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후보를 지지한다’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후보가 이슬람국가에 무기를 팔았다’

지난해 미국의 대선은 ‘가짜 뉴스’가 퍼지며 연신 소동을 일으켰다. 가짜 뉴스가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대선을 앞둔 대한민국은 가짜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에 지난달 14일(화)에는 가짜 뉴스에 대응할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국언론학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공동 주최한 세미나 ‘가짜 뉴스 개념과 대응 방안’이 열렸다. 세미나에선 질의응답 시간 내내 방청객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오는 20일(월)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페이크 뉴스와 인터넷’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다.

가짜 뉴스란 기사의 형식을 빌려 진실이 아닌 내용을 마치 정확한 정보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는 기사를 말한다. 출처도 근거도 없는 가짜 뉴스는 최근 SNS의 파도를 따라 온라인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세계를 속인 기사들
지난겨울, 미국 워싱턴 DC의 한 피자가게 ‘커밋 핑퐁(Comet Ping Pong)’에서 여러 차례 총성이 울렸다. ‘피자 게이트(Pizzagate)’라는 소문을 믿은 한 남성의 소행이었다. 경찰에 체포된 에드가 웰치(Edgar M. Welch, 남·28)는 실탄이 장전된 공격용 소총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피자 게이트를 조사하기 위해 직접 나섰다고 진술했다.

피자 게이트란 힐러리 클린턴을 비롯한 민주당 고위 관계자들이 피자 가게의 지하실에 근거지를 두고 아동 성매매를 했다는 가짜 뉴스를 말한다. 피자 게이트가 논란이 되던 당시, 미국 언론은 이 가짜 뉴스를 믿은 일부 사람들이 문제의 ‘지하실’을 찾겠다며 소동을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피자 게이트의 당사자인 힐러리 전 민주당 대선후보는 “소셜미디어 공간에 넘쳐나는 악의적 가짜 뉴스와 선동이 세계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며 “가짜 뉴스는 당장 해결돼야 할 위험 요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탈리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개헌안 국민투표가 시작되기 전, ‘찬성’을 찍은 가짜 투표용지가 무더기로 발견됐다는 가짜 뉴스가 급속도로 퍼졌다. 덩달아 ‘찬성’에 투표하면 학교와 병원이 민영화된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도 돌았다. 이 사건에 대해 외신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비롯한 사회 관계망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s, 이하 SNS)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투표 관련 게시물 상위 10개 중 5개가 거짓이었다고 보도했다.

가짜 뉴스는 우리 일상생활에도 널리 퍼져있다. 김상은(영어영문 14) 학우는 단체 채팅방에서 ‘태극기집회 100만 인이 모이면 탄핵이 기각된다’는 가짜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 학우는 “자극적인 소문이 유권자들에게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까 봐 걱정됐다”며 “가짜 뉴스에 휩쓸리지 않도록 언론과 대중 모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일부러 대중의 눈을 가리다
학자들은 의도를 가지고 기사의 공신력을 빌려 거짓 정보를 진실인 척 포장하는 기사를 가짜 뉴스라고 말한다.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뉴스만을 가짜 뉴스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다. 단순한 오보나 유언비어와는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용석 건국대학교 교수는 “가짜 뉴스의 개념을 정립해야 가짜 뉴스에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순한 오보일 경우는 가짜 뉴스로 취급하지 않는다. 일부러 허구적인 사실을 퍼뜨린 게 아니라 기자의 실수였기 때문이다. 1999년 판례를 보면 헌법재판소는 헌법소원 재판 결정문에서 “사소한 부분에 대한 허위 보도는 형사제재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신속한 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신문의 속성상, 기사 내용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작성 당시 기자가 진실인 것으로 믿었다면 기사 작성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에 대한 지나친 규율을 피하고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가짜 뉴스가 무엇이지에 대한 논란은 정치인과 언론 간의 다툼에서 두드러진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에 앞서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일단 가짜 뉴스라 칭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미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CNN의 보도는 모두 가짜 뉴스”라고 말한 바 있다.

가짜 뉴스란 말 자체에 대해서도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짜 뉴스가 있다면 진짜 뉴스도 있는 걸까? 언론사에서는 기사를 공개하기 전 ‘팩트 체킹(Fact Checking)’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다. 같은 내용이어도 사람에 따라 대답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번에 걸쳐 다양한 취재원들에게 사실을 확인하는 ‘크로스 체킹(Cross Checking)’도 필수적이다.

팩트 체킹에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잘못된 정보를 담은 기사가 보도된다. 이에 이승선 충남대학교 교수는 세미나에서 “가짜 뉴스라는 표현은 기성 언론의 권위만을 믿어 기성 언론의 잘못된 정보를 진짜 뉴스라 오해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인 것만 같은 정보도 거짓일 수 있다. 구독자가 많은 언론사나 신뢰도가 높은 정보 제공자, 유명인 등이 공유한 기사는 사실을 보도한 것이라 믿기 쉽다는 지적도 있다.

기사로 당신을 속이는 이유
가짜 뉴스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지는 걸까. 가짜 뉴스가 성행하는 원인에 대해 학자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놨다. 가짜 뉴스가 만들어지고 퍼지는 원인으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원활하지 못한 소통’ ‘현대사회에서 변화된 미디어 환경’ 등이 지적됐다.

세미나에서 민영 고려대학교 교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보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고 소통하는 사회 구조가 왜곡될 때 가짜 뉴스가 유통된다”고 말했다. 예컨대 언론에 대한 불신이 높을 때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할 때 가짜 뉴스가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민 교수는 “언론에 대한 불신에서 가짜 뉴스가 발생했지만 가짜 뉴스는 뉴스가 가지고 있는 신뢰성에 기대어 확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가짜 뉴스는 정치적 극단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 황 교수는 “정치적 성향이 유사한 집단에서 구성원들이 가짜 뉴스를 공유하다 보면 성향이 극단으로 치우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달 8일(수) 뉴스 방송사 JTBC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관련해 항간에 떠도는 가짜 뉴스들을 분석해 보도했다. 특정 정치적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모인 온라인 공간이나 단체 채팅방을 통해 가짜 뉴스가 공유된다는 내용이었다. ‘대한민국 박사모’ 사이트의 ‘세계 유수 석학들도 한국 상황을 걱정한다’는 가짜 뉴스에선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이자 모 연구소 소장’의 인터뷰가 등장하지만 해당 교수와 연구소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BBC의 수석 고문이라던 앨런 스미스(Alan Smith) 박사가 말했다는 기사 내용은 비틀즈 ‘예스터데이’(yesterday)의 노래 가사였다.

가짜 뉴스 없는 내일을 만들다
디지털 뉴스 중개자들은 가짜 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가짜 뉴스가 유포되는 데 구글(Google), 네이버(Naver) 등 ‘디지털 뉴스 중개자’의 책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구글은 지난해 11월 가짜 뉴스를 게시한 인터넷 사이트에는 광고를 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페이스북(Facebook)도 인공지능을 사용해 가짜 뉴스를 거르겠다고 발표했다. 이외에도 트위터(Twitter), 스냅쳇(Snapchat) 등의 SNS 기업들도 가짜 뉴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본교 양승찬 미디어학부 교수는 “디지털 뉴스 중개자는 대부분의 기사를 온라인에서 유통하고 있다”며 “디지털 뉴스 중개자가 가짜 뉴스를 어떤 방식으로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이봉현 한겨레 부국장은 언론사 간 팩트 체킹이 필요하다며 언론사가 함께 팩트 체킹을 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하는 의지를 내비쳤다. 언론사가 도맡아 사실 확인을 하기에 인력과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윤석민 서울대학교 교수는 세미나에서 “사실 관계를 확인할 인력을 배치할 수 있는 곳은 국가가 운영하는 기관밖에 없다”며 이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대선을 앞두고 가짜 뉴스에 대한 대책을 찾는 중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1월 2일 TF(Task Force)팀을 구성해 대선과 관련한 가짜 뉴스 수색을 시작했다. 전국 17개 시도에 걸친 TF팀은 가짜 뉴스와 함께 후보들에 대한 모멸적 표현에 관한 대응을 강화하고, 지역 비하 발언의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체제로 운영된다.

온라인상에서 허구 정보를 퍼뜨리는 사이트는 지금도 법을 통해 제재할 수 있다. 언론 중재법(언론 중재 및 피해 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있기 때문이다. 선거 기간 동안에는 선거법 위반 등의 법률이 적용돼 규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포괄적인 대상에 대한 거짓말이나 소문을 사실인 것처럼 퍼뜨리는 것은 법으로 처벌하기 어렵다. 가짜 뉴스의 피해는 확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가짜 뉴스를 공유해 널리 퍼뜨린 사람들이 각자 어느 정도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법적인 준거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짜 뉴스는 사회 문제로 두드러지고 있다. 학계와 언론은 가짜 뉴스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법적인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선 학자들과 대중들의 의견을 듣고자 세미나를 개최하며 디지털 미디어 중개자들 또한 자체적인 정책을 내놓았다.


가짜 뉴스의 개념과 해결책은 아직 논의가 이뤄지는 단계에 놓여 있다. 가짜 뉴스가 존재하는 한 사람들의 고민과 의논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혹시 아직도 SNS 속 가짜 뉴스를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전 세계를 속인 가짜 뉴스. 조심하지 않으면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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