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미 교수의 읽는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국가: 독일, 스위스, 포르투갈

연령: 15세 관람가

개봉일: 2014. 06. 05

러닝타임: 111분

반복되는 일상을 성실하게 지키는 사람일수록 가슴에 감추어진 열정이 큰 지도 모른다. 아내에게도 지루하다는 이유로 이혼당한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는 고지식한 교사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는 운명처럼 충격적 사건과 마주친다. 스위스의 베른에 사는 그는 출근길에 다리 아래로 뛰어내려 자살하려는 낯선 여인을 구하게 된다. 묘한 매력을 지닌 그녀는 고레고리우스에게 당신을 따라가도 되느냐고 묻는다. 교실로 따라와 한 켠에 앉아 있던 그녀는 비에 젖은 붉은 코트와 오래된 책 한 권, 15분 후 출발하는 리스본행 열차 티켓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진다.
그녀가 남긴 책은 파시즘이 득세를 부리던 1930년대 저항활동을 하던 지식인 의사 ‘아마데우’(잭 휴스턴)가 쓴 책이었다. 그레고리우스는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끌림으로 수업 도중 사라진 그녀가 남긴 물건들을 들고 교실을 무작정 뛰쳐나온다. 평소의 그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기차가 출발하려는 때 홀린 듯 리스본행 기차에 올라탄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일상에 파묻혀 열정이 사라진 지식인의 일탈을 그린다. 이 영화는 작가이자 철학가인 파스칼 메르시어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저자는 폭압적인 파시즘 시대의 저항정신을 통해 소신과 신념이 사라진 오늘날 우리들을 각성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데우의 책에서 인용한 부분과 그레고리우스의 현재가 혼재된 소설의 구성은 다소 난삽하고 시공간이 분명치 않게 묘사돼, 술술 잘 읽히는 편은 아니다. 게다가 철학적 사유의 단상을 기록한 아마데우의 책의 인용 부분과 스토리라인은 부드럽게 조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두 편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연출한 빌 어거스트 감독은 리스본의 특색 있는 거리와 기차 여행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로 관객들에게 충분한 볼 거리,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유럽의 도시적 공기와 분위기, 젊은 날의 열정을 되돌아보는 인물들은 우리를 자연스럽게 과거 속으로 이끈다. 

파시즘에 대한 후일담을 소재로 한 유럽영화는 상당히 많다. 이탈리아의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1970년 한 해에 <거미의 계략>, <순응자> 등 2편이나 같은 주제에 천착했다. <거미의 계략>은 1930년대 파시즘과의 투쟁에서 살해당한 아버지의 고향을 방문한 아들이 실제로는 변절자였던 아버지가 영웅으로 추앙받는 아이러니를 파헤친 걸작이다. <순응자>는 국가이념이 된 파시즘의 물결 속에서 개인의 비겁함을 드러내는 영화다. 모라비아의 소설 ‘순응자’를 각색한 영화로, 국가 보안요원이었던 주인공은 대학 시절 은사가 처참히 살해되도록 방치한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자 파시스트를 고발하는 사람이 되는 등 시대에 따라 변하는 순응자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그린다. 이처럼 파시즘 후일담은 어렵고 혹독한 시절에 사람들을 어떻게 저항하고 순응하면서 살아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그레고리우스는 파시즘에 저항하던 책 속 아마데우 일행의 삶을 추적하면서 그들의 열정과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에 큰 감동을 받게 된다. 베른으로 돌아간 그의 삶은 이제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는 낭만적인 리스본 풍광, 열정적인 저항집단의 삶을 훔쳐보던 관객의 시선이 어느새 자신을 향하게 되는 묘한 영화다.

 

 

 

 

 

의사소통센터 황영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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