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트럭을 몰며 거리를 누비는 한 정신과 의사가 있다. 자신을 ‘정신 나간 정신과 의사’라고 소개하는 그는 대형병원 의사로서의 삶을 하루아침에 그만둔 임재영(남·39) 의사다. 다양한 사람들을 상담할 수 있는 지금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하는 임 의사를 본지는 지난달 18일(화) 의왕시 정신보건센터의 상담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행복을 키우는 의사,
트럭을 몰고 직접 달려가다

“저는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라 ‘행키’예요” 정신과 상담을 기피하는 사회적 추세를 안타까워한 임 의사는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직접 새로운 직업의 이름을 짓기로 했다. 임 의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라며 “그 시작으로 행키라는 직업명을 지었어요”라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행키는 ‘행복 키움이’의 줄임말이다. 임 의사는 현재 행키라는 이름으로 병원의 진찰실이 아닌,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 상담하고 있다.

임 의사는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를 운전해 내담자를 직접 찾아간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는 임 의사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무료로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트럭 상담소다. “상담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라는 이름과 트럭에 적힌 ‘마음의 때를 씻어요’라는 문구를 만들었어요” 병원에서 근무할 때, 임 의사는 상담소를 찾은 사람들이 정신과 상담이라는 말에 부담을 갖고 상담을 꺼리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병원이 아닌 트럭에서, 의사가 아닌 ‘행키’라면 사람들이 상담을 재밌고 친숙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 차량은 임 의사의 손길이 곳곳에 닿아있다. 차량의 외부는 물론 내부도 그가 직접 꾸몄다. 상담 트럭의 내부는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상담을 위한 흰 의자와 테이블도 마련했다. 바닥에는 인조 잔디를 설치했고 의자 위에는 웃는 얼굴 모양의 쿠션도 놓았다. 임 의사는 “직접 트럭을 꾸미면 새로운 직업에 대한 애정이 더 커질 것 같아 고생스러워도 혼자 다 했죠”라고 말했다.

대학병원에서 길거리로,
전단지에 진심을 담다

임 의사도 처음엔 대형병원 정신과에 근무하는 소위 ‘잘나가는’ 의사 중 하나였다. 그러나 작년 3월, 그는 돌연 의사 가운을 벗어 던지고 운전대를 잡았다. 정신과에선 다양한 사람들에게 상담의 기회를 마음껏 제공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임 의사는 진찰실에서 벗어나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주고 싶었다. “정신과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병원에 오기 망설이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주위 사람들은 지금도 그가 하는 일을 말리지만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임 의사는 “병원을 그만두면서 제가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희망차게 시작한 일이었지만 시작과는 달리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를 운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임 의사는 “3개월 동안은 늪으로 빠지는 느낌이었어요”라며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계속 의심이 들었죠”라고 말했다. 하루에 단 한 명도 상담하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트럭을 공원 앞에 주차해 놓고 네다섯 시간 동안 무작정 상담할 사람을 기다렸어요”

더 이상 앉아만 있을 수 없었던 임 의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리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명함과 전단지를 사람들에게 직접 나눠주며 적극적으로 상담소를 홍보했다. 길거리로 나선 정신과 의사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선뜻 상담을 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임 의사는 “어려움조차 꿈을 이루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노력 끝에 이제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행키를 찾는다. 청소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상담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의 연령층도 다양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고민도 다양하다. 임 의사는 “주변에 친구도 있고, 가족도 있지만 혼자 있는 느낌이라며 외로움을 토로하는 분들이 많아요”라며 “마음의 고통을 혼자 참고 견디는 분들이나 고독한 분들이 상담을 하러 오셨죠”라고 말했다.

고민 상담소 활동은 무료로 진행되기 때문에 수익이 전혀 나지 않았다. 직장도 관둔 채 상담소 활동을 시작한 임 의사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경제적 어려움을 타파할 방안으로 강연과 책 집필을 떠올렸다. 이를 통해 상담소 운영비용을 마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메시지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의사는 “상담하면서 느낀 것, 정신과 의사로서 생각하는 가치관 등을 전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또한 ‘스토리펀딩(Story Funding)’을 통해 후원도 받았다. 스토리펀딩은 참여자가 사연을 올리면 그 사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후원을 해주는 온라인 후원 서비스다. 그가 스토리펀딩 홈페이지에 연재했던 이야기에는 그의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지난 2월 6일(월)에 시작한 그의 스토리펀딩은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사며 지난달 17일(월)을 끝으로 1천 1백 43만 5천 4원을 모았다. 그는 후원금으로 상담소 트럭에 냉난방 시설을 설치하고 기존의 딱딱한 의자를 편한 의자로 바꿀 예정이라고 말했다.

행복한 상담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임 의사는 최근 방송, 출판, 강연 등에서 활약하고 있다.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EBS ‘다큐 시선’을 통해 ‘죽음 체험’도 했다. 임 의사는 “저를 찾아오는 사람 대부분은 ‘살고 싶다’ 대신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말해요”라며 “저에게도 이런 상황이 생기면 어떨지 생각하다 죽음에 대해 고찰해보기 위해 죽음 체험을 하게 됐죠”라고 말했다. 체험을 하는 동안 임 의사는 복잡한 심경을 느꼈다. 5분의 유서 작성 시간 동안 그는 머릿속에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떠올라 유서를 완성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문득 ‘죽음 앞에서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이러한 죽음 체험 활동을 통해 임 의사는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더욱 공감하게 됐다.

“강연에서 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자신의 마음 상태에 관심을 가지자’예요” 임 의사는 예능 방송에 이어 ‘KBS 강연 100℃’에도 출연했다. 그는 “가족, 친구, 애인 등 타인이 자신을 챙겨주길 바라면 자기 자신은 비참해지고 외로워지기 마련이에요”라고 말했다.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챙길 때 서로에게 주는 상처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달 하반기에는 「임재영의 고민 상담」이라는 책도 출간된다. 임 의사의 첫 저서다. 책 속에는 그가 고민 상담을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와 임 의사의 깨달음을 담았다. 그는 “상담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몇 번이나 돌이켜 볼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임 의사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대학생들을 위해 대학교를 찾아가기도 했다. 그는 계원예술대학교를 비롯한 다섯 곳의 대학을 찾아가 강연을 열고 상담을 진행했다. 일상생활과 취업준비 등으로 겪은 스트레스로 인해 힘든 상황을 보내고 있는 대학생들이 상담할 기회가 없어 속으로 삭이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임 의사는 “많은 사람들이 대학생들과 청년이 살아갈 미래를 걱정하며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며 “미리 좌절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병든 사회가 긍정적인 상담 문화를 통해 지금보다 더 밝고 따뜻해지기를 꿈꾼다. 상담은 문제가 있는 사람만 받는다는 사회의 선입견과 비용을 많이 지불해야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현재의 상담문화가 병든 사회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에게 처음 털어놓는 이야기다”고 말하며 임 의사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사람들. 그리고 상담이 끝난 후 그들이 건네는 감사 인사에 그는 보람을 느낀다. 임 의사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오늘도 분주히 트럭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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