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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야 할 전쟁을 되돌아보다<쓰리고> (찾고, 가고, 기억하고) ④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전쟁기념관>
김경주·박민주기자  |  smppmj87@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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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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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담벼락에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①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4월, 봄이 오면 노란 개나리가 피어나듯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하 전여관)의 회색 건물에는 노란 나비들이 수놓여있다. 또,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위로의 말이 적힌 노란 나비 모양의 카드가 꽃이 핀 듯 건물을 둘러싸고 있다. 전여관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이 겪었던 역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전여관의 입장료는 65세 이상과 초등학생 이하는 1,000원, 65세 미만의 성인은 3,000원, 청소년은 2,000원이다.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운영하며, 월요일과 일요일은 정기 휴관일이다. 이곳은 지상 2층과 지하 1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지하 1층에서 2층, 그리고 지상 1층으로 이동하며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박물관으로 향하는 발걸음
전여관은 홍대입구 근처에 위치해 있다. 효창공원역에서 응암 방면 지하철을 타고 망원역에서 7013A 환승한 후 ‘경성중고, 홍대부속여중고입구’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도보로 4분 정도 이동하면 박물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그 옆 담벼락에는 아름다운 봄 풍경 뒤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옆엔 나비모양의 노란 카드가 벽에 붙어있다. “못 다 핀 꽃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통의 기억이 나비처럼 날아가길” 등 박물관을 다녀간 사람들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에게 남긴 위로의 글들이 적혀있다. 전여관 안으로 들어가면 매표소가 바로 눈에 띈다. 표 뒷장에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사진이 담겨있다. 각각의 표마다 할머니의 사진은 달라진다.  표 하나를 구입하면 제공되는 오디오 가이드에 귀를 귀울여보자. “표 뒷장에 담긴 할머니가 당신과 함께 인연을 맺어 박물관 여행을 함께 할 사람”이라는 설명을 듣게 될 것이다.

매표소 앞, 이야기의 시작
매표소 맞은 편 벽에서는 영상을 볼 수 있는데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이 상영되고 있었다. 이때 오디오 가이드는 ‘영상에 가까이 다가가보라’고 권한다. 한 걸음 다가서자마자 화면 프레임 밖으로 나비 떼가 날아간다. 오디오 가이드는 “나비 떼는 일본군 ‘위안부’였던 여성들을 의미하며, 나비들이 갑자기 화면 밖으로 날아오는 것은 ‘차별의 벽’을 뚫고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영상이 끝나면 바로 옆에 철문으로 이동하면 된다. 전여관의 모든 문들은 두꺼운 철문인데 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세상의 단절을 상징한다. 철문 앞에서는 전쟁터의 포성과 군화소리가 울려 퍼진다. 눈을 감고 들어보면 마치 전쟁터 한 가운데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철문을 열자 좁은 돌길인 ‘쇄석길’이 펼쳐진다. 한쪽 벽에는 고개 숙인 소녀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고, 반대쪽 벽에는 실제 피해자 할머니들의 얼굴과 손을 본 따 만든 부조가 있다. 거친 돌길과 양 옆에 펼쳐진 작품들이 당시 일본군 ‘위안부’들의 고통과 한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다음으로 과거 소녀들의 두려움과 할머니들의 절규 사이의 길을 따라 지하로 내려간다.

어둠 속으로, 지하 이야기
지하 1층으로 연결되는 철문을 열면 어두운 방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영상이 상영된다. 표 뒷장 사진 속 할머니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영상 속 홍강림 할머니는 “몸을 팔게 했다, 힘들었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가 직접 전하는 말만 들어도 그 때 당시에 그녀가 겪은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홍강림 할머니는 일본군에 의해 여러 곳으로 끌려 다니며 고초를 겪었다. 해방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중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오른쪽 벽에는 구멍을 통해 관찰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다. 공간 왼쪽 벽에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젊은 시절 사진이, 오른쪽 벽은 현재의 사진, 가운데에는 위안소에 있었던 시절의 영상이 담겨있다. 공간 한 가운데에는 망석 위에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제 신발 두 켤레가 놓여있다. 망석은 위안부 할머님들의 험난한 인생을 표현하고, 신발은 일본군 ‘위안부’가 젊음에서 늙음까지 살아온 인생, 좁은 공간은 세상과의 단절을 보여준다.

   
▲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2층 발코니에 위치한 추모관의 검은 벽 사이에 있는 헌화들

절망에서 희망으로, 지상 이야기
어두운 지하에서 벗어나면 계단 왼쪽에 ‘호소의 벽’이 있다. 지하에서 나갈 수 있는 철문을 열면 계단이 나타난다. 계단 위쪽에서부터는 한 줄기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거친 벽면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과 그들이 적은 글귀가 적혀있다. ‘내가 살아남은 게 꿈같아. 꿈이라도 너무 험한 악몽이라’ ‘한마디라도 진실한 사죄의 말을 듣는 게 소원이에요’ ‘나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어요’ 지하와 가까운 위치에 적힌 글은 피해자들의 탄식의 메시지이며, 반대로 지상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글은 희망의 메시지다. 고통스러운 역사에서 벗어나 희망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빛으로 향해가는 계단을 통해 표현된 것이다.

2층에 도착하면 당시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실체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 등이 담긴 기록들이 전시돼 있다.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군이 국가의 이름으로 만든 제도임으로 국가적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는 내용이 오디오 가이드에서 흘러나왔다.

역사관을 지나 추모관으로 들어가면 검은색 벽돌과 사이에 꽂혀있는 꽃들이 눈에 띈다. 추모관은 돌아가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다. 벽돌 각각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 성함, 별세 시기가 적혀있다. 그런데 중간에 이름이 적혀져 있지 않은 벽돌을 발견할 수 있다.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를 위해 남겨놓은 자리다. 벽돌 사이에는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해 사람들이 헌화한 꽃들이 놓여 있었다.

   
▲ 6·25 상징 조형물

② 용산 전쟁기념관
하나 둘, 꽃이 피기 시작하는 어느 봄날. 본교에서 도보로 30분. 따뜻한 햇살을 만끽하며 용산 전쟁기념관에 다녀왔다. 전쟁기념관은 전쟁의 아픈 상처를 추모하고 평화를 소원하는 전시관이다.

옥내전시실은 호국추모실, 전쟁역사실, 6·25전쟁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기증실 ,대형장비실로 구성돼 있다. 실물·디오라마(투명하게 보이는 그림으로 착각, 착시를 이용한 그림을 그리고 조명을 비춤으로써 원근이 있는 실경과 같이 보이게 하는 것)·복제품·기록화·영상 등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의 호국전쟁으로 희생한 분들의 공훈을 기리고 있다.

6·25전쟁의 발발 원인과 전쟁 경과 및 휴전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이 나타나있으며 체험시설도 마련돼 있다. 옥외전시장에는 6·25전쟁 당시의 장비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대형무기와 6·25전쟁 상징 조형물, 광개토대왕릉비, 형제의 상, 평화의 시계탑 등이 전시돼 있으며 기념관 전시실 입구의 양옆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국군 전사자와 유엔군 전사자명비가 있다. 전쟁기념관의 입장료는 무료이며 이용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은 오후 10시까지 개관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 용산 전쟁기념관 평화광장 입구를 지키는 6·25 전쟁 기념물

가벼운 마음으로, 평화의 광장
어려울 것 없이 학교 정문에서부터 남영역을 지나 곧장 걷자, 6·25 상징 조형물이 보인다. 전쟁기념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6·25전쟁 50주년을 기념해 선사시대 청동검과 생명의 나무가 어우러지는 모습을 상형화한 조형물이 중앙으로 우뚝 솟아 장엄함을 뽐낸다. 서울 도심 속 휴식의 공간에 걸맞게 전쟁기념관 입구는 탁 트인 평화광장이 맞이한다. 연못가에는 진달래와 개나리 등 형형색색의 꽃이 펴 있어 사진 찍기에 그만이다. 또한 날씨를 만끽하러 강아지들과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전쟁기념관이라고 해서 딱딱하고 학술적인 목적으로만 방문할 것이 아니라 나들이나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다.

조금은 무거웠던 옥내전시실
평화광장을 지나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호국추모실이 보인다. 호국추모실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선열들의 정신과 의미를 되새기고 추모하는 전당이다. 유리관에 보존돼 있는 전자사명부 앞에서는 어느새 숙연해진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전쟁역사실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세외국,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의 주요전투와 무기들도  볼 수 있다.

6·25전쟁실은 총 3개의 관으로 구성돼있는데, 2층에는 Ⅰ관과 Ⅱ관이 3층에는 Ⅲ관이 위치한다. 6·25전쟁실 Ⅰ관은 전쟁의 배경과 남침, 반격 그리고 전쟁지도에 관한 곳이다. Ⅰ관에 입장하자 영상이 번쩍 켜졌다. 갑작스런 불빛에 놀란 가슴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전사자 유해발굴 상징존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실제 전사자 유골을 전시해 전사자들의 넋을 기린다. 또한 인천상륙작전의 긴박한 상황을 4D로 체험해볼 수 있다. 6·25전쟁 지도실은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의 전쟁지도자들이 6·25전쟁의 주요 국면에서 어떤 전략과 목표를 가지고 전장을 운영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6·25전쟁실 Ⅱ관은 북진, 중공군의 개입, 전선교착, 휴전에 관한 내용이 전시돼있다. 국군 6사단이 초산점령 후 압록강의 물을 담고 있는 병사의 모습의 디오라마와 실제로 압록강 담수에 쓰였던 수통이 전시돼있다. 또 1·4 후퇴와 서울을 재탈환하고 현 휴전선 일대까지 회복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참전자 증언을 토대로 제작된 실감특수 4D 영상관에서의 장진호전투 묘사는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휴전회담이 장기화되는 동안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던 고지쟁탈전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6·25전쟁실 Ⅲ관의 유엔참전국 장병들의 인식표 1,300개를 소재로 형상화한 눈물방울(The Drop) 앞에서는 절로 감탄이 나온다. 콜롬비아에서 온 관람객 다닐라(여·21) 씨는 “한국전쟁 당시에 우리 콜롬비아에서도 전쟁을 지원했는데, 이렇게 한국에서 넋을 기려줘서 감동”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기증실, 국군발전실, 국산장비를 전시해놓은 방산·대형장비실이 있다.

실제 상황, 옥외전시장
대형장비실을 지나 연결된 옥외전시장은 육·해·공군의 과거와 현재의 주요 장비 실물을 전시하는 곳이다. 옥외전시실에는 6·25전쟁과 베트남전 당시의 대형 군사장비들이 전시돼 있다. 장갑차와 수송기 등의 일부 장비들을 직접 탑승해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옥외전시실 곳곳에는 전쟁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다양한 기념 조형물들을 볼 수 있다. 특히 형제의 상은 한국전쟁 당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적으로 만난 실제 형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따듯한 봄날, 일탈을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향했던 전쟁기념관. 조금은 묵직한 마음으로 전시실을 나와 평화광장을 다시 마주했다. 탁 트인 광장에서 즐거운 나들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에 조금이나마 묵직한 마음을 토해낼 수 있었다. 전쟁기념관은 아픈 상처와 기억만을 떠오르게 하는 전시관을 넘어 휴식을 취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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