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급격하게 산업화·도시화 되면서 사람들은 저 마다의 꿈을 품고 서울에 정착했다. 그렇게 어느새 서울은 인구수 1,000만 명을 돌파했다. 그야말로 서울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일무이한 도시가 된 것이다.

많은 인구수로 대한민국을 뒤흔들던 서울의 과거 위상과는 달리 오늘날 서울은 ‘1,000만 도시’의 위엄을 내려놓았다. 2016년 3월 서울의 인구는 999만 9,116명으로 28년 만에 인구수 1,000만 시대의 막을 내린 것이다. 높은 집값과 복잡한 서울 생활을 견디지 못한 이들이 서울과의 교통이 편리한 경기지역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각자의 사정을 품고 서울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떠한 이유로 서울을 떠나지 못했을까. 본지는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서울에 남아야 하는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서울(In-Seoul) 대학 로망
서울로 대학 가고 싶어요

명문대학에 입학하고자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은 어떠한 노력도 서슴지 않는다. 중앙일보에서 2015년에 발표한 대학평가 결과, 종합 대학이 아닌 카이스트와 포스텍을 제외한 80개의 대학 중 10위권 안에 포함된 지방 거점 대학은 한양대(ERICA)가 유일했다. 사회에서 바라보는 명문대학이 서울에 있다는 점은 고등학생들로 하여금 ‘인서울(In-Seoul)’ 로망을 품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여느 학생들처럼 서울생활의 로망을 안고 본교에 입학한 송주경(역사문화 15) 학우가 있다. 1년간 지방에 위치한 국립대학에서 학교생활을 경험한 적이 있는 송 학우는 더 높은 꿈을 꾸고자 서울에 있는 학교에 입학했다. 그녀는 “대외활동과 같은 대학생 활동이 활성화된 서울에서 생활하고 싶었죠”라고 자신이 서울에 상경한 이유를 밝혔다. 자신이 다시 대학에 입학하면 20살에 입학한 동기들에 비해 사회진출이 2년가량 늦어진다는 점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녀는 힘겨운 입시 생활을 다시 한 번 겪었다.

본교에 입학해 꿈꾸던 서울생활을 하게 된 송 학우는 “지방에서 막연하게 서울에 대해 생각했던 것과 실제 생활은 너무도 달랐어요”라고 말했다. 당장의 주거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본교 기숙사는 최대 1년까지만 거주할 수 있기 때문에 송 학우는 기숙사 퇴사 후 거주할 자신의 생활공간을 마련해야 했다. 지방 집값의 두 배 정도면 비슷한 크기의 집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서울의 집값은 송 학우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이에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LH전세자금지원’을 받아 어렵사리 자신의 주거를 마련한 후에도 서울생활의 애로사항은 끊이지 않았다. 그녀는 “서울에서 지내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돈이 많이 들더라고요”라며 “생활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타향살이의 서러움 등의 고달픈 애환을 겪고 있는 그녀지만 송 학우는 서울생활을 후회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때는 서울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대중교통을 이용해 콘서트를 즐기고 합창 동아리와 같은 대외활동에 참여하는 등 서울 생활을 알차게 즐기고 있는 그녀. 송 학우는 “많은 어려움을 겪더라도 서울 생활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서울에서 지내고 싶은 마음을 전했다.

“열심히 돈을 모아서 공기 청정기를 사고 싶어요” 송 학우가 만약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다면 가전제품 구매와 같이 21살의 꽃다운 여학생이 하기에는 조금 이른 생각을 품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저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서울에 남아있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서울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은 학생에게 서울은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갈 기회의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일과 육아를 동시에
제주도 토박이, 서울에 자리 잡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2, 30년 전만 하더라도 여성이 지방 섬마을에서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김미정(51세·여) 씨 역시 현재는 21살과 12살 난 두 자녀를 둔 어머니이자 국립국악중학교의 영어 교사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20년 전에 만족할만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제주도에서 상경했다.

1997년도의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지방은 아이가 있는 30대 여성이 일 할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당시 출산을 한 여성에게는 직장의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았고, 직장을 구하더라도 고학력자 여성의 눈높이에 맞는 직장을 구하기란 하늘에 있는 별을 따기보다 힘들었다. 이에 김 씨는 직장을 구하고자 어쩔 수 없이 상경해야 했다.

서울에서의 워킹 맘 생활은 쉽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갓 상경한 김 씨에게는 서울은 미지의 곳이었다.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이 상대적으로 발달이 되지 않은 제주도였기에 김 씨의 눈에는 서울이 너무나도 복잡해 보였다. 도시의 환경 역시 낯설었다. 그녀는 “지나가면서 뿌옇게 먼지가 쌓인 개나리를 보면서 서울과 제주도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라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김 씨는 “제가 상경해 자리 잡을 동안 아이들은 제주도에 남아 몇 년간 조부모와 생활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아이들이 커가자 서울에서 아이를 교육 시키는 것도 긍정적으로 검토했죠”라고 덧붙였다. 김 씨는 아이를 위해 퇴근 시간이 보다 규칙적인 교사로 이직했다. 본교에 재학 중인 김 씨의 딸 조은해 학우(경영 16)는 “확실히 서울이 제주도보다 교육열이 세다고 느꼈어요”라며 “문화생활을 할 기회 역시 서울이 더 많았죠”라고 상경했던 당시의 소감을 전했다.

이제 김 씨는 서울에서 생활한 지 18년이 됐다.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어요” 고향을 사랑하는 김 씨지만 “둘째 아이 역시 서울에서 교육을 받아야죠”라고 말하며 자신이 서울에 남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오늘날 지역 간의 거리는 무의미한 시대가 도래했다. 그녀는 “제가 직업을 구할 당시에는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어마어마했어요”라며 “시대가 변했으니 저희 아이들 세대는 지방에서도 충분히 원하는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서울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신념이 있는 곳이라면 환경적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자녀의 교육과 직장 문제가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베이비 붐(baby boom)’ 세대가 교육과 직장의 선택의 폭이 넓은 서울을 떠나기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상경한 직장인
바쁜 일상에 문화생활 놓쳐

서울의 방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면서 직장 근처에 거주하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자취촌에 모여 사는 경우가 많다. 자취촌의 방들은 낡은 내부시설, 취약한 보안, 직장과 멀리 떨어진 위치 등 제값을 주기에는 터무니없는 환경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한 칸짜리 허름한 방도 서울에서 직장을 잡은 사람들에게는 떠날 수 없는 공간이다. 자취생들이 몰려있는 신림역 부근에서 자취중인 최동욱(남·30) 씨도 부산에서 상경해 서울로 직장을 얻었다

현재 학원의 과학탐구영역 강사로 재직 중인 최 씨는 부산이 아닌 서울에서 일하는 이유로 ‘급여’와 ‘경력’을 꼽았다. 그는 “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서울에선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어요”라며 “혹여 이직하게 되더라도 서울에서의 경력을 더 높게 평가받죠”라고 자신이 서울에 직장을 구한 이유를 설명했다.

뮤지컬 관람 등 서울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도 그가 서울을 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밤낮을 가리지 않는 바쁜 업무로 인해 최 씨는 문화생활을 나중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또한 사교육 열풍의 중심지인 대치동, 목동 등에서 일하는 최 씨지만 신림동에서 거주하고 있어 먼 출퇴근 거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 씨는 “여유로운 생활은 아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사회에서 인정받는 경력을 얻었기에 서울생활에 만족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생활을 꿈꾸는 예비 사회인에게 “힘든 서울생활이지만 꿋꿋이 버티며 생활하다 보면 언젠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저마다의 이유로 상경한 이들을 마주한 건 복잡한 교통과 바쁜 일상, 타지 생활의 외로움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서울에서 생활했기에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대학생에게 서울은 대학생활에서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며, 워킹맘에게 서울은 일과 육아를 동시에 잡을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직장인에게 서울은 직업적 성공을 위한 꿈의 무대가 된다. 비록 이들이 서울에서 펼쳐갈 삶은 고될지라도 그들 마음에는 희망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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