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문학기행]

▲ 폭풍의 언덕 배경인 요크셔 지방의 언덕을 뒤로 하고


히스클리프의 캐서린에 대한 강렬한 집착과 사랑, 눈 덮힌 하워스 목사관 등의 매력이 작품 속으로 끌리게 하는 <폭풍의 언덕>. 작가가 어디서 살았는지와 작품의 분위기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가장 확실히 확인시켜주는 경우가 바로 요크의 무어랜드(moorland)지역인 하워스(Haworth) 마을이다. 무어랜드(이탄지)란 히스(heath)라는 식물이 많은 황무지 지역인데, 히스클리프(Heathcliff)라는 이름도 황무지에서 자라는 ‘히스의 절벽’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아 이름부터 의미심장하다.

<폭풍의 언덕>의 산실을 향하다 보면 풍력발전기가 즐비한 언덕길을 지나가게 되어 과연 폭풍이 부는 wuthering hights가 가까워오는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영어로는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이라는 의미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폭풍의 언덕>으로 번역되었다. 하워스 마을은 언덕길 아래로 푹 내려앉은 분지에 형성되어 있다. 언덕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음습한 기운이 맴도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영국 주택은 남쪽은 밝은 색 벽돌을 주로 사용하는 데 비해, 중부로 올라갈수록 어두운 색을 띈 벽돌을 쓴다. 요크 지방의 벽돌은 밝은 색도 함께 사용하여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에딘버러보다는 덜 검게 보이지만 어두운 색 벽돌집이 많다. 그래서 마을 자체가 상당히 어두워 보이기 때문에 비극이 나올 수밖에 없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덕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야 있는 하워스의 브론테 길을 따라가면 성공회 사제였던 브론테의 아버지가 근무하던 곳이자 브론테 가족묘가 있는 하워스 교회가 있다. 교회와 이어진 옆으로 교회학교와 교회묘지가 있다. 묘지와 이어져 있는 생가 뒤편으로 펼쳐지는 벌판의 분위기도 묘지만큼 을씨년스럽기는 마찬가지다. 2층인 생가 내부는 촬영금지여서 찍지는 못했지만, 유물과 방들은 대부분 에밀리보다 좀더 알려진, <제인 에어>의 저자 언니 샤롯 브론테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밀리 브론테(1818~?1848)는 마을 언덕 위에 있는 폐가 저택(TopWithens)을 모티프로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그녀의 단 한 편뿐인 유작이다. 19세기 초 황량한 벌판에 위치한 집에 세입자인 로크우드 씨가 주인인 히드클리프를 만나기 위해서 방문하면서 이 집 식구들의 어둡고 기이한 복수의 역사가 하나하나씩 드러난다.

이 작품은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다. 윌리엄 와일러(1939)의 영화는 로렌스 올리비에가 히스클리프를 맡았고, 미국중산층 홈드라마 스타일의 멜로 중심으로 각색되어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이야기로 만들었다. 피터 코스민스키 감독(1992)의 영화는 랄프 파인즈와 줄리엣 비노쉬가 주인공을 맡았고, 원작에 보다 충실했으며, 거칠고 투박한 자연에 대한 묘사와 히스클리프를 외롭고 상처입은 인물로 묘사하여 캐릭터를 잘 살리고 있다. 안드레아 아놀드(2011) 영화가 특이한 점은 히스클리프를 백인이 아닌 흑인으로 상정했다. 원작에서 “집시“ 즉, “영국에서 거무스름한 피부색을 지닌 이방인에 대한 통칭"으로 불리는 등 작품의 여러 곳에서 백인이 아님을 암시된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영화와 소설만 볼 때 이해하기 어려웠던 캐서린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증오로 바뀐 히스클리프의 복수심은 바람부는 폭풍의 언덕이 있는 하워스 마을에 가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폭풍의 언덕> 영화인문학기행은 우리가 대면하고 싶지 않은 우리 내면의 어두움을 꺼내 보게 한다. 그리하여 자신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넘어선 인간 이해에 이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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