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숙케치]

 

8월 14일(일), 비가 내린 듯 서울버스터미널은 차분하게 젖어있었다. 할머니 댁에 간다는 설렘과 유난히 친한 대학 동기와의 여행이었기에 친구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나는 더욱 신이 났다. 아주 오래전부터 오매불망 기다려 온 친구와의 여행. 속초는 나의 어릴 적 추억이 담뿍 담긴 곳이었다. 어쩌면 이번 여행이 그래서 나에게 더없이 특별한 여행이었는지도 모른다. 가기 전날 설렘과 걱정에 잠을 못 이루었지만 여행 당일 컨디션은 최고였다. 가는 내내 사진을 찍고 창밖의 비 내린 풍경을 감상하며 분위기를 즐겼고 서로 못다 한 이야기들을 꺼냈다.

마침내 도착한 속초는 휴가를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바닷바람에 실려 온 짭짤한 바다 냄새가 참 반가웠다. 우리 둘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배고픔도 잊은 채 바로 앞 속초 바닷가로 달려갔다. 까끌까끌한 모래가 신발 안으로 들어왔고 파도에 젖어 축축했지만 정말 행복했다. 몇 번의 첨벙임 끝에 잊고 있던 배고픔이 밀려왔다. 길거리의 모든 음식이 우리를 유혹했다. 거리에서 흥정을 하는 상인들이 정겹게 느껴졌고 수산 시장의 비릿한 냄새조차 기분 좋았다. 저녁은 회와 매운탕이었다. 입에서 ‘녹는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만찬이었다. 식후에 디저트로 딸기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 나서야 우리는 일어났다.

배가 불렀고 발걸음이 닿는 대로 걸었다. “200원이면 개배를 탈 수 있대!” 근처에서 신난 꼬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개배를 타고 건너간 곳은 영화 미나 문방구를 연상케 하는 작고 한적한 마을이었다. 한 가게에 들러 폭죽을 사서 바다로 갔다. 밤바다 불꽃놀이는 겁쟁이들의 비명으로 시작되었다. “라이터를 못 키겠어. 켜줘…” “근데 모래에 뭐가 기어 다녀 벌레인가?”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무너진 까만 밤바다 위의 폭죽놀이는 근사했다.

휴대전화에는 할머니의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늦은 밤 택시를 구하지 못한 우리는 가까스로 한 동네 주민을 통해 할머니 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늦은 밤 조금은 낯선 동네에서의 히치하이킹. 아직 세상은 따뜻하고 안전했다. 씻고 누우니 눈이 스르르 감겼고 하루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여행은 항상 옳다. 누군가는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친구가 생기면 단둘이 여행을 떠나보라 했다. 여행은 그 사람을 더 잘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멋진 기회다. 여행이라는 두 글자가 누구에게나 설레는 까닭일까.

조혜원(문헌정보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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