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문학이 이끄는 대로 발길이 닿는 곳으로
문혜영 기자  |  smpmhy87@sookmyung.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11.0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2015년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올 한해 역시 열심히 살아온 당신, 정신 없는 하루 속에서도 남들에게 뒤쳐질까 편히 쉬지도 못하진 않았는지. 바쁜 일상에 지쳐 휴식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반나절 만에 다녀올 수 있는 힐링 여행을 소개한다. 여유롭게 여행을 하고 싶지만 시간도 돈도 부족하다면, 가까운 서울에서 책 한 권과 함께 지친 몸을 달래보자.

   
▲ '이상의 집'에서 한 여인이 방명록을 남기고 있다.
<사진=문혜영>

◆ 도심 속 휴식 공간, 이상의 집을 찾다
경복궁의 서쪽에 위치해 있어 서촌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유독 문학가나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다. 최근 유명세를 치르면서 카페와 음식점들로 가득 차 상업화돼버린 북촌과 달리 서촌은 아직 골목 구석구석에 옛 건물들의 모

습이 남아있다. 문학과 예술이 꽃 폈던

   
<사진=문혜영>

동네인 만큼 이곳에는 시인 노천명의 생가와 화백 박노수의 미술관, 화백 이상범의 생가, 시인 윤동주의 하숙집 등 유명한 문학가와 예술가의 흔적이 많다. 본지는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로 작가 ‘이상’이 머물던 집터를 찾았다.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로 나서자 즐비해 있는 상점의 간판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간판이 모두 한글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외국 브랜드의 상점들도 이곳에서는 모두 한글로 적혀 있다. 간판을 보며 거리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큰 길을 벗어나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호떡과 붕어빵을 파는 작은 포장마차가 보인다. 속이 실한 붕어빵 한 봉지를 손에 쥐고 골목에서 5분가량 걷다 보면 오른쪽에 ‘이상의 집’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곳은 작가 이상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화공간이다. 이상이 세 살부터 스물세 살까지 살았던 집터의 일부에 자리해 있는 이곳은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매입해 ‘아름지기’가 관리하고 있다. 한국 문학계의 ‘이단아’라고 불렸던 이상. 자의식 문학의 선구자였던 그도 처음엔 ‘난해한 시’를 쓴다며 질타를 받기도 했다. 실제로 그가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한 ‘오감도’는 띄어쓰기나 단락의 무시 등을 이유로 당시 사람들에게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날개> <권태> 등 많은 작품을 남기며 오늘날에는 천재 문학가로 기억되고 있다.

이상의 집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으로 마음껏 쉬었다 갈 수 있다. 이곳은 조용히 수다를 떨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내부 공간과 철문 밖 ‘이상의 방’으로 구성돼 있다. 뒤쪽의 철문을 열고 나가면 콘크리트 벽면으로 된 좁고 어두운 공간, 이상의 방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이상의 생애를 보여주는 짧은 영상이 재생된다. 다시 내부로 들어오니 등산을 막 끝내고 돌아온 듯한 다섯 명의 아주머니들이 근처 빵집에서 사온 빵을 나눠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른쪽 벽의 책꽂이 한 켠에는 이상과 관련된 책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책꽂이에 꽂힌 책 하나를 꺼내 감상해본다. 화려하거나 넓지도 않고, 그의 작품들이 가득한 박물관이나 전시회도 아니지만 아늑하고 조용한 분위기는 이상의 집을 한 층 더 여유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준다.

◆ 윤동주 문학관, 윤동주의 꿈을 담다

   
▲ 시인의 언덕에 올라가는 길.
울타리에는 윤동주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사진=문혜영>


경복궁역에서 7212, 1020, 7022 번 버스 중 하나를 타고 15여 분을 가면 ‘윤동주 문학관’이 보인다.

윤동주는 일제 강점기 시절 조국의 독립에 대한 염원을 글로 담아냈던 시인으로 <참회록> <서시> <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 등 우리에게도 이미 친숙한 시들을 남겼다. 종로문화재단에 의해

   
▲ 인왕산 자락에 단풍이 들고 있다. <사진=문혜영>

운영되는 윤동주 문학관은 그를 기념하기 위해 인왕산 자락에 지어졌으며, 바로 옆에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윤동주는 대학 시절 서촌 누상동에 위치한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을 했다. 그는 함께 하숙을 하던 후배 정병욱과 종종 인왕산을 오르며 시정을 다듬곤 했다. 윤동주와의 특별한 인연 덕분에 인왕산 자락에 윤동주 문학관이 생기게 됐다. 이 문학관은 원래 물탱크와 ‘청운수도가압장’이 있던 곳으로 2012년에 지금의 문학관으로 개조됐다. 작은 크기의 문학관이지만 윤동주의 생애와 그의 친필 시 원고 등 그와 관련된 자료들이 가득하다.

문학관은 제1, 2, 3 전시관으로 나눠져 있다. 제1 관을 보기 전에 먼저 제3 관을 들릴 것을 추천한다. 제3 전시관은 문학관이 개조되기 전 물탱크가 있던 네모난 공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제3 관에서는 윤동주의 인생이 담긴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영상을 본 후 제1 관을 관람하면 그의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제1 전시관에는 그의 친필 시 원고들이 전시돼 있다. 이중 <참회록>도 있는데, 이는 창씨개명 이후 그의 답답한 마음을 담아 적은 시다. 윤동주는 모자의 주름마저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완벽주의자였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일제에 굴복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1941년 윤동주는 민족문화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의 유학을 결심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히라누마 도오주’로 창씨개명을 했다. 이 사실을 참을 수 없었던 윤동주는 그의 괴로운 마음을 담아 <참회록>을 남긴다. 윤동주의 글씨로 적힌 <참회록>의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그의 슬픔과 고통이 전해져 온다.

1943년 항일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일본군에 체포된 윤동주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교도소에서 매일 의문의 주사를 맞으며 생체 실험을 당한 윤동주는 결국 1945년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숨을 거뒀다. 광복이 6개월 밖에 남지 않은 2월 16일이었다. 2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윤동주는 그토록 바라던 광복을 결국 보지 못 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누구보다 애썼던 그를 그의 시를 통해 추억하며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한다.

윤동주의 문학관에서 나와 바로 뒤쪽에 위치한 시인의 언덕에 오르면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과 함께 윤동주의 꼿꼿했던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울타리 한 칸마다 낙서처럼 적혀있는 그의 시도 눈에 띈다. 울타리에 적힌 시 <별 헤는 밤>을 감상하며 걷다 보면 시인의 언덕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서촌의 전경과 함께 윤동주의 시비가 보인다. <서시>가 새겨져 있는 시비를 가만히 서서 읽어보면 이 언덕을 지나며 조국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윤동주의 모습이 그려진다.

<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 청운문학도서관, 도심 속 한옥 도서관을 만나다
시인의 언덕에서 내려와 호랑이 상을 찾아 보자. 그곳이 바로 청운문학도서관의 입구다. 청운문학도서관은 윤동주 문학관 아래쪽에 위치한 종로구의 작은 공립 도서관이다. 최초의 한옥 도서관으로 알려져 있는 청운문학도서관에 들어서면 한옥과 자연이 어우러져 있어 마치 산 속 서당에 온 듯 하다. 도서관의 지상 1층에는 두 채의 ‘한옥채’가 있다. 큰 한옥채는 방문객들이 한옥 안에서 마음껏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이며 작은 한옥채는 흘러나오는 시 낭송 라디오를 들으며 쉴 수 있는 공간이다. 한옥채는 사전 예약을 통해 대관할 수 있으며 대관하지 않더라도 대관한 사람이 없다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작은 한옥채에서는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 낭송 라디오가 흘러나온다. 가만히 앉아 시를 감상하다 지루해지면 ‘마음에 시 한 편’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는 작은 항아리 안에서 두루마리 종이 한 장을 꺼내보자. 항아리 속에는 시가 한 편씩 쓰여 있는 두루마리 종이들이 가득 담겨 있다. 어떤 시가 나올지 기대하며 종이 한 장을 뽑았다. 김병렬 시인의 ‘홍시’라는 시였다. 기념으로 간직하고자 지갑 속에 넣고 한옥채 문을 나섰다.

한옥채를 구경한 후에는 지하 1층에 있는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문학도서관인 만큼 도서관 내에 비치된 도서 9,771 권 중 95% 이상이 문학 서적이다. 도서관에서 문학 도서 한 권을 꺼내 대출했다. 빌려온 책 한 권을 집에서 읽으면 이 여유를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 한 권을 빌리고 인왕산을 내려가는 길은 한적했다. 왼쪽의 주택가에서는 동네 아저씨 두 명이 낑낑거리며 감나무의 감을 따고 있었고 수업이 끝난 고등학생들은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바쁜 일상생활로 돌아가지만 간만의 힐링 여행에 잠시나마 여유 있던 반나절이 감사했다.

문혜영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제4차 산업혁명, 우리 대학은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는가?
2
연료전지 기술이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을까?
3
‘숙그와트 부엉이’, 학우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4
도서관에서 배우는 학술 자료 활용법
5
기자의 고민이 좋은 신문을 만든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발행인 : 강정애 | 편집인 겸 주간 : 강미은 | 편집장 : 하재림 | 발행처 : 숙명여자대학교|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정애
우)140-742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로 47길 100 숙명여자대학교 숙대신보사
행정실 ☎ 710-9150 (Fax) 706-2695 / 편집실 ☎ 710-9721 / 9152
Copyright © 2017 숙대신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mnews@sookmy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