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칼럼]

봉산탈춤 제6과장 양반춤에 보면 돈으로 권세를 산 가짜 양반을 말뚝이가 익살스럽게 조롱하는 대목이 나온다. 민중은 흥겨운 가면 뒤에서 양반을 조롱하고 자신들의 나라와 사회를 비판하면서 희열을 느꼈다. 최순실 비선실세의 실체가 드러나고 각종 비리들이 밝혀지는 마당에 대학가에 현대판 ‘봉산탈춤’이 벌어졌다. 오늘날 대학생들이 익명성과 해학성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그러나 익숙한 사회 참여 방식을 택한 것이다.

시대의 부름에 부응하는 대학생들의 태도는 주로 선거권을 행사하거나 서명에 동참하고, 시위에 참가하는 것 등으로 한정돼 있었다. 그러나 현 사태를 비판하기 위한 대학가의 움직임 중 독특한 모습이 보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학생들은 지난달 31일(월) 오후, 서울 성북구 석관캠퍼스 예술극장 앞에서 시국선언과 굿이 합쳐진 굿판 퍼포먼스 ‘시굿선언’을 벌였다. 시국선언에 ‘굿’이라는 요소를 넣음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는 최순실 씨와 그녀에게 놀아난 국정을 풍자한 것이다. 공연 직전 한예종 총학생회는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예술인으로 끝없는 고민과 발언을 통해 부끄럽지 않은 길을 걷겠다”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낭독했다.

각 대학교의 페이스북 대나무숲 페이지는 익명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게시판으로 최근 대학생들의 ‘디지털 아고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달 27일(목), 연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는 ‘공주전’이라는 제목으로 고전소설 풍의 풍자글이 게시됐다. 이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와의 관계, 이화여대에서 벌어진 장유라 사태 등 논란의 전체적인 과정을 고전소설의 형식을 빌려 작성한 것으로 SNS(Social Network Services) 상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이후 지난달 31일(월)에는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 ‘박공주헌정시(朴公主獻呈詩)’라는 제목의 한자로 지은 시가 올라왔다. 이 시는 한 행에 다섯 음절 씩 총 12행으로 구성됐다. ‘근혜가결국(謹惠家潔國)’ ‘무당순실이(無當淳實爾)’와 같이 한자의 음과 뜻 모두로 해석이 가능한 재치 있는 사회 비판 시였다.

시굿선언과 익명의 글들은 해학성과 익명성을 담고 있어 마치 그 옛날의 마당극을 연상케 한다. 이는 그간의 정체돼 있던 대학생들의 사회 참여를 활발히 하는 데에 기여했다는 의의가 있다. 또한 대학생들은 그것을 통해 어떤 외압에도 구속받지 않고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펼쳤다. 어쩌면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 언론보다 대학생들이 더 바람직한 언론인의 자질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웃음을 담은 대학생들의 사회풍자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가려운 속을 긁고 맘껏 웃었다. 마치 마당극을 보며 분풀이를 했던 민중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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