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없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도 없다? 고대 그리스 사상가이자 이성주의 철학의 시초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사제지간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사상에 대한 책을 남기지 않았지만 대신 주변인들이 그의 철학과 생활에 대해 글을 썼다. 지금 우리는 그 글들을 통해 소크라테스를 만나볼 수 있는데 특히 플라톤이 쓴 《에우티프론(Euthyphron)》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등이 소크라테스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플라톤은 아테네 명문(名門) 출신의 귀족청년이었다. 어깨가 넓어 체격이 좋았고, 긍지 높은 귀족청년답게 정치에 대한 야심도 있었다. 게다가 문학적 감수성까지 갖고 있어 몇 편의 비극을 습작하기도 했다. 그런 플라톤이 22살이 되던 기원전 407년, 소크라테스를 만났다. 그와 이야기를 나눈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말에 매료됐고 그의 내면에 사로잡혔다. 그 후 거리의 사람들과 철학적인 대화 나누기를 일과로 삼던 소크라테스를 따라다니며 그의 철학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철학이 정립되기 전 플라톤은 작품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행적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자신의 철학이 정립된 후에도 스승의 캐릭터를 빌어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는 점이다. 플라톤에게 소크라테스는 또 하나의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철학에도 차이점은 있다. 소크라테스가 절대주의론자인 반면에 플라톤은 이원론자였던 것이다. 플라톤은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같으며 변하지 않는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의구심을 품었다.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 그의 절대주의론을 확인하기 위한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몇 년 후 “이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 즉,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며 소크라테스에게 반하는 이원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데아계와 현상계로 나눠진 이원론이 소크라테스가 썼던 문답법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대화 상대자들에게 “무엇 때문에 사물이나 행동이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물어 진리를 깨닫게 했다. 이런 스승의 문답법을 본 플라톤은 대화상대자가 “무엇 때문에 아름답다”고 말할 때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를 이데아라 명명했다. 결국 플라톤 철학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이데아론도 소크라테스에게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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