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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to the 2000s응답하라 나의 어린 시절이여
박민주 기자  |  smppmj87@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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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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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vN 드마라 ‘응답하라 1988’이 장안의 화제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지난 2012년 ‘응답하라 1997’을 시작으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2012년을 시작으로 2015년의 끝자락인 지금까지 여전히 2030 복고열풍이다. 추억이란 모든 세대가 갖는 공통된 정서지만 조금 더 공감할 수 있는 우리만의 추억이야기, 지금 시작된다.

“내 미니홈피에 놀러와”
당시 유행이었던 일명 ‘초코송이 머리’와 ‘MC몽 선글라스’. 부모님을 졸라 구입했던 고가의 바람막이 자켓을 입고 한껏 멋부리기에 재미를 붙였다.

주된 연락 수단은 문자메세지였다. 아직 스마트폰이 출시되지 않았던 때니 카카오톡도 없었다. 친구들과 카카오톡이 아닌 문자메세지를 주고 받으며 상대가 메세지를 읽었는지 여부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었다. 휴대폰을 구입할 때는 디자인이 예쁜 것을 선호했다. 휴대폰 이름도 귀여웠다. ‘아이스크림폰’‘캔디폰’‘롤리팝’등 색색의 네온사인이 반짝거리는 휴대폰이 많았다. 대부분 청소년 요금제를 사용했는데, 각 통신사마다 통화 요금을 ‘알’‘팅’등의 이름으로 붙여 통화 요금에 빗대어 ‘알부자’‘알거지’등의 신조어들이 생겨났다.

그맘때쯤 여중생들 사이에서는 인터넷소설이 유행했다. 잠이 들 때면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하며 소녀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것. 바로 ‘싸이월드 미니홈페이지’다. 개인 미니홈페이지에서 친구들과 일촌을 맺으며 우정을 돈독히 했다. 사춘기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감성이 가득 담긴 글귀와 함께 이미지를 미니홈피에 게시해 놓기도 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대체 왜 그랬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간다.

“엄마 저 눈송이예요. 전화 받아주세요”
초등학생 눈송이(가명)의 우상은 얼짱 ‘반윤희’였다. 그녀가 입는 모든 것을 따라했다. 층을 많이 내어 자른 ‘샤기컷’ 머리를 하고 긴팔 티셔츠를 위에 반팔 티셔츠를 겹쳐 입는 일명 ‘레이어드룩’까지. 마지막으로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카고바지’를 입어주면 바로 유행이 완성됐다. 거기에 바퀴달린 운동화 ‘힐리스’를 신었다. 안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금방 사라졌지만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다. 힐리스를 신고 등장할 때면 친구들의 부러움 어린 시선을 받을 수 있어 초등학생 눈송이는 뿌듯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듯이 눈송이의 하굣길 필수코스는 바로 문방구였다. 1,000원만, 아니 100원만 들고 가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100원으로 할 수 있는 군것질을 즐기며 연예잡지를 구경하고 있노라면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아폴로’‘포포’‘차카니’ 등 추억의 불량식품이 가득했었다. ‘다마고치’ 게임기를 가지고 문방구 앞에 친구들과 옹기종기모여 제 자식마냥 자신의 다마고치를 자랑했었다. 정성스레 다마고치를 키우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다마고치처럼 우리도 그렇게 자랐다.

휴대전화보다는 게임기가 더 친숙했던 시절, 부모님께 연락이라도 하려면 길거리나 문방구 안의 공중전화를 이용했다.  문방구에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부모님께 걱정하지 말라는 전화를 걸 때도, 친구에게 함께 놀자고 연락할 때도 모두들 공중전화로 모여들었다. 수신자부담 전화번호를 누르고 잠시 주어지는 10초 동안 부모님에게, 친구에게 이름을 말하고 전화를 받아달라고 소리치는게 일상이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공중전화는 도서관, 스마트폰 충전소, 안심부스로 변화 중이다. 시대에 맞춰 더 쓸모있는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지만 어쩐지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친구들과 우정을 공유하는 수단으로 ‘스티커 사진’이 빠질 수 없다. 친한 친구들끼리 500원, 1,000원씩 모아 찍던 스티커 사진은 어떤 사진보다 소중했다. 사진을 찍고 난 후, 손수 스탬프로 찍고, 글씨도 써서 사진을 꾸밀 수 있었다. 공책이나 필통에 스티커 사진을 붙여 우정을 확인하기도 했다. 스티커 사진으로 풋풋하던 그 순간을 기록했다.

“나는야 매직키드 눈송이”
놀이터 친구들과 함께 골목대장이었던 유년기 눈송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놀거리였다. 흙바닥만 있어도 두꺼비집을 만들 수 있었고, 실 한 줄만 있어도 얼마든지 실뜨기놀이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소독차에서 나오는 연기를 따라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유년기를 떠올릴 때면 유치원을 다녀와서 식구들 다함께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던 식사시간이 기억난다. 어머니가 만든 된장찌개 냄새를 맡으며 ‘매직키드마수리’와 ‘디지몬어드벤처’를 봤다. 주제가를 따라 부르며 프로그램이 시작하길 기다렸다. 매직키드마수리에서 등장하는 마법세계에서 온 마법사 가족이 걸고 등장하는 마수리 목걸이가 있었다. 그 목걸이를 걸때면 마치 내가 마법사가 된 기분이었다.

1990년대에 태어나 2015년이 되기까지. 세상은 누구보다 빨리 변해 왔다. 우리네도 마찬가지다. 동네 슈퍼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행복해 하던 우리는 이제 커피를 즐길 줄 아는 나이가 됐고,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성인이 됐다.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을 보는 지금도 편리하지만 때론 우리 동네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그 때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어찌보면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돌이킬 수 없기에 아련하고, 회상할 수 있기에 영원하다.

즐거웠던 당시를 추억하는 것도 좋지만, 앞으로 다가올 내일도 잊지 말자. 아직 우리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다. 변한 것보다 변할 것이 더 많을 것이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고, 다투기도 했던 추억이 있기에 오늘도 우리의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진다. 다시 만나 반가웠어, 나의 어릴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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