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애니메이션 고등학교 하지수

거대한 틀

이성실 씨의 귀환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번엔, 동생 이성숙 양의 옷장 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성숙 양의 코트와 교복, 양말과 속옷에 파묻혀 성실 씨는 빠꼼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성숙 양은 손에 들린 브래지어로 성실 씨를 두드렸고, 뒤통수에 주먹만 한 혹이 생기고 나서야 성실 씨는 옷장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왜 또 왔냐.”
아침 밥상을 눈앞에 두고, 성숙 양이 물었습니다. 성실 씨의 거듭된 가출과 귀환은 더 이상 성숙 양에게 감흥을 주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이년 전 성실 씨가 처음 집을 나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지요. 성숙 양은 더 이상 울지도 오빠를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너무 자주 떠나고 너무 자주 들어오는 혈육에 성숙 양은 이골이 난 것입니다.
“엄마, 나 돈 좀 빌려주라.”
성숙 양은 성실 씨의 말을 들은 듯 만 듯 행동합니다. 또 시작이다. 성숙 양은 뻔뻔한 성실 씨의 태도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반면 남매의 모친 박경자 여사는 무덤덤하게 되묻습니다. 얼마? 성실 씨는 대답합니다. 사십 억. 그는 숟가락으로 이마를 한 대 맞았습니다. 성숙 씨입니다.
“왜 때려!”
“사십 억이 뉘 집 개 이름인 줄 알아?”
남매의 말다툼이 주먹다짐으로 이어지기 직전, 박 여사가 앉은뱅이책상을 쾅 내리쳤습니다. 성실 씨도 성숙 양도 놀라 동작을 멈춥니다. 박 여사는 성실 씨를 날선 시선으로 응시합니다. 어디 쓰려고? 성실 씨는 가슴을 쭉 펴고 당당히 소리쳤습니다. 나는 달에 갈 거야!
들어 봐요, 엄마(성실 씨는 답지 않게 존댓말을 했습니다.) 닐 암스트롱은 어쩌면 실제로 달에 가지 않았을 수도 있거든요. 내가 달에 첫 발자국을 찍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 지구라는 틀을 벗어난 최초의 남자, 이성실! 얼마나 멋있어!
성숙 양은 몰래 하품을 했습니다. 성실 씨의 일장연설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성실 씨가 무언가를 다짐한 척 하며 박 여사에게 받아간 돈이 벌써 백사십만사천구백 원입니다. 백만 원은 장사를 하겠다며, 사십만 원은 학원에 다니겠다며, 사천구백 원은 담뱃값이 떨어졌다며……. 성실 씨는 아직 박 여사에게 일 원도 갚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갚지 못할 겁니다. 성숙 양은 오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십억은 안 된다.”
당연한 말이었습니다. 박 여사 형편에 사십억은 가당치도 않았습니다. 성숙 양이 오빠를 비웃으려는 그 때, 박 여사는 무릎걸음으로 걸어가 장롱 속에서 흰 봉투를 꺼냈습니다. 제법 두둑한 봉투입니다. 박 여사는 그것을 성실 씨에게 건넸습니다.
“사백만 원 밖에 없지만, 어디 잘 해봐라. 너 대학 보낸다고 일 년 장사해 모은 돈인데……. 어차피 네 돈이니 써도 네 책임이지. 안 그래?”
성실 씨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감사하다고 인사하더니 곧바로 집을 나서는 성실 씨의 뒷모습을 보며 성숙 양은 인상을 찡그렸습니다. 박 여사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네 오빠가 살겠다고 저러는 거 아니냐. 성숙 양은 대꾸합니다. 저게 뭐가. 죽고 싶다는 거지. 쟤는 틀이랑 울타리도 구분할 줄 모른다니까. 박 여사는 피식 웃었습니다. 틀이 울타리고 울타리가 틀인 거야
이성실 씨의 다음 귀환은 분명 송장 상태일 것이라고 성숙 양은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성실 씨는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왔습니다. 사백만 원으로는 재수학원에 등록했다고 하더군요. 성숙 양은 적잖이 놀랐습니다. 성실 씨는 좋은 대학 로스쿨에 합격하고도 등교 한 번 없이 자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날 첫 번째 가출을 시도했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날 9시 뉴스에서 발견되었으니까 말이죠. 마포대교 희망의 다리에 붉은 락커로 낙서를 남긴 엽기 범죄자. 이 사회를 거부한다! 이십대에게 굴레를 씌우지 마라! 십대에게 틀을 만들지 마라! 카메라에 대고 소리치는 성실 씨가 성숙 양으로선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울며불며 오빠를 찾은 열 시간 전 자신마저 부끄러워질 정도였습니다.
“대학 다니려고?”
성숙 양이 물었습니다. 텔레비전이나 보며 뒹구는 이 남자가 과연 성실해질 수 있을까. 걱정부터 들었습니다. 달에 간다며? 틀에서 벗어난다며! 성숙 양은 텔레비전 전원을 끄고 외쳤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9시 뉴스 속 성실 씨 같습니다.
“갈 거야.”
성실 씨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합니다. 왜 네가 배신감을 느끼고 그러냐. 성실 씨는 생각도 했습니다. 성숙 양은 고래고래 화를 냈습니다.
“왜 안 가는데!”
“갈 거라니까?”
“안 가고 있잖아!”
성숙 양이 씩씩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성실 씨는 귀찮기만 한 표정입니다. 텔레비전 전원을 켜며 성실 씨는 말합니다. 지금은 못가. 성숙 양이 물었습니다. 왜? 성숙 양은 성실 씨의 그 잘난 틀이 궁금했습니다. 왜 지금은 나가지 못한다는 건데? 성실 씨는 대답합니다.
“더 성공해서 갈 거야.”
성숙 양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습니다. 결국 성실 씨의 틀도, 울타리였던 것이니까요. 성숙 양은 결심했습니다. 오빠가 또 집을 나가고, 또 돌아온다면, 그 때는 반갑게 맞이해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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