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시절이 하 수상하다. 2013년 필자가 숙대신보사에 있을 때 사설 제목이기도 했던 이 말은 3년이 지난 지금 여기서 또다시 되풀이된다. 당시 국정원 선거 개입으로 대통령의 정당성에 의문을 가졌다면 요즘은 그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존재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는 게 비단 대통령뿐은 아닐 것이 흙, 바람, 공기, 햇빛, 이 세계에 있는 것들 중 이유 없는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신문도 마찬가지다. 취재, 사람 등 각 지면이 그러하고 기사 제목이 그러하며 폰트, 행간, 자간, 아이콘, 구분선 등 모든 구성 요소가 그러하다. 반대로 말하면 신문의 사소한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이유가 있게’ ‘역할에 맞게’ 사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창간특집호기까지 한 1321호에는 쓰인 이유가 수상쩍은 존재들이 눈에 띄었다. 가장 먼저 이번 호의 1/8이나 차지하고 있는 화보다. 몇 해째 반복되는 이 콘셉트의 화보는 62년간의 신뢰와 관심에 감사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가. 또한 각 헤드라인에 왜 해당 폰트가, 이 크기로 쓰였는지, 몇몇 기사에는 왜 박스가 쳐졌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가장 의문이었던 것은 모든 바이라인의 ‘글’이라는 한 글자다. 모든 독자들이 이 것이 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두 면의 특집도 그랬다. 이 특집면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자기 PR인가, 자축인가 아니면 자조인가 의문이다.

숙대신보도 하 수상한 시절 덕에 불철주야 뛰어 다니느라 고생일 것이다. 심심한 위로와 함께, 노파심에서 이런 당부의 말을 전한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쳐왔던 것들의 의미를 다시금 되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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