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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길, 노란 조끼가 함께한다르포 -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
정서빈·이혜민 기자  |  smpjsb87@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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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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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혜민 기자>

지난 2일(목) 오후 9시 반,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용중지구대’를 찾았다. 봄비에 어울리지 않게, 거센 빗줄기와 우렁찬 천둥소리가 끊이질 않던 날이었다. 거센 비바람을 뒤로하고 지구대 안으로 들어서자 노란 모자와 조끼를 입은 아주머니 두 분이 나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우비차림에 우산 하나만을 든 채 길을 나서는 명진윤(여·56) 씨와 제영란(여·51) 씨. 스카우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들의 손에 들린 빨간 야간안전봉과 노란 조끼 뒤에 적힌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3월 9일(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두 스카우트의 담당구역은 ‘후암동’과 ‘해방촌’ 일대다. 하루 3 시간을 매일같이 걸어다녀서일까. 어두운 밤길을 걷는 스카우트들의 발걸음엔 두려움이 없었다. 늦은 밤길을 여자 두 분이서만 다니면 무서울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이 길을 여자 혼자 걸으면 얼마나 무섭겠어”라고 말하던 두 사람이었다.

“120 다산콜센터로 전화하세요”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 서비스가 시작되는 오후 10시 정각이 되자, 스카우트들은 용중지구대를 나섰다. 다들 아까보단 잦아든 비에 감사하며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사고가 발생할만한 어두운 곳을 살피며 걷다 보니 어느새 큰 길가에 도착했다. 근처 마을버스정류장에 다다르자, 그곳엔 오늘의 첫 번째 신청자 정혜주(여·22)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 씨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기 몇 분 전 서비스를 신청했다. 정 씨처럼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 도착하기 30분 전, 미리 ‘120 다산콜센터’ 또는 각 구청 상황실로 전화해 신청하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신청자의 이름과 연락처, 만날 장소를 말하면 신청이 접수된다. 이후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하기 위해 해당구역의 스카우트에게 신청자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가 전송된다. 정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스카우트가 미리 그녀의 신청을 보고받아 시간에 맞춰 약속장소인 버스정류장으로 나온 것이다. 간단한 본인 확인을 마친 후, 세 사람은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뗐다.

집으로 향하는 길, 스카우트와 그녀 사이엔 별다른 말이 오가지 않았다. 스카우트가 정 씨에게 서비스를 간단히 소개하거나 날씨에 대해 말하는 것이 전부였다. 원칙적으로 스카우트는 이용자에게 먼저 사적인 질문을 해선 안 된다. 이용자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정 씨가 서비스를 이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평소 어두운 골목길이 많아 집으로 가는 길을 무서워하는 그녀에게 친구가 서비스를 이용해보라며 추천했다. 집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었다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다시 어두운 골목길을 몇 번 꺾어 들어가니 정 씨의 집이 보였다. 집 앞에 다다르자 정 씨는 스카우트가 내민 일지에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를 기입했다. 이렇게 일지를 작성하는 건 스카우트 이용 현황을 보고하기 위해서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정 씨는 “늘 혼자 걷던 길을 스카우트 분들과 함께 하니 든든했다”며 감사를 전했다. 그녀는 “앞으로도 학교 수업이나 아르바이트로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다시 스카우트 분들과 동행하고 싶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제영란 스카우트는 정 씨처럼 젊은 여대생을 볼 때면 딸이 생각난다. 사실 제영란 스카우트가 이 활동에 참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그녀의 딸 때문이다. 지인의 소개로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에 대해 알고 있던 차, 스카우트에 대한 딸의 친구 이야기를 듣고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녀는 “때마침 스카우트를 모집하던 시기여서 기쁜 마음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정 씨와 헤어지고, 스카우트들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두 번째 신청자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진윤 스카우트는 두 번째 신청자에게 전화를 걸어 5분 후 갈월복지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장소로 향하는 와중에도 스카우트들의 활동은 이어졌다. 혼자 걸어가는 여학생이나 아주머니들을 볼 때면, 홍보 명함을 나눠주며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입니다. 조심히 가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두 번째 신청자 양치옥(여·56) 씨가 눈에 띄었다. 스카우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낯설지 않은 양 씨. 근처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갈 때면 종종 이용하기 때문이다. 양 씨는 평소 챙겨보던 지역소식지를 통해 서비스를 알게 됐다. 그녀는 “늦은 시간에 혼자 걸어가는 날이면 무서운 마음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지만 스카우트와 함께 걸으면 안전한 것 같다”며 이용 소감을 말했다.

양 씨도 무사히 귀가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양 씨를 집으로 들여보내고 나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문득 시계를 보니 어느덧 11시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스카우트들은 순찰을 위해 주변 골목길을 둘러보기로 했다. 큰 길가에 있는 주차장부터 좁은 골목길 안쪽까지 스카우트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스카우트가 주의 깊게 살피는 곳이 있었다. 바로 주택가에 위치한 빌라의 1층 주차장이다. 양쪽으로 주차장이 늘어선 길이면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스카우트들도 덜컥 겁이 난다고. 이렇게 매일 여성들의 안전을 신경쓰다 보니 스카우트들은 평소에도 거리의 사각지대를 유심히 살펴보게 됐다. 제영란 스카우트는 “스카우트 활동 덕에 이젠 어둡고 으슥한 골목이 눈에 들어온다”며 “작은 부분에 신경 쓰는 것도 여성들의 귀갓길 안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골목길의 가로등도 살폈다. 가로등이 꺼져있거나 설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을 알아뒀다가 다음 날 아침, 구청에 수리 또는 설치를 요청하기도 한다. 그날도 얼마 전까지 꺼져있던 가로등이 켜진 것을 본 그들은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안녕하세요, 여성안심스카우트입니다”
밤 11시가 지나서도 활동은 계속됐다. 신청자가 없을 때 그들은 혼자 걸어가는 여성이나 학생에게 다가가 “어느 전철역으로 가세요?”라며 직접 동행을 제안한다. 서비스를 신청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직접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날, 제안을 받은 주인공은 바로 김수진(여·40) 씨였다. 처음에는 당황하는 듯했지만 명진윤 스카우트가 “서울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여성안심귀가서비스입니다”라고 설명을 덧붙이자 “아~”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뒀다. 명진윤 스카우트는 서울역으로 향한다는 그녀에게 “큰 길이 나올 때까지 동행해드리겠다”며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제의 취지, 이용방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어둑한 밤길을 10분 정도 걷고 나니 후암동 스카우트의 활동영역을 벗어난 한강대로 96가에 도착했다. 김 씨는 “스카우트와 동행하면 밤길에 혼자 걷는 무서움이 조금이나마 사라진다”는 말을 끝으로 떠났다. 작별인사를 건네며 스카우트는 김 씨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이용하라고 말해주세요”라며 홍보도 빼놓지 않았다. 보다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혼자서 걸어가는 김 씨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명진윤 스카우트는 “그래도 수진 씨처럼 기분 좋게 서비스를 이용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뿌듯하다”며 힘을 내서 또 다른 이용자를 찾아 나섰다.

스카우트들은 다시 발걸음을 돌려 후암동 일대를 돌아다녔다. “혼자가세요? 저희와 집 앞까지 같이 가세요” 스카우트의 살가운 제안도 계속됐다. 때마침 3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우산 없이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스카우트들이 “어머 저 분, 비 맞고 가시네”라며 뛰어가 우산을 씌워드렸다. 그녀는 갑자기 다가온 수상한 사람들을 향해 얼굴을 찌푸리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스카우트들이 “괜찮아요”라며 경계심을 풀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두 분의 스카우트는 그녀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떨어져 동행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스카우트의 제안를 거절한다. 스카우트와 함께한 그날에도 제안을 거절한 사람이 10명은 족히 넘는다. 명진윤 스카우트는 “갑자기 다가가니 부담스러워 한다”며 “거절하고 쌩하니 지나가버리면 상처를 받기도 한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스카우트에게 손을 내밀어 보세요”
계속되는 순찰과 장대같이 내리는 비에 스카우트들도 점점 지쳐갔다. 그 때 명진윤 스카우트의 핸드폰이 울렸다. “가족 단체 채팅방이 야단났다”며 기자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다. 궂은 날씨에도 활동하는 엄마를 걱정하는 딸들의 문자가 가득했다. ‘엄마 너무 미안해’ ‘오늘 비가 많이 오는데 그만하고 들어와’라며 걱정하는 딸들이 있어 명진윤 스카우트는 기운을 차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사실 스카우트 활동이 항상 힘들기만 한 건 아니다. 제영란 스카우트는 “한 번은 활동 중에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20대 여성분을 발견했다. ‘위험하다’는 생각에 지나칠 수가 없더라. 결국 집까지 데려다 주고 나니 그녀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가 힘이 됐다”며 미소를 띄었다. 명진윤 스카우트도 “이용자가 귀갓길에 잠시 편의점에 들려 고맙다며 음료수를 건넸었다”며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씨가 느껴질 때마다 보람차다”고 했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비가 점점 거세졌다. 원칙적으로 스카우트 활동은 새벽 1시까지이지만 궂은 날씨로 인해 평소보다 빨리 용중지구대에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활동을 끝마치지 못했다는 생각에 스카우트들은 편치 않아 보였다.

스카우트들은 아직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 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그래도 오늘은 비가 내려서 4명이나 서비스를 이용했지만 평소에는 서비스 이용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명진윤 스카우트는 “사람들이 서비스에 대해 알면서도 편하게 이용하지 못하는 게 가장 안타깝다”며 “한 여고생도 전화로 신청하기가 어색해 이용하지 않는다더라. 쑥스러워 하지 말고 편히 이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영란 스카우트 역시 당부의 말을 전했다. “세상이 무섭다. 엊그제 대구에서도 귀가 중이던 30대 여성이 3명의 남성들에게 30시간 동안 납치됐다가 풀렸다”며 “안전이 중요하니 아무리 집이 가까워도 120 다산콜센터로 꼭 전화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스카우트들에게 여성과 학생의 안전을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50대의 나이에 어두운 밤길을 매일같이 3시간씩 걸으면 힘들 법도 한데 스카우트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딸 같은 이들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봐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그들. 올해 12월 중순까지 더 많은 사람들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명진윤 스카우트와 제영란 스카우트는 오늘도 후암동의 밤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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