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미 교수의 읽는 영화]

 

<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
국가: 이란
연령: 12세 관람가
개봉일: 2015. 11. 19
러닝타임: 101분

단풍이 세상을 채색하는 이 가을, 독특한 사랑이야기가 개봉된다. 멜로 영화하면 <화양연화>를 꼽는 사람이 많다. 사랑의 본질이 만남보다 그리움에 있다는 것을 홍콩 감독 왕카웨이(王家衛)는 <화양연화>로 우리 기억 속에 아로새겼다.

이란의 사피 야즈다니안 감독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상 수상작 <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에서 그리움으로 기억하는 사랑을 그림으로써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화양연화> OST 중 우리 마음을 가장 흔들었던 ‘키샤스 키샤스’가 이란어로 흘러나오는 엔딩 부분에서는 이 영화가 <화양연화>의 오마쥬임을 드러낸다.

프랑스에 살던 골리(레일라 하타미)는 보낸 이가 적혀 있지 않은 한 장의 사진 출처를 찾아 갑자기 고향인 이란으로 돌아온다. 오자마자 얼굴도 모르는 남자 파하드(알리 모사파)가 반갑게 마중을 나와 있다. 그는 택시를 잡아주며 골리의 집이 있는 마을로 가달라고 기사에게 말한다. 골리로서는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 파하드라는 남자는 매일 그녀 곁에 나타나 선물을 주고 간다. 어릴 적 친구라고 하며 돌아가신 골리의 어머니와도 친했던 사이라고 말하는 이 남자. 영화는 그녀를 매일 기억하는 남자 파하드와 그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 골리가 어떤 기호로 소통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기억’이라는 코드를 화도로 삼고 있다. 골리가 고향 마을에 돌아와서 두 번째 마주치는 사람은 치매 노인인 친구의 아버지다. 골리가 아무리 딸의 이름을 말해도 노인은 아들이 어쩌고저쩌고라고 말할 뿐 아무런 기억도 없다. 그녀는 그와 소통되지 않아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기억하는 자와 기억하지 못하는 자의 소통은 기억하는 자의 안타까움을 동반한다. 삶 자체가 골리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으로 점철된 파하드의 답답한 심경을 골리에게 되비추는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많은 상징적 기호를 담고 있다. 골리를 사랑하는 파하드에게는 프랑스를 상징하는 모든 기호가 사랑으로 전환된다. 골리가 프랑스로 떠난 후, 골리의 엄마와 친해서 습득하게 된 골리의 초등학교 때 교과서를 손에 쥐고 아이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행위도 파하드에게는 그리움을 현재화하는 과정이다. 그녀가 먹을 법한 프랑스식 치즈를 만드는 법을 몇 년간이나 치즈 장인에게 배워 치즈를 만들 때도 골리에 대한 사랑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그리움이라는 기호는 과거의 사랑을 과거가 아닌 현재성을 지니게 만든다는 명제는 이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 ‘지금 몇 시?’라는 말은 상대적 시간을 의미한다. 현재 시간이 몇 시 몇 분이라는 것보다는 아무리 과거의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현재에 불러와 있다면 그것은 현재라고 보는 맥락에서 그렇다.

이 영화는 과거가 현재가 자주 뒤섞인다. 지금 화면에 나오는 상황이 과거인지 현재인지를 알아채는 속도는 관객마다 다르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영화가 반 정도 지났을 때야 몇 개의 소도구나 장치를 통해 확실히 인식하게 된다. 시간의 상대성을 영화 속에서 실험하고 싶었던 감독으로서는 <화양연화>에서 표시됐던 1962과 1966년 등의 시기구분이 불필요하다고 보았던 것 같다.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는 기호란 해독 방식을 배우지 않으면 습득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파하르의 사랑 기호를 골리가 습득하는 과정을 그린다. 기억으로 사는 남자 파하르의 독특한 사랑 방식을 통해 우리는 사랑의 본질이 그리움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환기한다.

 

 

 

 

의사소통센터 황영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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