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미 교수의 읽는 영화]

<그래픽=윤나영 기자>

<그녀, her>
국가: 미국
연령: 청소년열람불가
개봉일: 2014. 05. 22
러닝타임: 126분

인간은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랑을 갈망한다. 그러나 사랑할수록 더욱 외로워지는 것은 왜일까. 사랑이 원래 그런 것일까. 인간존재의 근원적인 외로움 때문일까. 사랑이  지닌 깊은 고독의 측면을 가슴 속에 아로새기는 영화가 있다. 2014 아카데미 및 2014 골든 글로브 각본상을 수상한 <그녀>이다. 이 영화는 화려한 비주얼이나 스피디한 전개, 드라마틱한 스토리 등과는 애초에 담쌓은 영화다. 그럼에도 어느 멜로 영화보다 애틋하다. 가슴에 구멍 하나를 뻥 뚫어놓은 채, 그 속에 바람을 훅하고 불어넣어버리는 강렬함까지 지니고 있다. 영화는 우리 사회를 미리 내다보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구현한다. 영화 속에 몇 년이라고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10년쯤 지나면 있을 법한, 어쩌면 곧 다가올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영화는 인터넷 운영체계가 발달하여 인간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현재도 음성인식 프로그램이 여러 전자제품이나 스마트폰에 장착이 되어 여러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수행되는 바야흐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시대가 됐다. 스케줄 관리부터 프로그램 실행까지 모든 것을 도와주는 ‘시리(Siri)’ 라는 음성인식 운영체계는 여러 정보를 검색하여 필요한 내용을 서비스해 주기도 한다.

영화 <그녀>는 지금의 사물인터넷 발달이 더욱 진화하여, 인간의 감정까지 소통하게 된 상황을 가정하고 그런 상황이 된다면 사랑은 어떻게 변모하게 될 것이며,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를 질문한다. 영화는 달콤한 말로 사랑을 고백 중인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면서 시작된다. 그의 음성은 아날로그식 손 편지 느낌의 글자로 출력되어 소비자에게 제공된다. 사랑의 편지 대필작가인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수한 사랑의 언어를 내뱉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아내(루니 마라)와는 이혼이 진행 중이다. 외로운 테오도르는 다양한 방편을 통해 사랑을 다시 시작해보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아내를 아직 사랑하고 있는 터라 번번이 실패한다.

어느 날 그는 인공 지능 운영체제가 정보제공만이 아니라 감정까지 소통하는, 즉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점차 진화해가는 프로그램에서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와 대면하게 된다. 음성만 제공되는 사만다와의 소통은 정보처리를 잘 해주는 OS(운영체제)일 뿐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이해해주는 느낌을 받게 한다. 급기야 영화 속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테오도르도 OS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영화는 OS와 사랑의 감정을 교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멜로 영화에서 보여주는 일반적인 사랑의 패턴을 그대로 따른다. 사랑이 시작될 때의 설렘, 사랑이 깊어졌을 때의 고통까지 모두 보여준다. ‘사만다’로 인해 외로움도 잊고, 사만다가 OS라는 사실조차 잊어갈 무렵 그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갑자기 사만다와 접속이 되지 않아 금단현상이 생기는가 하면, 사만다가 테오도르 뿐만이 아니라 8천여 명의 고객이 있고, 테오도르처럼 깊은 사랑의 관계까지 소통하는 고객도 60여 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OS는 OS일뿐 인간과의 소통과 교류까지는 대체할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OS와의 사랑을 통해 사랑의 본질,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의 터널 속으로 관객을 끌고 간다. 테오도르가 눈물 흘릴 때 함께 슬퍼지며, 매력적인 사만다의 목소리에 테오도르처럼 반하게 만드는 체험적 영화다.

 

 

 

 

 

의사소통센터 황영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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