집단광기를 예술적으로 승화한 장면은 영화사에 남을 만한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향수」의 배경이 프랑스라고 해서 파리나 그라스 등 프랑스에서 영화를 찍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 영화는 18세기 분위기가 잘 남아있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의 옛거리(고딕지구)에서 대부분 촬영됐다. 산 필립네리 광장 근처에서 살구 파는 여자를 죽인 우물가 골목, 성당 장면 등을 찍었다. 영화 초반 생선 더미에 버려진 신생아 그루누이가 있던 시장장면도 그 근처이다. 그루누이가 처음 파리 시내로 와 온갖 냄새를 맡고자 코를 킁킁대던 장면이나 처음 향수 냄새를 맡기 시작한 건물도 고딕지구 레이알 광장 안쪽에서 찍었다.

그런데 주인공 그루누이가 사람들 앞에 목줄에 매인 채 사람들에게 추한 모습을 내보이는 첫 장면이나 향수 몇 방울을 손수건에 떨어뜨려 사람들에게 던지자 모든 사람들이 이성을 잃는 장면을 찍은 곳은 만국박람회 때 만들어진 스페인 마을이다. 스페인 마을은 몬주익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다. 몬주익 언덕에는 성도 있고, 몬주익 경기장도 있다. 몬주익 성에는 스페인에 합쳐지기 이전에는 까딸루니아 지방이라는 것을 천명하는 깃발도 있다. 그래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축구 경기는 한일전을 불사하는 지방색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한다.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면서 우연히 알게 된 영화 「향수」 촬영지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게 된 덤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삶에서 이런 행운과 함께할 것이라는 기대는 바로 삶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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