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필자는 여자들만 부엌에서 분주하게 일하고 남자들은 둘러앉아 음식을 기다리는 명절 분위기가 불편하다. 또 명품 가방을 원하는 여자 친구와 그런 여자 친구에게 명품 가방을 사주기 위해 돈을 버는 불쌍한 남자친구가 등장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불편하다. 이뿐만 아니다. 직장에 나가 일도 하면서 육아와 집안일까지 해내는 여성을 슈퍼맘으로 포장해 찬양하는 광고도 불편하다. 매일 텔레비전을 볼 때,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신문 기사를 읽을 때도 불편한 순간들과 셀 수 없이 맞닥뜨린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면 피곤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한다.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예민한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모르는 사람이 문제다. 그리고 이런 불편함들이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위장하고 있는 이 사회가 문제인 것이다. 사실 ‘불편함’이라는 표현은 너무나도 완곡한 표현이다. 이 불편함이 모여 유리천장이 되고, 생명을 위협하는 범죄가 되고, 여성들의 고학력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황당한 연구 결과가 된다. 이 불편함을 신경 쓰지 않으면 여성들은 온전히 인간다운 삶을 살 수가 없다.

이 사회의 여성 인권이 정상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옛날에 비하면 요즘 여자들은 살 만하다’라는 말만큼 답답하고 화나는 말이 없다. 시급을 삼천 원 받던 아르바이트생이 시급 오천 원을 받게 되었다고 감사해야할 것이 아니라 법으로 명시된 최저시급 이상을 마땅히 받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 분노해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2017년에도 여전히 여성의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지 않는데 어떻게 과거와 비교해 ‘살 만하다’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까? 여성 인권의 현주소는 육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여생도의 영예가 아니라 군부대 내에서 여군에 대한 성희롱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 있다. 지하철 여성전용칸이 제공하는 여성이 받는 ‘편의’가 아니라 어디를 가더라도 ‘몰카’ 공포를 떨쳐낼 수 없는 여성들의 ‘불안한 현실’이 우리 사회 여성 인권의 현주소다.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하고, 우리는 더 많은 것에 불편함을 느껴야한다. 가끔은 여성조차 어떤 불편함을 간과하게 되고, 대중매체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이 불편함을 재생산해내는 사회에서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은 상황이 불편해져야한다.

‘불편함’으로 순화된 언어 뒤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별과 폭력에 대해 이 사회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한다.


김은희(한국어문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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