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필자의 책장엔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태국, 이탈리아의 가면이 전시돼 있다. 필자가 세계의 가면을 모으게 된 이유는 어떤 나라를 가든 그 나라만의 특색이 담긴 가면이 있기 때문이다. 각 나라별로 저마다의 가면을 갖고 있는 건 국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가면 대신 익명 뒤에 정체를 숨긴 채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다. ‘익명사회를 들여다보다’ 기사(본지 제1311호 3면 참고)에는 ‘익명’의 가면을 쓴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렸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익명은 악성 댓글, 무차별적 비난 등의 문제를 낳았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감을 망각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처럼, 익명 사회 속에서 일어난 일일지라도 자신이 저지른 일은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책임지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익명을 방패삼아 책임감 없이 쓰인 글들을 보며, 필자 또한 ‘나도 지금껏 글 한 문장 한 문장, 그리고 한 단어 한 단어를 책임감 없이 써내려갔던 것은 아닐까’ 돌이켜봤다. 필자가 쓴 기사를 통해 누군가가 상처를 받진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저 글 쓰는 것이 좋아 숙대신보 기자 활동을 시작한 탓에 맡은 기사의 내용에만 집중했지, 필자의 손에서 쓰인 기사가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부담 없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남과 동시에 ‘책임감’이라는 단어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자신이 쏟아내는 말에 누군가의 마음이 상하진 않았는지 재고해봐야 한다. 여과 없이 내뱉는 말 한마디로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도록 말이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