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이번 호부터 다음 호까지 “잘 먹고 잘살자”라는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잘 먹고 잘살기 위해 정신없이 돌아가는 하루 속에서 당신은 즐거웠나요. 혹시 바쁜 일상에 익숙해져 사소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잘 먹고 잘살자”는 이런 당신의 얘기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 첫 번째 기사, 지금 시작합니다.

 

10대부터 50대까지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
자신의 삶에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의 양이 많아 바쁘지만, 어느 것도 포기할 수는 없어

“전 그저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에요”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속 ‘수남’은 잠도 줄여가며 밤낮없이 일한다. 그러나 그녀 앞에 닥친 현실은 어둠뿐이었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쉼 없이 달렸음에도 나아지지 않는 생활환경은 그녀에게 절망을 선사했다. 이는 비단 ‘수남’만의 일이 아니다. ‘잘 먹고 잘살기’ 위해 많은 현대인은 ‘수남’과 같이 일하고 있다.

◆ 19세, 한 시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어요
고등학교 3학년 최규리(19) 양은 요즘 ‘시간이 부족하다’ ‘하루가 너무 짧다’는 생각을 한다. 최 양은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새벽 2시쯤에야 겨우 잠자리에 들지만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입시를 위해 학교에서는 매일 오후 10시까지, 독서실에서는 새벽 1시까지 공부를 하며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공부에 쏟아 붓는다. 그래도 수능 준비, 학교 숙제, 시험, 내신 관리를 하려면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게다가 요즘은 수시 지원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지원할 대학을 조사하며 입시 상담까지 받아야 한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부담감에 시달리던 최 양은 최근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등하교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 수업이 끝난 후 쉬는 시간, 점심시간, 저녁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공부에 사용했다. 영어 단어를 암기하고 수능 연계 교재를 보는 등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자 부족한 공부량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었다.

자투리 시간까지 활용했지만, 여전히 최 양의 시간은 여유롭지 않다.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아 학교에 가지 않는 휴일에도 아침부터 새벽 1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한다. 가끔은 독서실에 가지 않고 가족들과 외식도 하고 영화도 보며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 하지만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잠자리에 누우면 공부할 시간을 낭비했다는 후회만이 그녀의 머릿속에 가득 찬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집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아예 사라져 힘들고 속상해요”

이런 바쁜 일상에 최 양은 결국 수면시간을 대폭 줄였다. 평소 잠이 많은 편이라는 그녀는 어린 시절처럼 푹 한번 자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여유롭게 책을 읽고 영화, TV 등도 보며 다이어트와 연애도 하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 또한 밝혔다. 잠깐의 여유가 주어져도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는 죄책감이 들어 최 양은 마음 놓고 쉬지 못한다. 매일 잠자리에 들 때면 최 양은 하루를 후회하며 ‘밤을 새워서 공부해야 하는지’ ‘내일은 얼마나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할지’ 계산한다. 때로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고 공부를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부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을 자극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바쁜 고등학교 생활에 지친 그녀는 앞으로 다가올 사회생활이 지금보다 더 바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표했다. 최 양은 “학업에 치여 바쁘게 사는 것이 우리나라 10대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인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양은 바쁜 삶을 사는 모든 대한민국의 10대들이 꿈을 향해 노력하고,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21세, 미래를 위해 여유로운 일상은 반납했죠
“시간표가 좀 빡빡하죠”

정지은(일본 14) 학우가 수줍게 웃으며 보여준 시간표에서는 빈 곳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정 학우의 시간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수업과 아르바이트로 빼곡했다. 이번 학기부터 복수전공을 시작하면서 지난 학기에 비해 이수하는 학점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자기계발장학생으로 활동하게 됐기 때문이다. 장거리 통학으로 체력이 약해진 정 학우는 일 년 전부터 서울에 있는 연합기숙사에서 살게 됐다. 자기계발장학생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도 혼자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시간에 쫓기면서 정 학우는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아졌다. 계속되는 수업과 아르바이트 업무는 그녀에게서 점심시간을 앗아갔다. 바쁜 일정으로 인해 본가에 가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면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포기할 정도다. 동기들과 시간을 보낸 지도 오래다. 동기들과 만날 수 있는 학회 시간에 다른 일정이 겹쳐 불참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 학우는 3개의 동아리 활동과 학회 활동, 봉사활동까지 병행하고 있다. 정 학우는 일의 양이 많아 부담스럽지만, 그만둘 수는 없다고 했다. 정 학우가 시간에 쫓기면서도 활동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원하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동아리, 천체 관측 동아리, 멘토링 봉사활동 등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모두 정 학우의 관심사에서 비롯됐다. 취업만을 위한 대외활동이나 자격증 공부를 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차차 실행에 옮기다 보니 활동이 점차 늘어났다. “학업에만 열중할 수도 있겠지만 대학 시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활동이라 생각하니 욕심이 커졌어요”

금요일 전체 일정을 비워야 하는 멘토링 봉사활동은 정 학우에게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멘토링 활동은 평소에 정 학우가 희망하던 활동이었기에 포기하지 않았다. “제가 원해서 선택한 일이기 때문에 활동에 대한 책임감을 많이 느꼈어요” 흔히 말하는 스펙을 쌓기 위한 마음으로 멘토링 봉사활동에 임했다면 큰 책임감이 생기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그녀는 아직까지 취업에 대한 걱정보다는 원하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렬하다고 했다.

정 학우에게는 여유로운 생활보다 바쁜 일상이 더 익숙하다. 현재 하고 있는 활동을 마무리하면 다시 새로운 일을 찾을 거라고 말할 정도로 그녀에게 여유란 어색한 존재이다. 강박적으로 많은 활동을 하는 것이냐는 물음에 정 학우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했다. 지금 하는 활동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시작한 일이기 때문이다.

“막연하기만 했던 꿈을 흥미로 시작했던 일들을 통해 구체화하고 있어요” 사진 동아리 활동을 통해 정 학우는 일본 카메라 회사에 입사하고 싶다는 꿈을 결심하게 됐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차근차근 자신의 진로를 계획하고 있는 정 학우. 그녀의 하루는 열정으로 가득했다.

◆ 22세, 지칠 시간도 없어요
박혜빈(멀티미디어과학 13) 학우는 IPP 일일학습병행제 사업 1기로 활동하고 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인턴으로 일하는 회사에 오전 8시 반까지 출근하는 일은 그녀에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회사 근무가 끝난 오후 5시 반은 그녀의 퇴근 시간이지만, 박 학우는 집으로 곧장 돌아갈 수 없다. 학생회장 활동과 동아리 활동, 스터디 그룹 활동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모든 활동을 마치고 귀가하면 밤 10시가 훌쩍 넘는다. 금요일은 일주일 중 유일하게 회사 근무가 끝나고 곧장 귀가할 수 있는 날이지만, 온전한 휴식을 즐길 여유는 없다. 경찰시험을 준비하는 언니를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바빠진 일상은 건강에도 영향을 끼쳤다. 선천적으로 면역력이 약한 데다가 바쁜 일상이 더해져 편도가 많이 부어있는 상태라는 그녀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상태예요.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싶어도 시간이 부족하죠”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개강 이후 일상이 더욱 빠듯해진 탓에 친구와 만나는 시간을 한 번도 가지지 못했다는 박 학우. 그녀는 간혹 시간적 여유가 생겨도 피로 때문에 친구와의 약속보다는 집에서 쉬는 걸 택한다고 말했다.

3학년이 되고 나니 취업 걱정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학생회장직을 비롯해 취업을 위한 각종 대외활동까지 하다 보니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저학년 때는 친구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고 방학 때는 여행을 가기도 했지만, 현재 박 학우에게 여행과 휴식은 꿈같은 이야기이다. 평소 영화를 보는 취미가 있던 박 학우는 일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아진 후, 취미활동도 잠시 접어두었다.

하지만 막상 긴 휴식시간이 주어지면 마음 놓고 즐길 수도 없다. 여유로워진 자신의 상황을 남들과 비교하면서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여름방학, 본가에 일주일 정도 내려가 있던 박 학우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휴식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방학을 바쁘게 보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쉬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박 학우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아직 해야 할 것이 많다고 말한다. 의미 없이 버리는 시간을 줄인다면 더 많은 일을 소화할 수 있을 거라는 그녀는 “육체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나중에 도움이 될 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에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많은 일로 인해 힘들 때마다 박 학우는 이렇게 마음을 다잡곤 한다.

“제가 욕심이 적었다면 지금처럼 시간이 부족하진 않았을 거에요” 여느 취업준비생과 같이 박 학우 또한 목표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바쁜 일상을 감수하며 지내고 있다. 현재에 만족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더 나은 삶을 위해서다. 박 학우가 현재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휴식은 주말에 집에서 하는 잠깐의 게임이 전부다. 하지만 언젠간 원하는 바를 이루고 웃고 있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녀는 긍정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 53세, 집에서도 밖에서도 쉴 수 없어요
심상미(53) 씨는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프리랜서 강사이다. 그녀는 한국사 수업에 필요한 기획, 진행, 교육, 회계 관리 등 모든 일을 혼자 담당하다 보니 항상 시간에 쫓기며 산다. 현재 매주 금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수업을 하는 심 씨는 “주말을 반납하고 살고 있다”며 수업이 없는 금요일이 유일한 주말이라고 말했다. 평소에는 실내 수업, 현장 답사 등 빽빽하게 짜인 일정을 소화하고 자신의 유일한 휴일인 금요일에는 문화생활을 즐기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 금요일에 일주일간 쌓인 피로를 풀어야 다음날부터 끊임없이 이어지는 수업을 잘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심 씨가 본격적으로 바쁜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은 30대가 되고 결혼하면서다. 20대 후반까지는 부모님에게 금전적 지원을 받았고 빨래, 청소 등의 집안일을 할 필요가 없어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책임져야 할 가족이 늘고 감당해야 할 일도 배로 늘어났다. 심 씨는 “결혼 후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다 보니 개인 시간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육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됐을 때도 심 씨는 여전히 바빴다. 성장한 자녀들이 더는 엄마의 세심한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 30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시간에도 심 씨는 마음 편히 쉴 수 없다. “집에서는 항상 새로운 정보를 검색하거나 신문을 읽으면서 수업을 위한 교재를 만들어요.”

현재는 두 명의 자녀들이 성장해 모두 대학생이 됐지만 현직에서 근무하는 심 씨에게 아직 집안일은 큰 부담이다. 물론 바쁜 심 씨를 위해 직장인인 남편이 퇴근 후에 집안일을 일부 도와주지만, 심 씨는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일에 여전히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일과 가사를 동시에 하다 보니 늘 시간이 부족한 심 씨는 제한된 시간에 많은 일을 해내기 위한 자신만의 시간 활용법을 만들었다. 모든 일을 일 년, 한 달, 일주일 단위로 분류해서 기록한 후 우선순위를 정해 가장 중요한 것부터 하나씩 일을 해나가는 것이다. 심 씨는 이 방법을 이용하자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항상 바쁜 일정에 쫓기며 사는 심 씨에게 쇼핑하기, 운동하기, 지인 만나기 등과 같이 개인적인 일은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심 씨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일하며 느끼는 만족과 보람이 크기 때문에 심 씨는 “만약 일하지 않게 된다면 매우 허전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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