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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컵 예술가’ 김수민 작가
이혜니 기자  |  smplhn92@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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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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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에는 음료가 담긴 일회용 종이컵을 한 손에 들고 있는 학우가 많다. 음료를 모두 마신 사람들은 일회용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발길을 재촉한다. 하지만 일회용 종이컵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김수민(남·37) 작가는 일회용 종이컵 종이 위에 그림을 그려 넣는다.

김 작가는 음료를 모두 마신 일회용 종이컵 위에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그리곤 한다. 본지는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그림을 종이컵 위에 담아내는 김 작가를 만나 그가 자신만의 특별한 그림을 그리게 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일회용 종이컵,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다
김 작가는 ‘컵 아트(Cup Art)’를 하는 일러스트레이터다. 컵 아트는 일회용 종이컵에 그림을 그린 후, 말풍선을 그려 넣어 한 편의 만화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일회용 종이컵에 그림을 그리는 김 작가는 “만화를 본 사람들이 컵에 웹툰(Webtoon)을 담아냈다는 의미에서 ‘컵툰(Cuptoon)’이라고 부른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s, 이하 SNS)에 올린 만화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고 말해줬다.

종이나 캔버스처럼 일반적인 재료가 아닌 곳에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김 작가는 새로운 재료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찾은 새로운 재료는 바로 일회용 종이컵이었다. 김 작가는 “일회용 종이컵의 표면이 둥글다는 특징이 흥미로웠다”며 “쉽게 버려지는 일회용 종이컵에 그림을 그려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물건의 형태를 활용하면 그림에 새로운 의미를 더할 수 있다. 김 작가는 “울퉁불퉁한 물건에 그림을 그리면 외면의 굴곡에서 오는 제약이 있다”며 “그 제약을 그림의 일부분으로 활용할 때 쾌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일회용 종이컵의 모양이 저금통과 닮았다는 점을 살려 그림을 그려내기도 했다. 돈을 넣고 바로 뺄 수 있는 저금통과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지출하는 직장인의 통장은 비슷했다. 이에 김 작가는 일회용 종이컵으로 만든 저금통의 양옆에 구멍을 뚫어 동전이 굴러가게 함으로써 빠르게 사용되는 직장인의 월급을 묘사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에 그림을 그렸다. 일회용 종이컵뿐만이 아니라 머그컵, 도시락통처럼 모양도 용도도 제각각인 물건이 그림 재료가 됐다. 김 작가는 “최근엔 배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며 “둥근 모양을 활용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이컵 위에 기억을 그려내다
김 작가의 그림에는 정장 차림의 회사원이 자주 등장한다. 그림 속 회사원은 업무로 지친 직장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직장인의 애환을 그리는 김 작가는 “살아가면서 강하게 느꼈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된다”며 “20대에 경험했던 직장생활은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한때 가전제품 회사에서 근무했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전혀 상관없는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김 작가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휴식시간이 생기면 꾸준히 작은 메모장에 그림을 그렸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 김 작가는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그만뒀다. 그때부터 김 작가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홍보하기 위해 직접 그림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직장인의 애환이 담긴 김 작가의 그림은 ‘다음 스토리볼(Daum Storyball)’에 연재되면서 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갔다. 직장인들이 출·퇴근을 하며 휴대폰으로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김 작가의 그림 중 직장인들의 심금을 울린 대표적인 작품이 있다. 바로 ‘옥상에서’다. 작품 속 인물은 겹겹이 쌓여있는 컵을 잡고 올라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김 작가는 “옥상에서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직장인의 흔한 일상이다”며 “회사에서 일할 때의 내 모습이기도 했다”고 말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김 작가가 일하던 회사는 5층짜리 건물의 꼭대기 층에 위치해 있었다. 김 작가는 “비흡연자임에도 옥상이 가까워 자주 올라가 이런저런 생각을 했었다”며 “직장을 다니며 옥상에서 자신만의 생각에 빠졌던 기억과 감정들이 작품에 그대로 반영됐다”고 말했다.

직장생활을 그린 그림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교를 다니며 느꼈던 감정, 남녀관계에서의 부조리, 군대에서의 이야기 등을 그리기도 했다. 김 작가는 “그림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의 감정을 그려내는 것은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나의 생각이 잘 표현된 그림일수록 사람들한테 반응이 좋았다”며 “사람들이 그림 속 인물의 감정에 공감하며 반응해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하고 싶은 모든 말을 그림으로 승화해 표현한다. 그림 소재가 끊이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경험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그때의 상황과 감정이 모두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직장생활을 하며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을 준다”며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에 비해서 힘들었던 기억이 훨씬 오래간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직장생활을 하며 느낀 부정적인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쌓였던 감정을 해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낸 김 작가는 작품들을 모아 「공감 한 컵 하실래요?」를 출간했다. 「공감 한 컵 하실래요?」는 다음 스토리볼에 연재했던 작품들을 조금씩 수정해 만든 그림책이다.
그의 그림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면서 컵 아트를 직접 체험하고 싶다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김 작가는 “기업체에서 임직원들과 함께 컵 아트를 하고 싶다는 제의를 받으면 강의를 진행하기도 한다”며 “일회용 종이컵에 직접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 함께 만드는 시간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말로도 나누기로 했다. 김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그림이 아닌 또 다른 수단으로 ‘팟캐스트(Potcast)’를 선택했다. 팟캐스트는 *RSS(Rich Site Summary) 구독처럼 제공자가 미디어 파일을 인터넷에 올리면 시청자가 이를 구독하는 것이다. 김 작가는 ‘나도 알바다’ ‘20세기 소년소녀’ ‘더연예계’라는 3개의 방송을 진행 중이다. 주위에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모아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팟캐스트에 올린다.

김 작가는 “무엇을 하든지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림 실력이 부족해 열등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김 작가는 “그림이 뛰어난 사람을 보면 부럽고 내 그림이 못 그렸다고 느끼기도 했다”며 “하지만 실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나만의 기억과 감정을 담아내는 능력은 다른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남들보다 잘 그리기 위해 노력할 때, 김 작가는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자신만의 특징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만의 장점을 만드는 것에 성공한 김 작가는 “‘경쟁력’은 같은 분야에서 남들보다 얼마나 잘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며 “남들과는 다른 것이라도 자신만이 잘하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를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쉽게 지나쳐버리는 일회용 종이컵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준 김 작가는 오늘도 도전하고 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김 작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회용 종이컵, 배지, 도시락통까지 도화지 대신 일상 속 다양한 물건 위에 스스로를 입체적으로 담은 작품들. 일상생활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감동을 주는 김 작가의 그림에는 진심이 묻어나 있었다. 지우고 싶은 경험일지라도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라는 김 작가. 그는 오늘도 일회용 종이컵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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