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난주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고시했다. 정부의 입장을 핵심만 정리하면 기존의 검인정 교과서가 좌 편향되었고, 학생들로 하여금 대한민국을 부끄럽게 생각하도록 오도하고,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에 국정화가 불가피하며, 정부가 최선을 다해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 테니, 국정 교과서의 내용을 보고나서 문제를 지적하라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의 주장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주장하는 바와 행하는 것이 모순되는 자가 당착이고,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본말 전도다.

가장 어이없는 자가당착은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 국가 중에서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북한이라는 비정상적 상대와 대치하고 있다는 이유로 우리도 정상 국가가 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논리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학생들이 교과서 때문에 우리나라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주장도 침소봉대고 본말전도다. 이른바 ‘헬 조선’처럼 우리 공동체에 대한 자기 비하 적 표현이 유행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대다수 어린 학생들의 공통적 생각이라는 주장은 악의적 과장이고 거짓이다. 만에 하나 거짓이 아니라도, 그것이 어찌 교과서 때문만이겠는가? 모든 문제를 교과서 탓으로 돌리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처사다.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겠으니 내용을 보고 비판하라는 주장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좌와 우는 상대적이다. 중간에 서서 보면 좌우가 반반이고 우측 끝에서 보면 모두가 좌경이다. 기존 역사교과서를 만든 사람의 90%가 좌파라고 말하는 이는 그가 우측 10%에 속하고 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을 가진 이들이 어떻게 균형 잡힌 교과서를 만들겠는가? 올바른 교과서라는 표현도, 내용을 보고 비판하라는 주장도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자유민주주의는 하나의 올바름을 지향하지 않는다. 하이예크가 말한 것처럼 공통의 목적이 아니라 공통의 수단에 대한 동의에 기초한 것이 자유민주주의 공동체다. 하나의 올바른 진리와 내용이 아니라 여러 개의 다른 의견과 주장을 가능케 하는 민주적 수단과 방법을 지키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다.

정부 여당이 내세우는 국정화 논리는 어느 것 하나 반 자유주의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 공동체의 핵심적 가치를 부정하고 훼손하는 매우 위험한 주장들이다. 교과서 때문에 우리나라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국정교과서를 강변하는 이들 때문에 우리가 부끄럽다는 것을 정부는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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