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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죄인은 누구인가
박민지, 김의정 기자  |  smppmj90@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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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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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낙태라고 불리는 ‘인공임신중절 수술’은 태아가 생존 능력을 지니기 이전의 임신 시기에 약물이나 수술로 임신을 종결시키는 의료행위를 뜻한다.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경우, 뱃속의 태아를 인위적으로 없애기 위해 행해지는 수술인 것이다.

인공임신중절 수술은 지난 9월 23일(금), 보건복지부가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며 불법 인공임신중절 수술 집도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명시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불법 수술 사실이 적발될 경우 1개월까지였던 의료인 자격정지 조치 기간이 최대 12개월까지로 늘어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입법예고는 가라앉아있던 인공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인공임신중절 수술 합법화 논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정부 “인공임신중절 수술 금지”
수술한 여성과 의사 모두 처벌

보건복지부의 입법예고로 인해 논란이 일며 한국여성민우회, 불꽃페미액션 등의 여성단체들은 낙태 관련법 개정을 요구했고, 이어 낙태죄 폐지 요구 집회 또한 열렸다. 임신한 아이를 낳을지 결정할 권리는 임신한 여성에게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14개의 여성단체는 검은 옷을 입고 여러 차례에 걸쳐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를 열었다. 폴란드에서 ‘낙태금지법’이 발의되자 이에 반대하는 여성 단체가 검은 옷을 입고 시위해 발의안을 폐지시켰던 사례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여성단체들은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죄로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권리가 신장돼야 한다며 시위를 진행했다. 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서지영 활동가는 “보건복지부에서 예고한 개정안은 수술을 집행하는 의사의 처벌을 강화하기 때문에 의사들이 여성에게 수술을 제공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며 “그럴 경우 임신중절수술을 받기 위해 해외 원정을 가거나 비싼 수술비를 지급하는 등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 단체에서 반발이 일어나자 보건복지부 측은 지난달 17일에 입법예고를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쉽게 잠잠해지지 않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금하는 형법 제27장에 기재된 법의 정식 명칭은 ‘낙태죄’로, 형법 제27장 제269조에 의하면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하는 것은 불법 행위다.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하거나 부녀를 상해 혹은 사망에 이르게 한 자 또한 법의 심판을 받는다. 한편, 형법 제27장 제270조에 의하면 낙태를 돕는 의료인도 처벌의 대상이다. 의료인이 부녀의 허락 하에 낙태하게 한 경우를 비롯해 부녀의 동의 없이 낙태하게 한 경우, 부녀의 건강에 해를 입히거나 사망하게 한 경우 또한 형법상의 판결을 받게 된다.

인공임신중절 수술은 모자보건법상 ▲유전적 정신장애·신체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준강간 ▲근친상간 ▲산모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험한 경우 등 다섯 가지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될 뿐 이를 제외한 나머지 수술은 모두 불법이다. 다섯 가지 경우에 해당하는 합법적 임신중절수술도 모자보건법 제15조에 따라 임신한 지 24주일이 되지 않은 사람에게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서 활동가는 “낙태죄는 아이를 낳아서 기를 수 있는 조건을 사회가 만들어주지 못하면서 도덕과 법을 내세워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며 “인공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허용사유를 늘리는 것보다 낙태죄를 근본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자녀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사회·경제적 이유로 아이를 낳을 수 없기에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는 여성들에게만 수술의 잘못을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단체 “낙태죄 전면 폐지”
여성에게 신체적 자유를 달라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다수의 여성은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을 통해 일어나는 일이므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따라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태아는 여성의 몸에서 장기간 머문다. 여성은 출산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는 것은 물론이고 출산 이후 많은 것이 바뀐 삶을 살아야 한다. 실제로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남성보다는 여성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 상당 부분 많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익명을 요청한 A 학우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은 원치 않은 임신으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에 제한을 받는다”며 “여성에게 스스로 출산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A 학우는 낙태죄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녀는 “인공임신중절 수술로 인해 처벌을 받는 사람은 여성과 의사로 남성은 법에 접촉되지 않는다”며 “낙태죄는 여성의 인권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태아와 국가만을 생각한 법이다”고 말했다. 또한 “세포에 불과한 태아를 생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태아의 생명을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우선하는 낙태반대론자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여성들은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금지한 현행법을 문제 삼으며 검은 옷을 입고 거리에 나와 ‘낙태의 전면 합법화’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였다. 여성단체들은 모자보건법에 의해 다섯 가지 경우에는 임신중절수술을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지만 이에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서지영 활동가는 “모자보건법에 의하면 성폭력을 당해 임신이 된 경우에는 수술을 받을 수 있지만 성폭력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소비된다”며 “그 과정에서 임신한 여성이 임신 24주일을 넘겨 수술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여성이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배우자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 것 또한 큰 문제다. 서 활동가는 “합법적으로 수술을 받는 경우에는 남성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그것을 무기로 남성 배우자들이 결혼 관계 유지에 대한 협박이나 금전적 협박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밝혔다.

산부인과 의사들도 여성의 인공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며 이번 입법예고에 집단 반발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이하 의사회)는 지난달 16일 제36차 추계학술대회에서 인공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의료인 처벌 강화 규정이 있는 이번 입법예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사회는 “현행법하에서는 임신한 여성이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할 수 있는 적법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비현실적인 법률을 기준으로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로 치부하고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입법예고에 반대하기 위해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에 참여했던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공임신중절 수술이 불법이기 때문에 의대나 전공의 교육과정에서 자궁에 더 안전한 흡입술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며 “건강에 해롭지 않은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없게 만드는 법이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종교계 “인공임신중절 수술은 죄악”
태아의 생명은 소중해

종교계에서는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살인과 동등하게 여긴다. 자궁 속의 배아나 태아를 독립적인 인간 생명체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이라는 이유로 여성이 임의로 태아의 생명을 앗아갈 수 없으므로 낙태는 살인과 동일 선상에 위치한다는 것이 종교계 낙태반대론자들의 핵심 주장이다. 즉, 생명은 수정에서 출산까지 연속 과정으로 성장하는데 임의로 한 시점을 정해 생명인지 판단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인공임신중절 수술에 반대하는 검은 시위와는 대조적으로 인공임신중절 수술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사단법인 낙태반대운동연합(Korea ProLife) 광주지부(지부장 김미현)는 5일 오후 1시부터 5·18민주광장에서 ‘생명 사랑, 태아 생명 살리기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날 캠페인에서는 태아의 발달 과정을 보여주는 모형과 태아 사진을 전시하는 등 시민들에게 생명의 존엄성과 인공임신중절 수술의 심각성을 홍보했다.

차희제 프로라이프의사회 회장은 “태아 역시 독립된 생명체이기에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반대한다”며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혼모를 위한 복지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병용 목사는 크리스천TV C channel의 ‘이재만의 하나님의 법, 세상의 법’에서 “생명은 신이 내린 축복이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태아의 생명권 보호가 여성의 자기 결정권보다 크다”고 말했다.

또한 유 목사는 낙태죄가 헌법상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는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2년 낙태죄를 형사 처벌하도록 정한 형법 제270호의 위헌소송에서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처벌하지 않거나 가벼운 제재를 가한다면 낙태가 만연해질 것이며 현행법은 낙태를 허용하는 예외사유를 두고 있으므로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한 바 있다.

1995년 로마 교황청은 ‘낙태는 윤리적인 무질서이며 어떠한 인간의 법도 그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새 ‘교황회칙’을 발표했다. 따라서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로 구성된 칠레 사회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구성원들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전면 금지했다. 칠레에서는 어떠한 이유에서건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시행해서는 안 되며 오로지 사고로 인한 인공임신중절 수술만이 허용된다. 성폭행에 의한 임신이나 산모, 태아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도 수술할 수 없는 것이다.

제한적 인공임신중절 수술의 허용을 지지하는 비영리단체 ‘마일스’는 작년 4월, 은밀히 수술이 행해지는 칠레의 실태를 풍자하는 동영상을 제작해 화제가 됐다. 동영상에서는 여성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장면이 나온 후 ‘칠레에서는 사고가 낙태의 유일한 길입니다. 이건 범죄로 취급받지 않아요’라는 글귀가 나온다. 이 영상을 통해 칠레의 충격적인 사례가 전 세계에 퍼지자 지구촌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편, 임산부의 요청과 사회·경제적 이유로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허용하는 국가도 있다. 프랑스, 미국, 독일은 임신 12주 이내, 스웨덴은 18주 이내일 경우 제한 조건 없이 낙태할 수 있다. 태아의 생명권과 산모의 자기 결정권을 모두 존중하겠다는 일종의 타협점을 제시한 것이다. 한국은 태아와 임부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거나 강간 등 강제적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수술을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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