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인식과 함께 여대의 모습은 변화해왔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대가 달라지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이 있다. 바로 여대의 동문회장이다. 이들은 여대의 위상이 높았던 과거부터 경영난과 정체성 논란에 시달리고 있는 오늘날까지 여대와 함께 해왔다. 여대의 오랜 역사를 봐온 동문회장들은 오늘날의 여대의 존재 이유와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민족여성사학 숙명여대의 동문회장 정순옥 씨(화학 73졸), 성심여대를 비롯한 가톨릭 관련 학교들이 통합돼 생긴 가톨릭대 성심교정 동문회장 김경희 씨(국어국문 83년 졸), 79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고 있는 성신여대 동문회장 김옥임 씨(일어일문 81년 졸)를 만나 여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Q. 입학 당시 학교에 지원한 이유는
김경희 가톨릭대 성심교정 동문회장(이하 가톨릭): 가톨릭 종교 관련 학교를 가고 싶어 입학했다. 성심여대는 수녀들이 운영하는 4년제 가톨릭 계통의 여대였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있던 1995년에 가톨릭 종합대학을 만들자는 취지로 성심여대, 가톨릭신학대학, 가톨릭대학을 통합해 지금의 가톨릭대학교가 됐다. 모교가 여대에서 남녀공학 대학이 된 셈이다.

김옥임 성신여대 동문회장(이하 성신): 성신여대는 1936년에 설립돼 79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건학 이념은 ‘정성과 신의를 다해 자신을 올바르게 정립하는 것’이다. 그런 건학 이념이 좋아 선생님의 꿈을 안고 당시 사범대학이었던 모교에 진학했다. 신뢰를 중요시 하는 학풍이 성신여대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정순옥 숙명여대 동문회장(이하 숙명):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가정과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여성인재로 키우고자 숙명여대에 진학할 것을 추천하셨고 당시 신설된 화학과에 입학해 첫번째로 졸업했다.

Q. 과거와 비교했을 때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여대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바뀌었나
가톨릭: 당시 부모들은 딸이 취업을 하기보단 좋은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기를 원했다. 여자들은 대학 졸업 후 대부분 결혼했고 사회활동을 하는 이는 드물었다. 여대에서는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 좋은 아내로서 가정을 꾸려갈 수 있도록 여성들을 교육했다. 그러나 세월이 변하면서 현대의 부모들은 이제 딸이 좋은 곳에 시집 가는 것뿐 아니라 취업을 하고 자신의 꿈을 쫓아 주체적인 삶을 살기를 원하게 됐다. 이제 여대는 ‘현모양처’를 교육하는 곳이 아니라 여성의 자아실현을 위한 교육기관이 됐다.

성신: 1970-80년 대엔 사회 전체가 과도기적이었다. 점차 여성의 입지가 넓어져 사회에서는 여자와 여대의 사회적 역할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그 기세를 이어 받아 현재 우리나라는 첫 여성대통령이 나올 정도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과거에 비해 많이 향상됐다.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는 본래의 목적은 옅어졌지만 여성교육기관인 여대가 전문성을 갖고 교육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여성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선 여성 교육의 특수성이 제고돼야 한다.

Q. 여대의 약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톨릭: 남녀평등이 실현됐다고는 말하지만 동문회장을 하면서 느낀 건 아직 우리 사회에서 남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여성의 사회적 지위보다 높다는 점이다. 동문회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선배들이 사회 곳곳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후배들을 잘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과거 남자가 사회로 진출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그에 비해 여자들의 사회활동은 활발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동문회에서도 남자들이 더 주도적으로 활동하게 됐다. 사회활동을 하는 선배들이 별로 없는 탓에 여대 동문회는 활성화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Q. 여대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숙명: 남녀공학 대학에서 여성은 학교 생활에 주체적으로 임하기보다는 주변에서 사람들을 도와주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대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든지 여성이 ‘주체’, 즉 리더가 된다. 여성 리더십을 함양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특히 숙명여대의 경우 여성지도자를 배출하겠다는 교육 이념에 맞춰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립심과 자부심을 갖고 사회로 나갈 수 있다.

성신: ‘차별 받을 우려가 없다’는 것이 여대의 강점이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남자 제자를 가르치고 싶어한다. 나조차도 남자 제자가 있었다면 그를 편애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아직까지 남녀 차별이 남아있는 현실에서 여대는 여성만의 독자적인 교육 기관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여대는 남녀에 대한 차별을 받지 않고 본인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곳이다.

Q. 여대는 여성의 교육기회 확대를 위해 설립했다. 남녀가 평등하게 교육을 받는 오늘날에도 여대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가톨릭: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톨릭 대학교와 통합했을 때 ‘성심여대’의 정체성이 사라질 것을 우려해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만약 성심여대로 계속 남았다면 대학을 통폐합하려는 정부의 정책과 대학들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 성심여대의 남녀공학 대학화는 경영난을 극복하고 대학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재정난을 겪거나 다른 학교에 비해 뒤처진다면 충분히 공학화를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역사가 깊은 여대가 튼실한 재정 상태를 갖추고, 인재들을 육성해 전통을 지켜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공학화를 하지 않는 것이 맞다. 전통이 있고 운영도 원활히 이뤄지고 있는데 굳이 여대를 없애야 하는 이유는 없다.

숙명: 여성의 지위가 과거에 비해 향상됐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남녀 차별이 존재한다. 취업에서의 차별, ‘유리천장’, 결혼 생활에 있어서의 차별 등이 그 예다. 여기서 여대는 사회적 책임과 사명감을 갖고 그러한 차별을 완화시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대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한 이유다.

성신: 시대에 따라 대학의 역할이나 필요성이 변하듯 여대의 존재 이유도 변하고 있다. 따라서 여대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존폐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굳이 말하자면 지금까지 수행해 온 여대의 기능과 역할이 감성이 중시되는 미래 사회에서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여성들에게 유리한 재능을 필요로 하는 시기가 도래한다. 여대는 미래 사회에 적합한 인재를 키우는 역할을 함으로써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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