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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사회심리학과 아카데믹 시리즈 <전자 파놉티콘을 다시 생각한다>

지난 20일(목), 진리관 모의법정에서 본교 사회심리학과에서 주관하는 아카데믹 시리즈 특강이 진행됐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홍성욱 교수가 진행한 이번 특강에서는 <전자 파놉티콘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전자 파놉티콘과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해 다뤘다.

▲ <전자 파놉티콘을 다시 생각한다> 강연을 맡은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홍성욱 교수.


A 학우는 이메일을 확인하던 중 한 광고 메일을 보고 그 상품을 바로 구매했다. 평소 A 학우가 사고 싶었던 화장품을 소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사기위해 들어간 중고 책 판매 사이트에서는 A 학우가 좋아할만한 책을 콕 집어 추천해줬다. 이밖에도 각종 웹사이트를 이용하다 보면 좌·우측이나 하단에 다양한 광고들이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광고들, 유난히 나와 관련된 정보가 많다. 어떻게 나의 취향을 알아차리고 광고를 하는 걸까?

웹사이트 광고의 비밀
임신을 한 여성은 임신기간 동안 필요한 준비물이 다르기 때문에 임부용품 회사는 특히 광고 대상을 찾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2013년, ‘자넷 버테시’라는 학자는 임신을 하자 한 가지 실험을 시작한다. 임신 후 9개월 동안 어떤 임부용품 회사나 광고회사도 자신이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모르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녀의 실험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제일 먼저 가족과 친구들에게 자신의 임신 소식을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 사람들은 축하 메시지를 그녀의 계정에 남기게 되고 그 즉시 그녀의 페이스북에는 임부용품 광고들이 올라올 것이 뻔했다.

지인들에게 어떠한 SNS 계정에도 자신의 임신사실을 얘기하지 말라고 당부하면 어떨까? 이메일로 메일을 보내거나 웹사이트 서핑을 해도 주요 키워드나 검색결과가 자동으로 광고회사로 넘어가기 때문에 기록이 남지 않는 개인 브라우저를 사용해야 했다. 심지어는 신용카드를 사용해도 결제내역 정보가 남아 임부용품을 살 때에는 현금만 사용해야 했다. 

9개월 뒤 출산을 한 버테시는 실험결과 자신의 임신 사실을 숨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자칫 범죄자로 오해받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홍성욱 교수는 “누군가가 당신을 알게 모르게 계속 따라다니고 있다”며 “그것이 마치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감시자 빅 브라더와 같다”고 말했다.

감시의 역사
전자 파놉티콘을 이해하기 전, 홍 교수는 “먼저 파놉티콘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파놉티콘은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가 제레미 벤담이 설계했던 원형감옥의 이름이다(사진). 중심 부분에는 간수가 있고 그 공간을 중심으로 죄수들의 방이 원을 그리며 위치해 있는데, 밝은 죄수들의 방에 비해 간수들의 공간은 어둡다. 따라서 한 명의 간수는 모든 죄수들을 감시할 수 있지만 죄수들은 자신들이 감시받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규율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이를 ‘규율의 내면화’라고 한다. 홍 교수는 “파놉티콘의 핵심이 바로 규율의 내면화”라며 “파놉티콘에 수용된 죄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규율을 벗어나는 행동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되고, 점차 이 규율을 ‘내면화’해서 스스로 자신을 감시하게 된다”고 말했다. 벤담은 영국 정부에게 파놉티콘을 짓고 그 운영권을 넘겨 달라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고 파놉티콘은 실현되지 못했다.

▲ 제레미 벤담이 설계한 원형감옥 '파놉티콘'의 설계도.

이렇게 벤담의 파놉티콘이 잊혀갈 때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에서 파놉티콘을 핵심 키워드로 들고 나온다. 푸코는 그의 저서를 통해 ‘근대 이전의 군주 권력이 권위를 이용해 백성들이 우러러보게끔 만들었고 그 이후에 파놉티콘이 생겨났다’라고 말했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을 처형할 때 가장 잔인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법으로 시행했는데, 이를 모두가 볼 수 있는 광장에서 진행했다. 일종의 일벌백계를 함으로써 백성들은 권력자에 대한 두려움과 선망을 가지고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만인이 한 사람의 권력자를 우러러보는 사회를 ‘스펙터클의 사회’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권력은 파놉티콘이 생겨난 후 새로운 방식의 권력으로 바뀌었다. 홍 교수는 “새로운 방식의 권력사회가 바로 감시사회”라고 말했다. 감시사회에서는 권력자가 사람들을 감시할 때 감시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감시당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한 사람이 만인을 주시하는 규율권력의 사회인 것이다. 홍 교수는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감시사회로 바뀌는 계기가 파놉티콘”이라며 “푸코에 따르면 감옥에서 시작된 감시는 학교나 병원, 군대, 직장 등 우리사회 전체의 지배원리로 번졌다”고 설명했다. ‘감시당하는 느낌’을 주는 이 시스템은 결국 기술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전자 파놉티콘이다.

보이지 않는 감시의 눈동자
지금은 어떨까. 홍 교수는 “숙명여대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본 것이 CCTV”라며 “우리는 평소에 건물 앞이나 엘리베이터 등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에도 몇 개의 CCTV를 거친다”고 말했다. 국가 인권 위원회에서 2011년도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한 사람이 하루 평균 83번 CCTV에 찍힌다고 한다.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이에도 하루에 수십 번 자신의 얼굴과 행동이 찍히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를 감시하는 것은 CCTV뿐만 아니다. 다음 ‘로드뷰’나 구글 ‘스트릿뷰’, 게다가 최근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개인용 드론까지 다양하다. 자동차의 블랙박스도 엄청난 감시기능을 한다. 한 회사에서는 GPS 기능이 있는 회사 전용 앱을 다운받게 해 직원들의 위치정보를 파악하도록 했다. 생산성을 높이려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됐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옥죄는 수단이 된 것이다. 퇴근 후에 이어지는 단체 채팅방에서의 업무 이야기도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홍 교수는 “지난 워크숍 일정이 끝난 후, 편의점에서 간단한 술자리를 하던 도중 옆에 있던 지인이 신용카드 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며 한 일화를 소개했다. 카드 회사에서 전화를 한 이유는 본인확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홍 교수의 지인이 지금까지 신용카드를 사용하던 패턴과는 전혀 다른 지역과 시간에 카드를 사용했기 때문에 도난이나 분실이 의심됐던 것이다. 홍 교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했던 일”이라며 “지금은 기계에 일정한 패턴의 알고리즘이 저장되기 때문에 항상 최신 정보가 저장되고 이전의 정보와 비교된다”고 말했다. 웹사이트에 접속해 있을 때 다른 지역에서 같은 아이디로 로그인 했을 경우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시스템이나 해외결제 시 확인문자나 전화가 오는 것도 같은 맥락의 서비스다.

이것이 감시일까 아니면 돌봄이나 우려일까? 홍 교수는 “감시과 돌봄은 항상 함께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학생 입장에서는 선생님이 학생을 감시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선생님 입장에서는 학생을 관리하고 봐주는 입장인 것이다. 부모 자녀의 관계나 사장과 직원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라이버시는 죽었다
여러 데이터를 이용해 새로운 정보를 창출하는 빅 데이터는 의료 목적이나 소비패턴 분석 등 다양한 곳에 쓰일 수 있다. 빅 데이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데이터가 합쳐져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개개인의 데이터를 모을까? 홍 교수는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자발적인 참여가 있다”고 말한다. 적극적으로 본인의 정보를 직접 제공한 것은 아니지만 소극적으로 동의를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강제성이 들어가기도 한다. 이달 초, 삼성에서 만든 휴대전화로 특정 앱을 다운받으면 그 즉시 개인정보가 수집돼 광고를 하는 데 사용된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이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은 발끈할 수 있지만 사실 이것이 불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앱을 다운로드 받을 때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한 상태에서 그 앱의 서비스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웹사이트 회원가입을 할 때나 영화 예매를 할 때에도 개인정보를 제공하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것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무료로 상품을 주는 이벤트도 사실은 무료가 아니다.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이름이나 휴대전화 번호, 주소 등을 써야 하는데 이는 나의 개인정보를 팔아 상품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보안 전문가인 브루스 슈나이어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서비스가 무료라면 당신은 고객이 아니다. 제품에 불과하다’ 그 말인 즉 무료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입력한 당신의 개인정보가 어디선가는 사고 팔리는 상품이 된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창립자인 마크 주커버그는 “프라이버시는 죽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누군가가 개인정보를 감시하거나 강요에 의해서 공개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개인적인 사생활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프라이버시는 죽었다고 표현한 것이다. 홍 교수는 “사람들은 점차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편안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더 개방적이고 많은 사람들과 그것을 공유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투명사회다?
프라이버시가 없는 사회를 투명사회라고 말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사생활을 개방하며 산다는 것이다. “네가 떳떳하다면 감출 것이 없지 않냐, 왜 프라이버시를 찾으려 하느냐”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홍 교수는 “투명한 사회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며 “어떤 사람은 정말 감출 것이 없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꼭 죄가 아니더라도 사회적인 규범을 벗어났다는 것이 큰 흠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에게 있어 이혼의 문제는 아무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이혼의 문제는 아주 큰 타격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기존의 권력에 저항하는 사람일수록 그 피해가 두드러진다. 홍 교수는 “사회적인 규범에서 어긋나는 일을 했다고 해서 사생활에서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보를 비판하는 집단 전체에 흠집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은 언론이나 시민 감시단, 인터넷 등을 통해 고위 공직자의 비리나 문제를 캐내는 것에 열광한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 이러한 개인적인 문제에만 집착하고 이것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이런 폭로뿐만 아니라 정치적 자각과 같은 더 의미 있는 방식으로 새로운 정보기술을 사용해야 한다”며 “이런 고민 속에서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점점 사라지고 투명화되는 전자 파놉티콘과 같은 사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처방안이나 행동은 어떤 것이 있을까. 홍 교수는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드러낸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프라이버시는 중요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개인 정보를 본인이 모르는 채로 연동하거나 유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기업이 개인 정보를 이용할 때 통계적인 목적으로만 이용하게 하고, 개인정보의 오용에 대한 법적 조치와 기술적 보안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공개와 비공개의 경계가 점점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모든 것은 쉽지 않다. 그럴수록 이 문제를 자각하고 새로운 규범들을 찾아나가는 것이 전자 파놉티콘의 시대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참고문헌>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홍서욱 저,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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