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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경, 그녀의 도전은 계속된다
오진화 기자  |  smpojh85@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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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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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지난 두 차례에 걸쳐 ‘자랑스러운 숙명인’을 만났다. 제1291호(3/2발간)에는 이다도시(프랑스 언어·문화 전공) 교수를, 제1293호(3/23발간)에는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이었던 정희선(약 78졸) 동문의 이야기를 전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번엔 장민경(산업디자인 11) 학우 차례다. 지구상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어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히말라야 산맥. 장 학우는 지난해 히말라야 체르코피크 정상 등반에 성공했다. 등반 당시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본지는 지난달 25일(수), 서울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장 학우를 만났다.

히말라야 등반을 앞두고
지난해 8월, 한 광고가 장 학우의 눈을 사로잡았다. 바로 ‘코오롱등산학교’에서 진행하는 히말라야 원정대 모집 공고였다. 그렇지만 때는 늦은 뒤였다. 모집기간이 이미 끝나버렸던 것. 포기하려던 그 때, 장 학우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때마침 결원이 생겨 원정대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히말라야 원정대에 지원할 정도면 등반 실력이 수준급일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그녀는 극구 부인했다. 사실, 장 학우는 산 타는 걸 무척 싫어한단다. 실제로 등반하기 전, ‘포기할까’라는 생각을 하루에 수십 번도 더했다. 그런 그녀가 히말라야 등반이라는 힘든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젊기에 도전해볼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20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은 너무 소중하지 않나요.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언제 그런 경험을 해보겠어요.” 그녀의 결정을 두고 가족과 친구들은 걱정보단 응원을 해줬다고. “친구들은 은근히 저를 부러워하더라고요. 자기도 기회가 된다면 하고 싶다고들 했어요.”

의욕만 앞선다고 히말라야 등반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실전을 앞두고 장 학우는 3개월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했다. 가장 중요한 건 체력적인 부분이었다. 가장 먼저, 원정대원들과 함께 북한산 인수봉에서 1박 2일 동안 교육을 받았다. 체력이 부족했던 탓에 교육 초반부터 낙오되기도 했다. “암벽을 손쉽게 등반하는 대원들을 뒤쫓다 10분만에 쓰러졌어요. 원정대원 대부분이 산악회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실력자 분들이셨거든요.”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2주 뒤, 20kg 완장을 메고 매일 23km의 비등산로를 걷는 희양산 비박산행이 이어졌다. 밤이 깊어지면 침낭에 몸을 뉘여 잠을 청했다. “산행이 너무 힘들어서 잠시 한 시간만 죽었다가 일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웃음)” 이밖에도 감압실에서 저산소증을 체험하기도 하고 팀워크 훈련 등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물론 개인적인 노력도 빼놓지 않았다. 체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바쁜 일상생활 중에도 주말마다 등반하는 걸 잊지 않았다.

등반에 필요한 장비를 준비하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발 하나만 하더라도 여러 종류를 준비해야 해요. 트레킹화는 물론이고 빙벽등반을 할 때 신어야 하는 빙벽화도 필요해요. 그런데 빙벽화 가격만 해도 백만 원이 훌쩍 넘어요” 고가의 장비들을 구입할 수 없었던 장 학우는 발품을 팔아 문제를 해결했다. “장비 준비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다행히 운이 좋게도 등반 업체를 수소문한 끝에 총 5명의 사람들에게 장비를 빌렸죠”

체르코피크 정상에 올라서다
히말라야 등반을 위한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실전뿐. 장 학우가 속한 원정대는 지난해 10월 31일 출국해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시 버스로 8시간을 이동한 후 히말라야 체르코피크 정상에 오르기 위한 산행을 시작했다.

히말라야는 길고 거대하기 때문에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뉜다. 그 중에 네팔 히말라야는 에베레스트(8,848m), 안나푸르나(8,091m) 등 8,000m급 고봉 7개가 솟아 있어 ‘히말라야 중 히말라야’로 불린다. 정 학우가 등반한 체르코피크(5,742m)는 바로 이 네팔히말라야에 속한다.

높고 험준한 네팔히말라야는 원정대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등반하는 건 둘째치고 숨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고도가 높아지면 공기 밀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히말라야 산행 중, 고도 적응 훈련에 임해야했다. “일반적으로 고도 4,000m에서 5,000m로 한 번에 올라갈 수 없어요. 우리 몸이 갑작스러운 고도 변화를 감당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조금씩 고도를 높여 적응을 하는 과정을 반복했어요.”

고산병의 위험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고산병은 저지대에 살던 사람이 해발 2,000-3,000m 이상의 고지대로 이동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으로, 산소가 희박해지면서 나타나는 신체의 급성 반응이다. 고산병이 심각해져 고산뇌수종으로 발전하면 의식을 잃기도 하고 최악의 상황에는 사망할 수도 있다. “추위에 노출되면 고산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등반하는 10일 동안 머리를 한 번도 감지 못했어요. 잠을 잘 때도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끓인 물을 물병에 넣어 안고 잤죠”
음식조차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다. 배고픔과의 싸움의 연속이었다. “식욕이 없는 건 물론이고 소화도 되지 않아 구역질이 나기도 했어요. 고산병 증상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걷다가 넘어지기를 반복했죠.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비타민이나 에너지바로 영양분을 보충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정 학우의 몸과 마음은 지쳐갔다. 10일 동안 그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  뿐이었다고 한다. ‘내가 왜 여길 왔을까’라는. 그럴 때마다 그를 위로해준 건 다름 아닌 히말라야의 풍경이었다. “텐트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풍경을 바라보면, 지쳤던 몸과 마음이 눈 녹듯 녹아버려요. 하늘에 떠 있는 별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처음 알았어요. 미치도록 아름다워요. 말로는 형용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예요” 노을 지는 산을 바라보는 것 역시 등반의 낙이었다. “체르코피크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광경도 무척 경이로웠어요. 풍경에 감동해서 울음을 터뜨리는 원정대원도 계셨으니까요. 아마 그 광경을 직접 본 사람들만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히말라야 등반은 그녀가 한층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먼저, 진정한 팀워크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50대 한 남성 대원 분께서 중간에 쓰러지셔서 등반을 포기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때 다른 대원 한 분이 그 분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거예요. ‘같이 올라가자’고 말이에요. 뒤로는 자기 가방을 메고 앞으로는 형님 가방을 메고요. 1g이라도 짐 무게를 줄여야 하는 극한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어요.” 그뿐만이 아니다. 정 학우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정상 등반을 성공했는데 이제 세상에 못할 거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런 자신감이 제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줬죠.”

그에게 도전이란
장 학우의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히말라야 등반  외에도 현재, 그녀는 1인 창업에 도전하고 있다. 정부로부터 7천여 만 원을 지원받았으며 전공을 살려 패키지(package) 사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그녀는 새로운 일을 하는 게 재미있다고 한다. 색다른 걸 계획하는 게 설렌다고. 그는 현재 또 다른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14좌 등반을 할 거라고 말해요.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4개를 모두 완등하겠다는 의미죠. 엄홍길 대장님이 14좌 등반하신 분으로 유명하잖아요. 이런  목표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모두 웃으며 넘기지만 저는 스스로 알고 있어요. 그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이렇다 보니 주변에서는 이제 더 이상 일을 벌이지 말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장 학우에게 도전이란 남다른 의미다. 오히려 그녀는 가만히 있는 게 두렵다. “가만히 있다 보면 어느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익숙해지고 말거예요.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다양한 도전을 하는 건 소중한 경험이에요. 젊을 때 많이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녀는 도전이 일상생활에 예상하지 못한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도전을 하다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장 학우에게 그런 자신감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져다주고 여유를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일까, 취업 준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들에게 그녀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여유롭게 생각하라’는 말을 건넨다고 한다. “인생은 ‘여행’인 것 같아요. 짐을 조금 늦게 꾸린다고 여행을 못 가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조금 천천히 준비하는 것뿐이니까요.”

“무엇이든 꼭 도전해보세요” 장 학우가 숙명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도전을 통해서 얻은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그 성취감을 맛본 사람만이 계속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물론, 도전을 하면서 도중에 힘들고 지칠 때도 있고, 심지어 절망감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들이 자신에게 좋은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라 그는 믿는다.

그녀는 아직도 도전하고픈 게 많다. 오늘도 어디선가 이어지고 있을 그녀의 끝없는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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