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아띠인력거 이인재 대표

인터뷰 약속장소인 안국역 1번 출구로 나가자 커다란 인력거가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았다. 마차 같은 모양의 인력거에 사람들도 신기한 듯 관심을 가졌다. “이 인력거 지금 탈 수 있나요?” 지나가던 한 가족의 질문에 파란 옷을 입은 남자는 그 자리에서 뒷좌석에 손님을 태우고 도로 한복판으로 나아간다. 북촌 거리를 걷다보면 한 번쯤은 보게 되는 인력거, 바로 ‘아띠인력거’다. ‘아름다움이 띠를 이룬다’는 의미를 가진 아띠인력거를 타면 북촌의 풍경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북촌의 명물 아띠인력거의 젊은 사장님 이인재(남·31) 씨를 만났다.

평범한 직장인, 인력거 사업을 꿈꾸다
학창시절을 미국 보스턴 근처에서 보냈다는 이 씨는 발명가가 꿈인 호기심 많은 청년이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찾던 그에게 친구가 하던 인력거 아르바이트는 이 씨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대학 재학 중 인력거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의 추천에 처음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3개월 간 인력거 라이더(자전거로 인력거를 끄는 사람)를 하면서 이 씨는 많은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근무 시간이 유연하다 보니 20대부터 40대까지 폭 넓은 연령층의 직원이 있었어요. 직장인, 음악인 등 직업도 다양했죠. 여러 사람들이 자전거를 끄는 것으로 하나가 되는 분위기가 인상 깊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나라로 돌아온 이 씨는 평범한 직장인의 길을 걸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꽤 단순했다. 미국에서 친구들이 놀러올 때마다 함께 즐길 거리가 없어 고민하던 그가 떠올린 것이 바로 인력거였다. 그 당시 인력거는 한국에 없었지만 미국에서는 각 도시마다 있을 정도로 활성화된 관광 상품이었다. “손님들과 도란도란 얘기하며 도시 곳곳을 누비던 기억들, 직원들이 함께 모여 열심히 일하던 것들이 많이 생각났어요. 우리나라에서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느꼈죠” 이 씨는 ‘인력거라는 상품을 우리나라의 관광지에 적용시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고 곧 사업을 결심하게 됐다. “사업을 하기 위해 인력거를 떠올린 것이 아니라 단지 이 일을 하고 싶었어요” 사업을 결심한 후, 그는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과감히 직장을 그만뒀다.
 
녹록치 만은 않은 사업의 시작
미국에서 온 친구와 함께 동업을 시작한 이 씨는 인력거 2대를 이끌고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서울 도심을 돌아다니며 활동지를 찾던 그는 우연히 북촌을 알게됐다. “잘 알지 못하던 북촌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가게 주인 분들이 밥을 주기도 하고 손님도 잡아주면서 자연스럽게 이곳에 정착하게 됐죠” 열정 가득히 시작한 사업이지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한국에서 인력거가 자리 잡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것이다’ 등 주변의 회의적인 반응도 많았다. 사업을 시작한 후 초반에는 손님도 없었고 같이 사업을 시작한 친구는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1년간 계속된 불황에 그는 ‘사업을 포기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슬럼프를 겪고 있던 중, 이 씨는 정부에서 주최한 사업공모전에 참가해 대상을 받게 됐다. 지원금과 정부의 도움을 받게 되자 그는 다시 희망을 갖고 사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사업 시작 초기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만약 그때 사업공모전에서 상을 타지 못했다면 지금의 아띠인력거는 없었을지도 모르죠”

이 씨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일한 덕분인지 손님들의 반응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후 손님은 눈에 띄게 많아졌고 인터뷰를 요청하는 방송 매체도 생겼다. 사업이 잘 되자 직원도, 인력거도 늘어났다. “사람이 직접 끌어주는 것이 인력거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가까운 거리에서 손님들과 대화하며 소통하기 때문에 고객들이 더 편안해 하죠”라며 이 씨는 인력거의 매력요소를 꼽았다.

첫 손님이 기억나느냐는 질문에 이 씨는 “제주도에서 온 연인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 땐 처음이어서 손님들도 저도 아리송했죠” 그 후 그는 인력거를 끌며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프러포즈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도 있었다. “여성분을 홀로 뒷좌석에 태우고 남성분이 기다리고 있는 최종 목적지로 데려갔어요. 중간 중간에 꽃을 주는 등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기도 했죠” 인력거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 다양한 이력의 인력거 라이더들은 이미 북촌의 명물이 됐다. 왼쪽부터 루피(32, )형씨(24), 케빈(30), 이인재 대표.

아띠인력거, 인력거 시장의 중심이 되다
사업의 규모가 커지자 회사는 좀 더 체계적인 구조를 갖고 운영되기 시작했다. 먼저 직원 채용을 위한 시험이 생겼다. 운전면허 시험처럼 교육을 받고 시험에서 합격한 사람만이 인력거를 끌 수 있도록 했다. “기본적으로 인력거는 세발자전거와 다름없기 때문에 타는 것이 크게 힘들지는 않아요. 그러나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안전 교육을 시키고 손님 응대법 등을 가르치기도 하죠” 이렇게 교육을 받아 선발된 32명의 직원들은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제 갓 20살이 된 대학생부터 영어교재를 만드는 프리랜서, 40대 직장인까지 가지각색이다. 그가 바랐던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분위기’를 마침내 한국에서 ‘직접’ 실현시킨 것이다.

북촌을 무작정 돌아다니던 이전과는 달리 일정한 코스 또한 생겼다. 손님들은 취향에 맞게 로맨스, 익선동, 역사 등의 주제로 나뉜 코스를 골라 탈 수 있다. 이중 이 씨가 가장 추천하는 곳은 역사 코스다. 역사 코스의 주제는 ‘과거’로, 창덕궁 일대를 돌아다니며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전통 한옥을 볼 수 있는 ‘은덕문화원’부터 창덕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북촌 1경’까지 구경할 수 있어 부모님과 함께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짜여있는 코스가 아니더라도 손님이 원한다면 다른 곳을 가기도 한다. 

이 씨의 사업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자 아띠인력거를 따라한 경쟁사들도 생겨났다. 같은 ‘인력거’라는 상품을 이용해 다른 지역의 관광지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다. 그는 “인기를 실감할 수 있어 신기하기도 했지만 작은 것 하나 하나 모두 따라하는 걸 보니 당황스러웠다”며 “각자 개성을 갖고 인력거 사업을 한다면 좋을 텐데”라고 덧붙였다. 타 업체에서 안전 교육이 철저하게 이뤄지지 않아 발생하게 되는 사고의 위험성도 걱정이다. “사람들이 사고의 원인을 ‘인력거 사업’ 자체로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이인재 씨
그는 창업을 꿈꾸지만 여러 이유 때문에 포기하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고정관념에 갇혀 있기보다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은 채 미래를 꿈꾸라는 것이다. “본인이 가고 있는 길만 가야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상황은 언제나 바뀌기 마련이니까요. 현재의 상황 때문에 미래를 단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또한 그는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말한다. 사소해도 좋으니 말이다. 그는 “말은 쉽지만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안다”며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많은 일에 욕심을 부리지 말고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목표 외에 것을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인력거 사업을 통해 자신이 사람들의 인식을 조금씩 바꿔 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해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조금 더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봤으면 하죠” 아무도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인력거 사업이 잘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조금만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가 보인다. 이 씨는 “앞으로 이 회사가 더욱 성장해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 단기적으로 목표했던 것을 올해 모두 이뤘다고 말한다. 이 사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도 생겼고 인력거를 찾는 손님들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계획했던 일을 다 이루고 나자 그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그는 “동기부여가 예전보다 부족한 느낌이 든다”며 “앞으로 이 일을 계속 하면서 나를 만족시킬 만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새로운 목표를 찾는 것이 그의 목표가 된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이인재 씨, 그는 오늘도 인력거를 타고 새로운 꿈을 찾아 북촌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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