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필자는 최근에 썼던 기사들을 다시 읽으면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1136호에서는 ‘수업 찾아가기’ 코너를 통해 각 전공마다 다른 시각과 문제인식을 토대로 연대를 꾀하는 수업, ‘키워드로 읽는 오늘’을 소개했다. 또한 1135호에서는 남녀의 신체적 차이에 대해 기사화했다. 다루고 있는 내용 자체는 전혀 별개의 것이지만, 모두 ‘다름 혹은 차이에 대한 이해’를 공통적인 주제로 삼고 있다.


실제 생활에서 우리는 주변사람들과의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우리는 종종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다. 분명 각각 독립된 의미를 지님에도 불구하고 자주 혼동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나와 다른 타인의 무엇을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과도 ‘치약을 어디서부터 짜서 쓰느냐’와 같은 지극히 사소한 차이로 인해 사사건건 부딪치곤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에 인색한 모습을 보인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빛깔을 뽐내는 꽃들을 보며 자연의 신비에 대해 감탄한다. 그러나 인간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데는 무딘 감각을 지닌 것 같다. 70억 명이나 되는 전 세계 사람 중 같은 사람은 결코 한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세상의 모든 꽃이 빨간색이나 노란색 일색이라면 거기에 무슨 조화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겠는가? 인간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생김새, 다른 성격, 다른 신념……. 인간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신이 내린 축복이며, 우리가 ‘함께’ 아름다울 수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흔히 21세기를 문화의 다양성과 ‘다름의 미학’이 각광받는 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다름을 넘어서 하나됨과 조화를 이룬다는 ‘다름의 미학’은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찾을 수 있다. 퓨전문화가 매력 있는 것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서로의 특성을 해치지 않고도 묘한 어울림을 만들어내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기뻐하자. 유기적인 관계와 조화는 여기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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