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칼럼]

지난 17일(목) 전국을 긴장시켰던 10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일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수능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내 동생, 내 자식이 아니더라도 수험생이 시험장을 나서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기 마련이다.

한편 우리의 수능 문화는 외국인들이 보기에 가장 독특한 문화가 아닐까 한다. 국가적인 행사인 수능에 대해 국민들은 과장돼 있는 듯하면서도 경건하기까지 한 태도를 보인다. 각 시험장의 듣기 평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항공기는 운행을 멈추고, 혼잡한 도로는 통제된다. 단 하루의 시험을 위해 경찰마저 운전수를 자처하는 나라. 이러한 수능 문화는 우리 사회가 ‘시험’에 무거운 가치를 두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사실 수능은 새로운 시험의 신호탄과 다름없다. 한국 사회에서 한 번 수험생은 영원한 수험생이다. 학우들이라면 수능이 끝난 직후에도 논술시험, 실기시험, 면접 등 입학까지 거쳐야 하는 절차가 한참 남아 있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수능을 한 번만 보리라는 법도 없다. 지난 9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7학년도 수능 지원자 중 졸업생은 135,120명으로 전체 수능 응시자의 22.3%는 소위 말하는 ‘현역’이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들어와도 수험 생활은 끝나지 않는다. 학부생으로서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에 시달리는 것뿐만 아니라 각종 자격증 시험까지 챙겨 응시해야 한다. 수능을 준비하던 시절보다 바쁘게 공부하고 자주 시험을 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일자리 부족으로 매년 20만 명 이상이 대졸 청년층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시험으로 가득한 학창시절을 가까스로 견딘 대학생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사회인이 되기 위해 또다시 시험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독서실로,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노량진으로 향하는 모양이 운명과 다를 바가 없다.

이렇듯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시험으로 몰리는 현상은 우리가 수능을 짐짓 신성시하는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개인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시험이라 생각하고, 시험을 통해 자신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시험은 개인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수치화해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시험문제가 요구하지 않은 개인의 재능과 인성은 소외시키고 변화 없이 경직된 삶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수능에 열광하고 있다. 이는 시험을 마친 수험생이 새로운 삶으로 달려가도록 응원하는 것이지 수능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은 아니며 또 아니어야 한다. 우리는 시험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시험의 진정한 가치는 시험을 넘어 개인이 성장하고 나아가는 데서 찾을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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