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pect!” “Peace!” 힙합 세계에서는 존중과 평화를 외친다. 그러나 실제 들려오는 랩 가사에는 폄하, 욕설 등 자극적인 소재가 주를 이룬다. 힙합 열풍에 휩싸인 대한민국. 현재 한국 힙합의 모습은 어떠한가. 한국 힙합의 현주소를 제대로 알기 위해 대중음악평론가 김영대 씨에게 자문을 구했다.

◆ 한국 힙합, 그 정체에 대하여
한국 힙합은 완성된 형태의 ‘문화’로 도입된 것이 아니라 랩과 브레이크 댄스라는 개별적 요소가 먼저 유입되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대중음악계에서는 랩 스타일의 음악 문화가 형성됐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태원을 중심으로 흑인들의 춤을 따라 추는 댄스 문화가 형성됐다. 90년대 초반, 두 흐름이 대중가요계에서 만나 서태지, 듀스 등을 필두로 가요화된 랩의 형태가 한국 힙합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 힙합이 하나의 문화라기보다는 랩을 차용한 댄스음악이라고 인식하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 힙합은 발생부터 대중화까지 20년도 안 되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발전했다. 발전 기간이 짧은 만큼 한국 힙합의 역사와 기반은 미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한국 힙합의 정체성과 근본정신은 정의내리기 어렵다. 각자 추구하는 스타일과 가치가 있을 뿐, 한국 힙합의 일관된 정신은 없다는 것이다.

◆ 한국 힙합의 대중화, 득일까 실일까
한국 힙합은 미디어의 영향을 받으며 가요화된 랩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한국 힙합은 자연스레 상업화의 길을 걷게 됐다. ‘쇼미더머니가 힙합보다 크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이제 힙합의 대중화는 피할 수 없는 추세다. 미국에서도 90년대 이후부터 힙합이 본격적인 상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은 언더그라운드를 비롯해 일부 미디어의 영향 바깥에 놓여 있는 래퍼들이 꾸준히 정통 힙합의 맥을 이어왔다. 한국에서는 미디어의 상업화를 거치지 않은 음악은 설자리가 없다. 대중들의 입맛에 맞춘 소위 ‘상업화된 힙합’은 분명 힙합이 대중화되는데 기여했다. 무언가가 대중화 된다는 것은 원래의 색이 옅어지고, 왜곡될 여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통 힙합을 추구하는 자들은 상업 랩으로 대중화 된 힙합에 의해 힙합의 의미가 변질되고 퇴색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힙합의 대중화가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도 있다. 대중화 되기 이전의 힙합 음악을 고수하는 측과 대중화 이후의 힙합 음악을 추구하는 측의 경쟁은 힙합의 성장에 기여했다.

◆ 힙합과 윤리의 충돌, 해결되지 않은 과제
힙합과 윤리는 종종 극심히 대립한다. 국내의 힙합과 윤리 충돌 문제에 대해, 일각에서는 한국 사회가 외국 힙합의 극단적인 면을 무분별하게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국 힙합에서 폄하는 래퍼들의 과도한 남성성 과시에 대한 욕망과 빈곤하고 위험한 게토 환경에서 느끼는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요인은 한국 사회에도 분명 존재한다. 따라서 단순히 충돌의 원인으로 무분별한 수용만을 꼽을수는 없다. 다만, 흑인 힙합의 모든 것을 이상화하고 모방하는 것은 명백한 문제다. 한국 힙합에 주어진 과제는 ‘진정성’이다. 진정성은 힙합이라는 음악이 가진 가장 대표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이기에 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한 때다.

김영대 : 대중음악 연구자이자 평론가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 우리 시대의 클래식』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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