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지난 1306호부터 이번 1308호까지 ‘20대를 말하다’라는 기획 기사를 연재 중입니다. 첫 번째 기사에는 ‘20대의 아르바이트’를, 두 번째 기사에는 ‘20대의 강박’에 대해 다뤘습니다. 아르바이트 속 ‘갑질’로 고통 받는 20대, ‘20대에는 이렇게 해야 해’라는 강박에 떠밀리는 20대, 그리고 인간관계에 혼란을 겪는 20대. 당신은 이 중 어떤 모습이셨나요. ‘20대’라는 이유만으로 나름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20대들을 위로하면서, ‘20대를 말하다’의 마지막, ‘20대의 인간관계’를 다룬 기사를 시작합니다.

학우 52.6% 인간관계에 어려움 겪어
20대 되면서 더 힘들어졌다고 답해

스트레스 불구하고 
개인적, 사회적 이익 위해 관계 유지

이렇다 할 해결책은 찾지 못해

그래픽=윤나영 기자

“이제 누군가와 친해지려 노력하는 게 귀찮아졌어요. 너무 에너지 소비가 크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 <577 프로젝트>에 출연한 한 여배우가 영화 속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다. 그녀의 발언은 SNS 내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화제가 됐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의 반 이상을 한 교실에서 생활하던 학창 시절. 40명 남짓한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함께 밥을 먹는 일상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는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전혀 다른 생활을 마주하게 된다. 과 동기, 선·후배, 교수님 등 여러 사람을 만나는 학교생활부터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대외활동, 아르바이트까지. 소수의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던 중·고등학생 시절과는 확연히 다르다.

‘대학 친구는 진짜 친구가 아니라잖아’‘여대에서는 혼자 다니는 게 더 나아’‘나중에 다 필요할 때가 있으니 인맥관리해야 해’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관계 유지부터 대학에서 새로 만난 친구들과 친밀감을 쌓는 것까지. 친구관계만으로도 벅찬 20대가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나이인 만큼 인턴, 아르바이트, 대외활동 등을 통해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를 다룬 각종 서적을 비롯해 ‘인테크’라는 말까지 등장했을 정도로 사회는 20대에게 인간관계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20대에게 인간관계는 어렵기만 하다.

◆ 20대, 인간관계가 어렵다
숙명인도 인간관계 속에서 어려움이나 스트레스를 겪고 있을까. 본지는 지난 17일(화)부터 19일(목)까지 3일간 본교 학우 557명을 대상으로 ‘20대의 인간관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정확도 95%, 오차범위 ±1.8%p)

설문 결과, 절반 이상의 학우들이 인간관계로부터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관계를 유지하거나 새로 형성하는 데 어려움 혹은 스트레스를 겪은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 52.6%(293명)의 학우가 ‘그렇다’고 답했다. 학우 두 명 중 한 명꼴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셈이다. 

이들 중 62.7%(184명)의 학우는 ‘20대가 되면서 그 정도가 심해졌다’고 답했다. 박세은(미디어 14) 학우는 “10대와 20대의 인간관계는 다른 것 같다”며 “20대의 인간관계에서는 지속적인 감정 교류가 없는 사람에게도 겉으로는 잘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박 학우는 “교수님, 조교님, 선배님 등과의 수직적인 관계도 새롭게 형성돼 힘들다”고 말했다.

달라진 인간관계의 범주에 혼란을 겪은 것은 박 학우뿐만이 아니다. 염지윤(한국어문 15) 학우는 “20대엔 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다”며 “10대일 때 만나던 사람들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공통 관심사가 많았던 반면, 20대가 된 후 만난 사람들은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어서 관계를 맺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우들은 20대가 되면서 생성된 넓고 새로운 인간관계에 고민하며 힘들어하고 있었다. 학우들이 겪는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 ‘인간관계로부터 얻는 어려움 혹은 스트레스 정도(10점 만점)’를 물은 결과, 평균 6.5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평균 점수 보다 높은 7~10점을 택한 학우는 42.4%(158명)에 달했다. 9점을 매긴 익명의 한 학우는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중·고등학생 시절에 만난 사람들에 비해 깊은 관계로 이어지기 힘들다”며 “깊은 관계를 맺고 싶지만 서로의 가치를 따지는 현실 속에선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 유지도 형성도 어려운 친구관계
‘인간관계의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 혹은 스트레스를 겪고 있냐(복수 응답 가능)’는 질문에 65.3%(186명)의 학우가 ‘친구관계’를 꼽아, 많은 학우들이 친구관계에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우들은 친구관계 중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186명의 학우 중 51.2%(106명)가 ‘구체적으로 어떤 친구관계에 어려움 혹은 스트레스를 겪고 있느냐(복수 응답 가능)’는 질문에 ‘학과 동기 혹은 선후배와의 관계’를 꼽았다. 익명의 한 학우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선후배 관계의 중요성이나 위계질서를 딱히 느끼지 못했으나, 대학생이 된 후부터는 선후배와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익명의 학우는 “학과 동기의 수가 많은데, 필요할 때가 아니면 연락하는 일이 드물어 동기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기 어렵다”고 말했다. 

단순히 동기의 관계를 넘어 더 친밀한 사이를 유지하는 대학 친구와의 관계가 어렵다고 말하는 학우도 적지 않았다. 47.8%(99명)의 학우는 ‘대학교 친구와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신지현(미디어 14) 학우는 “과제와 시험에 치여 예민해 질 때가 많아 서로에게 날 선 반응을 보이는 일이 자주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관계 역시 고민의 대상이었다. 44%(92명)의 학우는 ‘고등학교 친구와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민정(문헌정보 13) 학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이 서로 다른 대학에 진학하면서 활동 반경이 달라졌다”며 “달라진 만큼 서로 이해하고 배려해야 할 부분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 학교 밖에서 만난 사람들 역시 쉽지 않다고 느껴
대외활동, 동아리 등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우도 많았다. 인간관계에 어려움이나 스트레스를 겪은 적이 있다고 답한 293명의 학우 중 56.8%(162명)의 학우는 ‘인간관계의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 혹은 스트레스를 겪고 있냐(복수 응답 가능)’는 질문에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를 꼽았다. 

학우들이 특히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인맥관리’였다. 162명의 학우 중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중 어떤 부분에 특히 어려움을 느끼냐(복수 응답 가능)’는 질문에 42.7%(90명)가 ‘인맥관리’를 꼽았다.

‘동아리와 대외활동’이라 답한 학우는 50%(116명)였다. 고채은(한국어문 15) 학우는 “공동의 목적을 갖고 활동을 시작했지만,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는 것에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교수님과의 관계’ 역시 배제할 순 없다. 26.1%(55명)의 학우는 교수님과의 관계가 어렵다고 답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학우는 “학점을 잘 받기 위해서는 교수님에게 잘 보여야 할 것 같아 교수님을 대하기가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아르바이트’와 ‘인턴십’을 꼽은 학우는 각각 34.6%(73명), 5.2%(11명)로 나타났다.

 ◆ 인간관계 관리, 감정적 유대감 또는 이익 위해 지속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힘들어 하면서도 왜 우리는 관계를 유지하고 형성하려고 노력할까. 이에 대한 답변은 ‘감정적인 유대감’ 과 ‘사회적 관계 내에서 얻는 실질적 이익’으로 크게 두 가지였다. 

인간관계를 통해 ‘감정적인 유대감’을 느낀다고 답한 학우들은 주변인과의 관계를 통해 친밀감을 형성해가면서 외로움을 해소하거나 의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다현(한국어문 15) 학우는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것은 힘든 만큼 얻는 것이 있다”며 “특정 이익보다는 편안한 사람들로부터 얻는 안정감과 위로가 좋다”고 말했다. 사람을 사귀어 감정적인 이해를 받을 수 있음에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한편, ‘사회적 관계 내에서 얻는 실질적 이익’을 인간관계 관리의 이유로 꼽은 학우들은 관계를 잘 유지할 경우 후일에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관계가 본인의 신뢰와 평판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권민지(미디어 14) 학우는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며 “다수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의 평판은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간관계 형성의 필요성을 느끼는 학우들도 많았지만, ‘인맥관리’에 대한 압박감 또한 존재했다. ‘20대가 되면서 인맥관리 등 인간관계를 관리해야 함에 부담을 느끼나’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학우는 53.9%(300명)였다. 실제로 한 포털사이트에 ‘인맥관리’를 검색하면 인맥관리를 잘할 수 있는 비법을 담은 책, 인맥관리를 도와주는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 인맥관리를 위한 화술과 화법을 가르쳐 주는 학원 등의 정보가 나온다. 이는 20대의 인맥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와 더불어 인맥관리를 잘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반영된 결과다.

 ◆ 인간관계 위해 하는 행동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해
그렇다면 학우들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거나 형성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을까. 연락을 주고받는 학우들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관계를 맺는 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복수 응답 가능)’을 묻자 73.5%(404명)의 학우가 ‘카카오톡이나 전화 등 연락 주고받기’를 한다고 답했다.  

직접 만나는 것을 택한 학우는 59%(324명)로, 연락 주고받기의 뒤를 이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활용하는 학우도 적지 않았다. 39.5%(217)의 학우는 ‘SNS 활동’을 통해 인간관계를 유지하거나 형성한다고 답했다.

과반의 학우가 카카오톡, SNS 활동을 통해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이는 때로 스트레스를 불러 오기도 했다. ‘인간관계를 맺는 데 사용하는 SNS나 카카오톡 등으로부터 스트레스를 겪은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중 54%(301명)가 ‘있다’고 답해 과반의 학우가 스트레스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친구들과 그룹 채팅방을 통해 지속적으로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익명의 한 학우는 “대화를 통해 친구들과 더욱 친해지는 것 같지만, 가끔 메시지를 확인하고 일일이 답장하는 일에 부담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녀는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낄 때도 많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또 마음이 맞지 않는 누군가와는 멀어지는 일은 새삼스럽지 않다. 우리는 늘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 왔고, 상처받기도 했다. 또한,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빈번해질 것이다.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다만 조금 더 노련해질 뿐이다. 

학우들에게 ‘인간관계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냐’고 묻자 대부분은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그냥 잠자리에 드는 것을 택한다’ ‘혼자 삭힌다’고 말했다. 가장 많은 답변은 ‘진심으로 내 편인 사람을 만나 하소연 한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찾은 해결 방법이 혼자 감내하거나 믿을만한 사람에게 힘듦을 털어놓는 것이 전부인 우리. 학우들의 답변에서 볼 수 있듯이 20대의 인간관계는 서툴고 어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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