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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가 주는 용기
숙대신보  |  shinbosa@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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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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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는 매우 흥미로운 학문입니다. 전문적인 학문이면서도 작곡가들의 인생이야기는 끝없는 감동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음악사의 주체는 음악이라는 인간의 작품이지만 이 작품을 쓴 작곡가들의 시대적 배경과 인생 이야기는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고, 이 과정이 바로 음악사의 진정한 배경이 됩니다. 음악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작곡가들을 공부하다보면 인생 역경을 넘어선 열정의 스토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시대적으로 큰 획을 그었던 작곡가들 몇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헨델(1685-1759)은 어린 나이에 명성을 얻어 인생이 평탄했을 듯하지만 헨델처럼 인생의 큰 기복을 감당한 작곡가도 없습니다. 헨델은 오페라에 열광했고, 거의 20년 가까이나 파산과 성공을 계속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 영어 오라토리오입니다. 오페라처럼 유명한 가수나 의상, 무대효과가 필요 없고, 교회에서 성가대를 조직해 공연하면 되므로 저예산 장르였으며, 거기에 헨델은 이탈리아어가 아닌 영어로 가사를 써서 영국의 대중들이 듣고 감동할 수 있는 장르를 창조하게 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작품이 여러분이 항상 감동받는 ‘메시아’입니다.

J. S. 바흐(1685-1750)는 10살에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고, 17세부터는 인생의 모든 것을 자력으로 해결했습니다. 평생에 직장을 5번이나 옮겼는데, 이는 모두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었습니다. 20살에는 가난하여, 북스테후데의 연주를 듣기 위해 400km를 걸어서 뤼벡까지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직장이자 바흐가 불멸의 종교작품들을 쓴 라이프찌히 토마스 교회에서는 교회에서 제공하는 좁은 아파트에서 20명의 자식을 기르며 살았고, 5개의 교회 예배를 위한 음악을 매주 작곡했으며, 심지어는 교회 부설 학교에서 라틴어를 가르치는 의무도 있었다 합니다. 바흐의 작품은 천곡이 넘습니다. 얼마나 치열한 삶이었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하이든(1732-1809) 또한 인생 역경을 극복한 아름다운 과정을 보여줍니다. 하이든의 음악적 재능을 키워주고 싶었던 가난한 부모님은 7살의 하이든을 먼 친척인 교장선생님 댁에 도제와 같은 고달픈 신분으로 보냅니다. 어린 하이든이 이 시기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 시절을 자서전에 비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후 부모님과 산 기록은 없고, 재능이 눈에 띠어 왕립음악학교에 들어가게 됨으로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게 되었지만 이 학교를 졸업하고는 있을 집이 없었습니다. 낭만시대를 연 슈베르트(1797-1828)도 유년시절이 이와 비슷했고, 음악사에서 가장 가난했고 가장 젊어 죽은 음악가로 기록됩니다. 하이든은 비엔나에서 작곡가로 인정받기까지 궂은일을 가리지 않고 생존했으며, 에스테르하치 가문에 취직하기까지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타고난 근면성과 재능으로 하이든은 말년에 이르러 유럽 최고의 작곡가라는 명성을 얻게 됩니다. 하이든의 전 작품에 나타나는 음악적 유머는 그의 친절하고 긍정적인 성품을 증명하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베토벤(1770-1827)도 20대 초반부터 나타난 치명적인 청각장애 때문에 32세에는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었고, 이후 장애를 극복하고 감동적인 걸작들을 써내었습니다. 그의 작품전체에는 포기와 절망은 찾아볼 수 없고, 운명에 도전하여 승리하는 음악적 주제가 끊이지 않습니다.     

쇼팽(1810-1849)은 20살에 돌아갈 나라가 없어져 무일푼으로 갑자기 망명객이 되었으며, 화려하게 보이는 리스트(1811-1886)도 16살에 아버지가 급사하고 소년 가장이 되었습니다. 슈만(1810-1856)과 스크리아빈(1872-1915)도 손가락 부상으로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어야하는 역경을 극복하고 불멸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음악사를 계속 따라간다면 끝도 없는 예들이 등장할 것입니다. 이들이 겪은 역경은 모두 그들에게 감당하기에 힘든 절대 절명의 사안들이었기에 그들의 작품은 큰 감동을 줍니다. 만약 이 작곡가들이 여기에 무너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작곡가들은 그들의 인생을 치열하게 살았을 뿐, 그 당시 음악사를 바꾼다는 생각은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역사의 한 부분입니다. 오늘 음악사에서 이야기하는 인생들에서 용기를 얻는 것은 어떨는지요?
 

김태정 피아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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