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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하라, 있는 그대로의 힙합
이채연 기자  |  smplcy87@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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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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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 최근 방송 프로그램 ‘쇼미더머니’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성행위 묘사, 여성 비하, 욕설 등이 포함된 가사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여성에게 수치심과 모욕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해당 가사가 도를 지나쳤다 비난한다. 그러나 또 다른 측에서는 자유로운 표현을 지향하는 힙합 문화의 일부분일 뿐이라 말한다. 힙합을 둘러싼 논쟁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상대방을 향한 욕설과 여성의 성에 대한 거침없는 표현을 일삼는 것이 과연 힙합 음악의 본질일까. 힙합은 대체 어떤 문화인 것일까?

◆ 힙합, 억압의 역사 속에서 꽃 피다
힙합은 크게 랩(MCing), 디제잉(DJing), 브레이크 댄스(Break Dance), 그라피티(Graffiti)로 이루어져 있다. 본래 힙합과 랩은 구분되는 개념으로 힙합은 랩의 상위 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랩은 힙합 문화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요소이기 때문에 현재는 힙합과 동일한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랩은 힙합 음악 외에도 다양한 음악 장르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랩이 들어간 음악을 모두 힙합 음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힙합 문화의 특수한 정체성이 모든 랩 음악에 담겨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힙합을 단순히 랩과 디제잉을 기반으로 발전한 음악이라는 국한된 관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힙합은 사회, 문화, 정치 요소가 복합된 음악이자 나아가 삶의 양식의 총체인 문화이기 때문이다. 힙합은 ‘아프리칸-아메리칸(African-American)’에 의해 탄생했다. 아프리칸-아메리칸이란 미국 시민권을 지닌 흑인을 뜻한다. 이들은 차별과 탄압의 역사를 갖고 있다. 사회, 경제적으로 방치된 소수 인종이나 민족이 집단을 이뤄 거두하는 도시 빈민가를 뜻하는 ‘게토(Ghetto)’는 과거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주거지였다. 힙합 음악은 미국의 흑인 빈민들이 가난, 불법 마약 거래, 총기 사고 등이 끊이지 않는 게토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였다. ‘후드(Hood)’는 ‘네이버후드(Neighborhood)’의 은어로, 게토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게토에서 자라 힙합으로 성공한 래퍼들은 게토를 후드라 말하며 그들만의 교류 공간으로 표현한다. 또한 그들은 게토를 벗어나 자수성가한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기도 했다.

힙합이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저항 정신을 반영한 장르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힙합과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정신이 어떤 상황에서든 반드시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는 없다. 즉,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역사가 곧 힙합의 역사라 정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모든 힙합 음악이 저항 정신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역사적 정체성과 힙합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만큼 그들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과 힙합의 탄생 및 발전의 역사를 분리해서 논할 수는 없다. 

◆ 폄하, 힙합 세계의 고질병일까 문화의 특수성일까
여성을 창녀, 꽃뱀 등으로 표현하거나 폭행, 강간을 암시하는 가사는 힙합 음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커먼(Common)’의 노래 〈The Bit** In Yoo〉의 후렴에는 “네가 거짓을 말할 때 난 네 안의 계집*을 보지”라는 가사가 있다. 상대방의 결함이나 문제를 여성을 부정적으로 나타내는 단어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다.

여성 폄하의 경향은 명령하고 군림하는 ‘남성성’을 강조하는 힙합 문화의 특성으로부터 기인했다. 흑인 남성 래퍼들이 갖는 남성 우월주의는 차별, 빈곤, 노예의 삶을 살았던 아프리칸-아메리칸 남성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가장과 남성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남성성을 강렬하게 표출하길 원했다. 이에 따라 흑인 힙합 문화에서는 남성성이 강조됐다. 그들은 힙합 음악을 통해 남성성에 대한 콤플렉스를 풀어냈고, 이것에 매력을 느낀 소비자들의 요구를 래퍼들은 반복적으로 수용해왔다.

여성 폄하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르는 198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갱스터 랩’이다. ‘닥터 드레(Dr. Dre)’는〈Bit**es ain’t Shit〉에서 이렇게 외친다. “계집*들은 그냥 창녀나 걸레일 뿐이야” 갱스터 랩이 80년대를 강타하면서 힙합 문화에서의 남성우월주의와 여성 폄하 경향은 더욱 심화됐다.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며 여성을 깎아내리고 남성우월주의 의식을 강하게 표현하는 것이 래퍼의 전형적인 이미지 중 하나가 됐다. 한편, 존중받지 못할 언행이나 행동을 일삼는 일부 여성을 비난하기 위해 여성 비하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라 항변하는 래퍼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래퍼 개개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오랫동안 ‘Bit**’나 ‘Ho*’같은 부정적 단어가 여성을 지칭하는 관용어처럼 사용됐다는 것이다.

여성 폄하만큼이나 자주 언급돼 온 것은 ‘동성애’에 관한 문제다. ‘빅 대디 케인(Big Daddy Kane)’은 자신의 노래 〈Pimpin Ain't Easy〉에서 “빅 대디의 법은 계집애 같은 동성애자 놈들을 반대하는 것”이라 말하며 ‘Fagg**’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단어는 래퍼들 사이에서 단순히 동성애자를 경멸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 상대를 힐난할 때 사용하는 보편적인 단어로 자리 잡았다. ‘병신’ ‘겁쟁이’ ‘찌질이’ 등의 단어 대신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동성애 폄하는 앞서 언급한 암울한 역사에서 비롯된 남성 우월주의와 관련이 있다. 흑인 남성들은 고문, 탄압, 강간 당하며 살아왔던 과거의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성스러움의 기준에는 개인의 차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흑인 남성 래퍼들에게 남성 동성애자는 남성다움이 없는 존재였다. 이 때문에 그들은 동성애자를 역사적 콤플렉스로 인식했으며, 동성애자에 대한 경멸적 인식과 태도를 보이게 됐다.

◆ 힙합 세계에 부는 새로운 바람
최근 미국 힙합 문화 내에서 여성 폄하에 대한 비판을 인정하고 자성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비판을 받았다면, 그것이 문화라 말하며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해명 또는 사과하거나 곡을 삭제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스눕 독(Snoop Dogg)’은 과거 인터뷰를 통해 “힘을 가진 위치에 서게 되면 여자를 ‘bit**’라고 불러도 된다고 배웠지만, 지금은 그것이 잘못된 일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가 발표한 〈Bit** Bad〉는 힙합 음악에서의 ‘bit**’라는 단어 사용에 대한 문제점을 정면으로 제기하는 곡이다. 그는 “Bit** bad, Woman good, Lady better, They misunderstood”라 말한다. 부정적인 단어가 랩 가사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아직 가치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왜곡된 인식을 줄 수 있다. 루페 피아스코는 힙합 음악을 접하며 자란 아이들이 ‘존중’과 ‘폄하’의 개념을 정립하는데 혼란을 겪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동성애 폄하에 대응하는 움직임도 있다. ‘매클모어(Macklemore)’는 〈Same Love〉라는 곡을 발표하며 힙합 문화의 ‘차별’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정면으로 꼬집었다. 그는 노래를 통해 “우리의 문화가 억압에 대항해 탄생한 것인데 오히려 우리가 그들을 더욱 받아들이지 못 한다”고 말했다. 차별에 대항하며 발전해 온 힙합 문화가 현대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는데 앞장서는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강자에 의해 억압받고 차별받아온 역사에 맞서는 대항 정신을 힙합의 정신이라 말하면서, 힙합 문화가 또 다른 소수자와 약자를 차별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힙합은 음악을 포함한 거대한 문화 현상이므로 힙합을 한 가지 관점에서만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힙합의 탄생과 발전 과정에도 여러 경로가 있으며 여성과 동성애를 폄하하거나 상대를 신랄하게 ‘디스’(Disrespect)하는 것도 힙합 문화의 일부분이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힙합 문화에는 분명 역사적으로 수차례 비판받아온 어두운 이면이 존재한다.
래퍼들은 종종 무대에 올라 이렇게 외치곤 한다. “Respect!” 힙합은 수십 년간 상대방을 존중하는 리스펙트 정신을 중시해왔다. 힙합의 어두운 단면까지 포함한 ‘있는 그대로의 힙합’이 인정받고 존중받기 위해서는 리스펙트 정신을 잃지 않는 힙합 내부의 자체 점검이 불가피하다.


<참고문헌>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김봉현 저,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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