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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들어올린 역도여제, 장미란
박민지·조은해 기자  |  smpjeh92@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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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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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한 명의 역도 여제가 있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온 국민을 열광시키고 세상을 들어 올렸던 그녀, 장미란(여·34) 씨다. 그녀는 역도 선수 은퇴 후 역도 여제 장미란이 아닌 스포츠 멘토로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본지는 현재 용인대학교 체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장미란 재단 활동을 통해 스포츠 인재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장미란 씨를 만나기 위해 지난 9월 6일(화) 그녀의 연구실을 방문했다.


역도계의 새 역사를 쓰다
장미란 씨는 16살 때 부모님의 권유로 역도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이전까지는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자신감이 부족했던 그녀는 역도를 접한 후 그녀만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 역도가 장 씨에게 새로운 세계를 펼쳐 준 것이다. 장 씨는 “역도를 배우는 동안 칭찬과 독려가 이어졌어요”라며 “덕분에 역도를 즐겁게 할 수 있었죠”라고 말했다. 격려는 그녀를 점점 역도의 매력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역도를 하는 동안 의욕과 성취감을 느끼며 점점 성장하기 시작한 장 씨는 역도계의 유망주로 자리 잡게 됐다. 결국 그녀는 2002년에 국가대표 역도 선수가 됐다.

“매일 무거운 걸 드는데 어떻게 항상 즐겁겠어요” 그녀의 인생을 빛나게 해 준 역도지만 역도 선수로 생활하면서 그녀가 항상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녀는 선수 시절의 힘겨웠던 훈련을 떠올리면서 “당연히 어렵고 힘겨울 때가 많았어요”라며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는 것 또한 힘든 점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장 씨가 훈련을 받던 당시에는 모든 일과가 시간별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매일 하루에 총 7시간 반 정도를 훈련에 쏟아부었어요”라며 “운동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계속해서 재활 치료를 받으며 몸 상태를 관리해야 했죠”라고 선수 시절을 회상했다.

빠듯한 일정으로 고단했던 선수 생활이었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운동선수들이 모두 모여 있는 태릉에서 선수들과의 동고동락은 행복했다. 장 씨는 “운동을 열심히 하면 선생님께서 공놀이를 하게 해 주셨어요”라며 “그 공놀이를 하기 위해 후배들, 친구들과 같이 훈련을 더 열심히 받곤 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라고 순수했던 자신의 모습에 웃음을 지었다.

“365일 중 300일이 그만두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을지라도 남은 65일의 즐거움과 성취감이 그것을 잊게 하더라고요” 훈련의 연속으로 지친 나날을 보내다가도 어느 순간 올라 있는 기록을 볼 때면 그 동안의 힘든 시간들을 잊을 수 있었다. 힘든 훈련의 연속 속에서 찰나의 기쁨과 뿌듯함이 그녀가 선수로서의 삶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셈이다. 이와 같은 즐거움을 원동력으로 삼은 그녀는 주저앉지 않고 목표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많은 시합에 출전해 수많은 메달을 거머쥔 장 씨. 그녀의 열정적인 모습은 국민에게 언제나 감동을 줬고 사람들은 그런 그녀에게 환호하기 시작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셔서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어요” 역도 여제 ‘장미란’을 있게 한 가장 큰 버팀목은 그녀를 향한 온 국민의 진심어린 응원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이 그저 신기하고 감사했다는 장 씨는 “종종 어르신들이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화면 속 저와 함께 힘을 주다 보니 몸이 뭉쳤다고 말하세요”라며 “선수에게는 그런 진심어린 응원이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복이죠”라고 말했다. 선수로 활동하던 내내 자신을 응원해 주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힘을 받은 만큼 그 사랑을 되돌려 주고 싶었다는 그녀는 선수 생활을 끝마친 후 사회 공헌자로서 제2의 삶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스포츠인을 향한 끝없는 애정
2012년 런던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장 씨는 역도계를 은퇴했다. 당시 한참 인기를 끌고 있었던 장 씨의 은퇴 결정은 엄청난 용기를 요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체력이 뒷받침해 주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장의 불투명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은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은퇴 후, 그녀는 지금까지 받아온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2012년 용인대학교 체육학과 교수로 부임해 학생들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또한 같은 해 2월 스포츠인재육성 장학재단인 ‘장미란 재단’을 설립하고 그녀의 재능을 사회에 공헌하게 됐다. 장 씨는 자신과 같은 뜻을 가진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 코치들과 함께 지원이 필요한 선수들, 스포츠 꿈나무들이 꿈을 꾸고 도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녀가 주관하는 장미란 재단은 스포츠 멘토링, 의료나눔, 드림장학 등의 주요사업을 토대로 사회 곳곳에 후원을 진행하고 있다. 자라나는 스포츠 인재뿐만 아니라 은퇴 선수들 또한 장미란 재단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은퇴 선수들은 장미란 재단의 멘토링 활동을 통해 자라나는 스포츠 인재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 주며 멘토의 삶이라는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장 씨는 “제도적 뒷받침이 미흡하다 보니 은퇴한 선수들이 사회에 진입하는 게 상당히 제한적이에요”라며 “그들이 멘토라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처럼 그녀는 재단 활동을 통해 앞으로 자라날 스포츠 꿈나무들부터 은퇴 선수까지 그녀가 받았던 사랑을 아낌없이 돌려주고 있다.

현재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는 장 씨는 “학생들과 직접 교류하며 수업을 하다 보면 저도 느끼는 게 많아요”라고 말하며 미소를 보였다. 장 씨는 “선수나 학생이나 모두 격려에 힘입어 발전하는 것 같아요”라며 “학생들을 향한 진심어린 격려와 칭찬이 마음으로 전달돼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고 덧붙였다.

   
 

긍정적 마음으로 이겨내는 힘을 갖다
선수 시절 올림픽을 앞둔 장 씨의 모습은 편안함이 하루도 허락되지 않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올해 개회된 리우 올림픽 시즌 그녀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달랐다. 가족들과 함께 여유로운 마음으로 경기를 관람했다는 장 씨는 “올림픽을 앞두고 이렇게 편하게 있는 제 모습이 어색했어요”라고 말했다. 장 씨는 이번 리우 올림픽에 대해 “처음 맞은 긴장 없는 올림픽인 것 같아요”라며 “집에서 올림픽을 관람하니 기분이 새로웠어요”라고 쑥쓰러운 웃음을 보였다. 이어 “펜싱의 박상영 선수 경기가 특히 인상적이었어요”라며 “궁지에 몰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겨낸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라고 말했다.

장 씨의 인생관은 어려움이 닥치는 순간마다 의연하게 이겨내자는 것이다. 장 씨는 “살다 보면 하는 일이 내 계획대로 잘될 때도 있지만 안 될 때도 있어요”라며 “그럴 땐 시간이 흐르면 지금보다 더 나은 시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잘 넘기는 편이에요”라고 밝혔다. 또한 하루하루를 항상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는 그녀는 “무리한 목표를 무작정 좇는 것보다 바로 다음의 목표를 향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라며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항상 어려운 시기를 성장을 위한 시기로 생각한다는 장 씨는 앞으로 수많은 도전을 할 청년들에게 “어렵겠지만 힘든 순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피할 수 없는 힘든 순간이라면 긍정적이고 의연하게 그 상황을 바라보고 대처하는 게 이후에 더 큰 발전을 가지고 온다는 것이다. 이어 “모든 상황이 다 끝난 것 같아도 그 후에 본인이 얼마나 노력했느냐에 따라 기회가 찾아오게 되는 것 같아요”라며 “어려움 속에서도 불평불만보다는 더 큰 발전을 위해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선수로서의 성공을 거둔 후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장 씨는 대한민국 청년들 모두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다 이뤘으면 좋겠다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녀는 “열심히 살아가는 싸움은 어디서든 매일 해야 해요”라며 “청년들 모두가 맡은 역할을 잘 해내며 성실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청년들을 응원했다. 또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는 “먼저 많은 경험들을 한 어른들의 충고를 귀 기울여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라고 덧붙였다.


끈기와 열정으로 대한민국 역도계에 큰 획을 그은 장 씨. 그녀는 은퇴 후에도 그 끈기와 열정을 계속해서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전해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오늘도 장 씨는 도전의 발걸음을 내딛는 여러 청춘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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