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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폭력, 사랑이란 탈을 쓴 범죄
김서정 기자  |  smpksj89@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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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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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윤나영 기자>

날로 심해지는 데이트 폭력

연인 사이의 친밀감에 치우쳐 데이트 폭력을 인지 못해

자신만의 확고한 연애관을 세우는 것이 중요해

지난 6일(일) 서울시 송파구에서는 한 여성이 장롱 속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범인은 그녀와 약 1년간 교제한 남자친구였다. 그는 평소 그녀의 이성 관계를 의심해 계획적인 살인을 저질렀다며 범행동기를 자백했다. 남자친구의 지나친 의심과 집착은 한 쌍의 연인을 단숨에 범죄 사건의 주인공으로 전락시켰다. 일명 ‘장롱 살인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남녀 사이에서 발생하는 ‘데이트 폭력’의 극단적인 사례다.

데이트 폭력이란 교제 중인 연인이나 배우자가 강압적, 폭력적 행동으로 상대방을 지배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한 신체적 학대뿐만 아니라 언어적, 감정적, 성적, 경제적 학대 모두 데이트 폭력에 속한다. 이는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해 비극적인 살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 데이트 폭력, 남의 일이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A 학우는 6개월 전의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답답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짧은 교제 기간이었지만, 일방적이었던 남자친구의 행동은 A 학우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남자친구와 A 학우의 지인들이 서로 잘 아는 사이였기에 그를 신뢰하며 교제를 시작할 수 있었다. A 학우의 지인들은 멋진 남자친구를 뒀다며 그녀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들은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연인이었다. 하지만 교제를 시작하고 약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다정한 남자친구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남자친구와 술을 마신 후 어두운 밤거리를 거닐던 어느 날이었다. 인적이 드문 거리를 걸으며 남자친구와 평소와 다름없는 대화를 나눴다. 그날따라 남자친구의 스킨십은 적극적이었다. 거리의 사람들도 신경 쓰지 않고 거리낌 없이 원피스 안으로 손을 집어넣으며 신체 접촉을 시도했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A 학우의 말에도 남자친구의 강압적인 행동은 멈출 줄을 몰랐다. 수치심을 느낀 A 학우는 서둘러 어두운 길가를 빠져나갔고, 곧바로 이별을 통보했다.

그날 이후로도 몇 번의 만남이 있었다. 남자친구는 지속해서 A 학우의 집이나 학교로 찾아와 미안하다는 말로 그녀를 회유했다. 마지못해 만날 때면, 남자친구는 어김없이 과도한 스킨십을 요구했다. 이를 두고 다툴 때마다 남자친구는 “사랑한다면 뭐든 할 수 있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뱉어냈다.

A 학우는 남자친구가 요구하는 만남에 응하지 않으면서 서서히 관계를 정리해 갔다. 이미 6개월도 더 지난 일이지만 전 남자친구와 닮은 얼굴만 봐도 그의 비상식적인 행동이 떠오를 정도다. 지인들 사이에서는 결별의 원인이 A 학우의 잘못된 행동 때문이라는 와전된 소문이 나기도 했다. A 학우에게 그 남자와의 기억은 후유증으로 남았다. 그녀가 또 다른 인연을 만나기에는 상처를 치유할 시간이 필요하다.

◆ 사랑의 그늘에 가려진 데이트 폭력
우리 주위의 행복한 연인들을 보면, 데이트 폭력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데이트 폭력은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 퍼져 있다. 경찰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은 날로 증가해 지난해에는 피해자 수가 약 7천여 명에 달했다. 그중 폭행 피해자는 6,032명, 성폭행 피해자는 678명, 생명의 위협을 느낀 피해자는 64명이다. 특히 성폭행은 피해자가 371명이었던 2010년과 비교해 약 두 배 증가했다. 심지어 전문가들은 데이트 폭력이 실제로 훨씬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라 추측한다. 많은 연인이 데이트 폭력을 겪어도, 폭력 사건으로 신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데이트 폭력이 실제로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연인의 데이트 폭력을 범죄적 ‘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데이트 폭력이 발생한 후,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사과하지만 폭행의 이유를 피해자의 탓으로 돌린다. 피해자는 한때 연인 관계에 있었던 가해자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만남을 지속한다. ‘친밀감’이 바로 그 원인인 것이다. 이에 대해 성평등 상담소 이경선 전임 연구원은 “피해자가 친밀감 때문에 가해자를 용서하게 돼 가해자는 더 이상 폭행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다”며 “연인 사이의 친밀감이 데이트 폭력의 악순환을 그리는 주원인이다”고 말했다.

연애가 사적인 영역이라는 점도 데이트 폭력이 베일에 속에 가려지는 이유 중 하나다. 피해자는 사적인 연애 문제를 남에게 쉽게 말하지 않는다. 이 전임연구원은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남들에게 알리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며 “자존심, 부정적 소문이나 보복에 대한 두려움 등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인 요인들 때문에 데이트 폭력의 경험을 감춘다”고 말했다. 따라서 설령 연인 간에 데이트 폭력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제삼자가 데이트 폭력을 쉽게 눈치를 챌 수 없는 것이다.

◆ 서로 다른 남녀의 말, 솔직한 대화를 해야
A 학우는 남자친구가 성적인 농담을 할 때마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곤 했다. 남자친구의 지나친 성적 농담에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친구와 다툴 때 그가 “너도 성적인 농담이 좋아서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냐”며 외려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곤, 자신의 침묵이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는 걸 깨달았다. 남자친구는 A 학우의 불편한 침묵을 긍정으로 이해한 것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이 속담은 흔히 우리 사회에서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하지만 몇몇 남성들에게는 ‘상대방이 거부하더라도 재차 접근하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연인 관계에서 ‘열 번 찍는 행위’는 독이 된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여성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몇몇 남성들은 여성의 ‘NO’를 ‘YES’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칫 데이트 폭력의 불씨가 될 수 있기에, 이 과정에서 여성의 확실한 의사 표현이 중요하다.

여성이 확고한 의사 표현을 하지 않고 남성의 요구에 어쩔 수 없어 하며 흔들리는 모습은 오해의 시작이 되곤 한다. 남성은 여성의 모호한 반응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전임연구원은 “여성들이 사회적, 개인적 요인 때문에 명확하지 않은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반응이 남성에게는 여지를 남겨주는 것이 될 수 있다”며 올바른 의사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연인관계에서 거절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말하는 것을 쉽지 않다. 이에 대해 권재영(LCB외식경영 15) 학우는 “잘못된 의사 표현으로 인해 나중에 큰 상처를 입는 것보다는 솔직히 이야기하는 편이 더 낫다”고 말했다.

◆ 데이트 폭력에 맞서 알아둘 것
데이트 폭력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해자가 가진 보편적인 특징이 없으므로 누군가의 연인이라면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데이트 폭력을 대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아는 것’이다. 교제를 시작하기에 앞서 자신과 상대방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 전임연구원은 “개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제에 필요한 이성관과 연애관이 확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데이트 방식, 스킨십 허용 정도, 스킨십이 가능한 장소 등과 같이 구체적인 기준을 정해두는 것이 좋다. 데이트 폭력의 위험이 다가왔을 때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고한 연애관을 구축했다면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않는 데이트는 의미가 없다. 데이트는 남녀의 기본적인 기호부터 시작해 성적인 부분들까지 서로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데이트 폭력에 맞서 자신에 대해서 알고, 상대방에 대해서 아는 것. 행복한 연인 관계를 향한 첫걸음이 된다.

데이트 폭력은 사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제삼자가 데이트 폭력의 사실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직접 개입할 수 없다. 제삼자는 단지 당사자에게 데이트 폭력의 의미를 상기시켜 줄 뿐이다. 하지만 당사자가 먼저 도움의 손길을 구한다면, 데이트 폭력에서 벗어나게 해 줄 기관은 곳곳에 있다. 이 전임연구원은 “데이트 폭력을 당했을 경우 망설임 없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며 “성평등 상담소와 같이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어디서든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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