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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은오 작가, 동양화에 서양화를 더하다
이혜니 기자  |  smplhn92@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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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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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의 선명한 색과 동양화의 은은한 느낌을 하나의 캔버스에 담아내는 사람이 있다. 바로 허은오 동양화 작가다. 허 작가는 서양화 재료인 유화를 이용해 하늘과 바다를 그린다. 공간감이 느껴지는 배경 위에는 동양사상의 주요소재인 사군자와 화조를 그려 넣어 동양화와 서양화를 조화시킨다.

강렬한 그림들이 유행하는 오늘날에도 허 작가의 그림은 고요하고 정적이다. 은은한 색과 선으로 그려진 허 작가의 작품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준다.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그림이 몇 점 걸려있는 허 작가의 작업실에서 그녀를 만나볼 수 있었다.

캔버스 위 생동감 가득한 새와 꽃
허 작가는 학사와 석사 동문으로 현재 본교 조형예술학과 한국화 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이수 중이다. 본인을 동양화 작가라고 소개한 허 작가지만 사실 그녀는 서양화의 유화와 동양화의 *석채를 함께 이용해 자연을 그려낸다. 동양화의 소재와 서양화의 재료가 함께 어우러진 그녀의 그림은 ‘이전까지는 없던 공간의 무한한 깊이를 담고있다’는 평을 받는다.

허 작가가 처음부터 동양화가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 취미생활로 미술을 배우던 어린 시절에 그녀는 동양화가 아닌 아크릴과 유화를 이용한 서양화를 그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허 작가는 미술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동양화를 처음 접하게 됐다. 허 작가는 “서양화는 명암을 통한 입체감과 여러 번의 붓 터치를 요구하는 반면 동양화는 화선지가 먹을 흡수해요”라며 “획 하나로 그림이 형성되는 동양화의 모습은 저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죠”라고 이야기했다. 이를 계기로 동양화의 매력에 빠진 허 작가는 동양화를 전공하기로 했다.

동양화 작가가 된 그녀의 그림에는 새와 꽃이 자주 등장한다. 허 작가는 화조(花鳥)처럼 동양적인 소재를 서양화의 기법으로 그려낸다. 그녀는 “동양권에서 태어났기에 동양사상이 자연스럽게 삶에 스며들었어요”라며 “동양사상에서 많이 다루는 꽃과 새가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죠”라고 말했다. 허 작가가 꽃과 새를 소재로 사용하는 이유는 화조가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꽃은 사계절 안에 피고 지는 것을 모두 볼 수 있기에 동양사상에서 사람과 가장 친밀한 소재다. 또한 새는 지상과 하늘 모두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그 둘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허 작가는 “꽃과 새가 제가 생각해오던 편안함이라는 주제와 밀접해요”라며 “편안한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꾸준히 화조화를 그리게 돼요”라고 설명했다.

허 작가는 대학원 석사과정 당시 대회에서 우승해 개인전을 열 기회를 얻었고, 2006년에 첫 개인전을 열게 됐다. 개인전 속 작품들에도 오늘날 그녀가 그리는 작품에 등장하는 화조가 있었다. 그러나 첫 개인전 그림들 속에 있는 화조에 담긴 의미는 지금과는 달랐다. 이에 허 작가는 “이전엔 흑백만이 있던 배경 속에서 날아가는 새만을 눈에 띄는 색으로 표현해 현실에서의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냈어요”라며 “편안함을 주고자 하는 지금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죠”라고 웃음을 보였다.

허 작가는 미국 유학을 계기로 꽃과 새의 의미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국 유학 전, 허 작가는 대다수 현대인이 그렇듯 현대 사회의 빠른 변화에 맞춰 살기 위해 노력해왔다. “변화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으면 원동력과 동기부여가 약해요” 급변하는 사회에 지쳤던 허 작가는 미국으로 떠나 일 년간 다양한 전시회를 다니며 여러 작품을 감상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소통했다. 그녀는 “일 년 정도 그림 그리는 것을 쉬었지만 다른 활동들로 저 자신을 돌아보며 원동력을 되찾을 수 있었어요”라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여유를 되찾은 허 작가는 꽃의 생명력과 새의 자유로움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나를 찾는 여정을 떠나다
본교에서 석사를 전공하던 중 허 작가는 도쿄, 홍콩 등의 국제 아트페어(Art Fairs)를 가게 됐다. 이를 보고 지금껏 좁은 시야로 미술을 공부했다는 생각이 든 허 작가는 아무런 계획 없이 무작정 뉴욕으로 떠났다. 허 작가는 현대 미술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뉴욕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작품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시기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됐어요”라고 말했다. 허 작가는 미국의 미술교육을 접하며 석사를 다시 취득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석사학위를 취득할 학교를 찾던 허 작가는 로체스터 공과대학(Rochester Institute Technology, 이하 RIT)에 입학했다. RIT가 여러 매체를 접하고 체험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학교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허 작가는 RIT에 입학해 금속 공예, 도자기 공예, 조소, 판화 등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미국에는 친인척과 친구가 한 명도 없어 적응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큰 꿈을 갖고 RIT에 입학한 그녀였지만 허 작가의 유학생활이 처음부터 행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허 작가는 “저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라며 “집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제게 학교에 적응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었죠”라고 덧붙였다.

타지에서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RIT에서 수채화와 페인팅을 전공한 담당 교수님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허 작가는 “교수님은 제가 대화를 하던 중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 사전을 찾는 순간도 기다려주셨어요”라며 “다른 교수님들에게 저를 데려가 소개해주기도 했죠”라고 말하며 미국에서의 대학생활을 떠올렸다. 교수님의 배려로 미국 생활에 적응한 허 작가는 하고 싶던 미술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허 작가는 “제 작품 속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번지는 효과는 교수님의 영향이죠”라고 말했다.

나만의 색으로 그림을 그리다
그저 배움을 위해 무작정 미국으로 떠난 허 작가였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허 작가는 “혼자만의 시간은 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확신을 하게 해줬어요”라며 “미국에서 경험한 다양한 매체로 동양사상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라고 말했다. 이에 동양사상을 더 자세히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허 작가는 미국에서 석사를 마치고 돌아온 후 2014년부터 본교 동양화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허 작가는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부터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동양화의 소재와 서양화의 기법을 융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허 작가는 “정체성을 찾으려 노력하다 보니 유행을 좇는데 너무 바빴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라며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마음이 안정됐고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었어요”라고 설명했다.

허 작가는 지난 1월 11일(수)부터 17일(화)까지는 서울 가나아트스페이스(Gana art space)에서 열 번째 개인전 ‘고요함이 필요한 시간’을 열기도 했다. ‘고요’라는 주제의 개인전은 허 작가가 일 년 동안 준비한 작품들로 풍성하게 꾸며졌다. 허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 대해 “심원한 느낌을 주는 고요할 ’요(窈)’의 바닷속과 깨끗한 느낌이 드는 고요할 ’정(靜)’의 하늘 위 이렇게 두 가지의 주제로 진행했어요”라고 설명했다.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하는 허 작가는 현재 학생들에게 동양화를 가르치는 강사가 됐다. 강의시간에 허 작가는 전공생들이 자신의 화풍을 찾도록 돕는데 가장 큰 신경을 쓰고 있다. 허 작가는 “전공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자신이 잘하는 부분과 못하는 부분을 찾는 것을 목표로 수업을 구성해 진행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림에도 유행이 있지만 이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허 작가는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자신을 주제로 마인드맵을 그리게 해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허 작가는 “학생들이 제가 진행하는 전공수업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말해줄 때면 제 일처럼 기뻐요”라며 뿌듯한 마음을 내비쳤다.

허 작가는 “사람은 항상 변화하는 존재예요”라며 “현재의 모습을 섣불리 단정 짓지 않고 자신을 알기 위해 평생 노력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또한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는 먼 미래를 위한 목표보다는 현실에 충실하게 살고 싶어요”라고 덧붙였다.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은 허 작가는 망설임 없이 그것에 몰두했다. 그녀는 “대학교 4학년 학생들이 전공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다며 상담을 와요”라며 “나중에 후회로 힘들어하는 것보다는 지금이라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평생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해요”라고 조언했다. 허 작가는 미국에서의 생활로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지금도 그녀는 자신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충실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그녀의 오늘은 열정과 행복으로 가득하다.

*석채 : 발색이나 질감 등의 효과를 위해 사용되는 유색의 돌가루.

   
▲ 허은오 교수 <사진=고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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