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순실 사태’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일반인이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받아봤을 뿐 아니라 여러 국정 현안에 관여한 흔적이 속속 폭로되고 있다. 재벌기업에 대한 기부금 출연 압력, 최대 신문의 청와대 정무수석 공격과 청와대의 반격, 부자격자의 대학입학, 사이비 종교 교주와 그 딸의 가업 잇기, 향락업소 출신인의 공기업 개입, 눈 밖에 난 재벌 부회장 퇴진 요구 등등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폭발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어느 막장 드라마도 이보다 더한 상상력을 발휘한 적 없으며, 어떠한 ‘미드’도 비리와 암투와 치정, 미신 등이 이토록 복잡하게 얽힌 시놉시스를 갖고 있지 못하다.

어떤 이는 대통령의 퇴진을, 또 다른 이는 2선 후퇴를 주장한다. 가장 미온적인 태도라고 해 봐야 책임총리를 임명하자는 것에 그친다. 이 사태의 책임을 지는 문제와 관계없이 어찌 됐든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발휘해 왔던 ‘비상한’ 지도력을 더 이상 발휘할 수 없게 됐다. 국가수반이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했다는 사실만이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은 이에 관련해 지속적으로 거짓 해명을 해왔다. 지금도 말로는 책임을 느낀다고 하면서도 정국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 때문에 거센 비판을 받고는 다시 조금 물러서고 하는 일을 반복한다. 이런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 대통령의 지도력을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하게 돼 가고 있다. 이제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대통령의 뜻이라며 아무리 전화를 돌려도 각 부처 공무원들과 재벌 임원들은 콧방귀를 뀔 것이며 오히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전화를 녹음하게 될 것이다.

이제 와서 과거의 ‘가신’들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관계가 비정상적이었다고 폭로에 나서고 있다. 다 알면서 당대표로 만들고 대통령 후보로 만들고, 대통령을 만들어 냈던 사람들이 그녀를 비판하거나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며 잡아뗀다. 그동안 제기됐던 의혹들에 대해 침묵하거나 오히려 방어에 나섰던 언론들도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악역 주인공과 조연들을 물고 뜯으며 포식에 나섰다.

한국 사회는 지금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일에 힘쓰고 있다. 그런데 이 일은 대통령의 거취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어떤 과정을 통해 문제적 인물의 신비화를 이뤄냈는지, 헌법에 위배되는 제왕적 대통령제는 왜 아직도 건재한지, 최고위 공직자들은 대통령의 부당한 지시를 왜 거부하지 못하는지, 권력인사의 주문에 따라 대학과 재벌이 부당한 일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범사회운동을 벌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다음 정권 아래서도 같은 일을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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