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작열하는 태양, 눅진눅진한 대기. 불과 며칠 전까지도 뜨겁게 대지를 달구던 폭염이 언제 그랬냐는 듯 거짓말처럼 사그라졌다. 한여름 밤의 열기로 잠 못 이뤘던 불면의 밤이 먼 옛일처럼 느껴진다. 2000년대 최고의 더위라는 언론의 호들갑에 묘하게 들뜨기도 했던 이번 여름이 물러가고 있다. 계절의 변화는 언제나 그렇듯 때가 되면 이렇게 찾아온다.

‘폭염’이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혹독한 더위를 말한다. 그 자체로 자연재해다. 기상청에서는 33도 이상 최고기온이 이틀 이어지면 폭염주의보를, 35도 이상이 이틀 지속되면 폭염경보를 발령한다. 폭염 하면 1994년 여름을 빼놓을 수 없다. 올 여름 무더위의 대단함을 일컬을 때 자주 비교대상으로 거론된 바로 그 1994년이다. 경험자들에 의해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일컬어진 그해, 전국 폭염일수는 무려 29.4일이었으며 서울은 열대야가 35일이나 발생했다. 폭염과 가뭄에 지쳐 있다 “드디어 태풍 북상”이라며 상기된 표정으로 첫 멘트를 외쳤던 9시 뉴스 앵커의 기쁨 어린 얼굴이 지금도 선명하다. 이런 94년 여름과 버금가는 수준이었다니 올 여름이 정말 덥기는 더웠나 보다.

94년 여름으로 우리 기억을 이끄는 또 하나의 통로는 김일성의 죽음이다.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한반도의 운명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묘한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변화에 대한 기대로 들떴던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퇴색된 기억 때문인지, 그때 더위는 그래도 견딜만했다. 하지만 올 여름 더위를 식힐 만한 심리적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사드 논란, 누진세 논란, 권력자의 독선과 오만. 이젠 낯설지 않은 소통 부재의 황폐한 현실만 내리 확인하게 될 뿐이었다. 과정과 공유는 없고 결과와 통보만 있는 2016년 대한민국의 민낯이 우리를 더욱 갈증 나게 하고 힘겹게 했다. 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했던 올림픽도 결국 신기루에 지나지 않음을 이젠 안다.

폭염인들 그 자체론 죄가 없다. 그것이 우리 대뇌를 둔하게 해 사고와 판단을 흐리게 할지라도 그저 자연현상일 뿐이다. 때론 청춘의 기억과 하나 되어 그리운 그때를 향수케 하는 것 또한 폭염이다. 순수한 목마름이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현실의 폭염은 오롯이 질곡이다. 계절이 바뀌어도 식지 않는 불덩이다. 해소될 길 없는 꽉 막힌 갈증이다. 시간은 영화 ‘back to the future’ 속 미래마저 넘어선 현재를 살고 있건만, 의식과 제도는 60~70년대 산업화 시대의 그것이다. 이 모순을 어찌해야 할까? 그래도 희망의 싹을 보고 싶다. 올여름 불통의 권력에 그들 고유의 상상력과 행동력으로 맞선 대학생들의 젊은 실천이 상쾌했듯이.

이제 폭염은 지나갔다. 진정 그렇게 믿고 싶은 9월 첫 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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