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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윤나영 기자 yoonna_10@naver.com

여성에게 ‘월경’은 단순한 생리 현상이 아니다. 생물학적인 현상 그 이상의 의미다. 소녀가 여성으로 거듭나는 것. 즉, 난자가 배란이 돼 임신이 가능한 존재가 됐다는 것을 의미하니 말이다.

그런데 정작 여성들은 그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아니, 현실에서 여성들에게 월경은 마냥 ‘천덕꾸러기’ 신세다. 월경을 하는 날이면 괜스레 예민해지고 짜증이 몰려온다. 그뿐만이 아니다. 평소엔 보이지 않던 피부 트러블이 얼굴 곳곳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쉴 새 없이 무언가를 먹고 싶다. 여성들은 이렇게 한 달에 한 번씩, 자신을 찾아오는 변화가 귀찮기만 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 상황을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한 지붕 아래서 살고 있는 아빠와 남자 형제에게 쉽사리 털어놓을 수 없다. 그러니 사회에서 만나는 남성들에게는 오죽할까.

그러다 여성들은 어느새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월경이 왜 부끄러운 일이지?’


◆ 여자라면 한 번쯤은
양아름(미디어 11) 학우는 오늘도 아르바이트 사장님께 꾸중을 들었다. 어두운 표정의 얼굴로 손님들을 대했기 때문이다. 사실 양 학우는 억울하다. 평소 월경통이 심해 표정관리는 물론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 같은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지만, 남자인 사장님께 월경 중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월경 중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못해 난처한 상황에 빠진 건 양 학우만이 아니다. 지난 겨울, 친구들과의 여행으로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조은빈(경영 13) 학우는 갑자기 기운이 빠져 버렸다. 하필 여행 기간이 월경 기간과 겹쳤던 것. 월경통이 심한 조 학우는 할 수 없이 급한 약속이 생겼다는 핑계로 얼버무렸다. 남자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었기에 월경 중이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조 학우는 남자 친구들로부터 약속을 어겼다며 장난 섞인 핀잔을 들었다. 그가 월경 중임을 알지 못하는 남자 친구들을 이해하다가도 한편으론 속상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월경 사실뿐만 아니라 생리대를 꽁꽁 숨기는 경우도 있다. 조수민(경영 11) 학우가 처음부터 생리대를 숨긴 건 아니었다. 초등학생 시절만 해도 생리대를 남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럽다’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님의 교육과 생리대를 숨겨 다니는 친구들의 모습으로 인해 생리대를 숨기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조 학우는 “생리대를 공공연한 장소에 꺼내지 않는 암묵적인 규칙이 한국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생리(生理)에 숨겨진 의미
‘생리 대신 월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나요?’ 대부분의 여성들의 대답은 ‘아니오’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월경은 ‘생리’라는 단어로 불린다. 두 단어는 동의어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학술적으로 두 단어는 전혀 다른 의미다. 월경은 ‘여성의 자궁에서 주기적으로 출혈하는 생리 현상’을, 생리는 ‘생물체의 생물학적 기능과 작용 또는 그 원리’를 의미한다. 즉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생리라는 표현은 엄밀히 말하면 잘못된 것이다. 여성건강간호학회 총무이사를 역임하고 있는 송영아(안산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역시 “의학계에서는 월경과 관련해 생리라는 단어는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며 “사회적으로도 월경이라는 정식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일상생활에서 생리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된 것일까. 그러한 단어 사용에는 바로 월경이 은밀하고 부끄러운 것, 그래서 숨겨야 할 대상이라는 가치판단이 내포돼 있다. 정식명칭인 월경(月經)을 한자어 그대로 해석하면 ‘매달 지나는 것’이다. 한편, (앞서 언급했듯) 생리(生理)는 생물체의 생물학적 기능과 작용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서,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몸의 다양한 변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두 단어의 의미를 비교해보면, 월경과 생리의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그건 바로 월경에 비해 생리가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즉, 월경은 여성의 신체적 변화(생리) 중 하나다. 생리는 월경이라는 직접적인 표현보단 막연하고 포괄적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월경이라는 생리현상을 공공연하게 밝히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 그들이 말하지 못했던 이유
‘한 달에 한 번 걸리는 마법’ ‘그 날’, 우리 사회에서 월경을 돌려 말하는 것은 그리 낯설지 않다. 월경을 다른 단어로 바꿔 표현하는 것이 어느새 보편화된 것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 내에서 월경은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꺼려지는 대상이 됐다.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 한 가지, 왜 여성들은 월경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일까. 사실 월경은 여성의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 중 하나일 뿐인데 말이다.

여성들이 월경 중임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 중 하나는 월경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다. 많은 여성들은 매달 월경으로 인해 심한 복통 및 두통, 불쾌한 냄새 등 불편함을 겪는다. 사람들 사이에서 이러한 불편함이 자주 언급되다 보니 어느새 월경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부정적 인식은 여성들의 발언에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박현주(미디어 15) 학우 역시 “월경을 떠올리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며 “이 때문에 공개적으로 말하기가 어색하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성에 대한 ‘닫힌 사고’가 만연한 사회문화도 또 다른 이유다. 이와 관련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안상수 연구위원은 “한국 사회에서는 자신의 욕구를 그대로 표출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이러한 사회문화는 성에 대한 닫힌 사고를 야기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 과정에서 성에 대한 억압이 발생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월경이 성과 관련된 것으로 낙인찍혀 ‘숨겨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

송영아 교수는 ‘부모로부터의 교육’을 원인으로 꼽기도 했다.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질문을 던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대답은 “어리기 때문에 그런 걸 알면 안 된다”는 식의 말뿐이다. 이러한 대답은 서구 문화와 비교해 비교적 성에 대해 개방적이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 탓이다. 이는 아이들에게 성과 관련된 것은 곧 ‘수치’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그러다보니 성과 관련된 월경을 여성의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 아니라 숨겨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월경과 ‘여성성’을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한국 사회는 여성에게 ‘아름다움’과 ‘차분함’의 이미지를 강조해왔다. 주목해야 할 것은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이미지와 월경의 느낌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먼저, 월경의 의미지는 여성성의 상징인 아름다움과 상응하지 않는다. 월경과 불쾌한 냄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또한 월경에 대해 거리낌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차분함이라는 이미지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여성들만의 신체적 특징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침착하고 조용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보면, 월경과 관련된 일체의 사항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을 때 비로소 여성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어느새 여성에게 월경은 밖으로 내뱉어선 안되는 단어로 각인됐다. 이는 오히려 여성들을 더 민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월경을 드러냄에 따라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시선이 곧 두려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조수민 학우는 “월경을 언급하는 것은 여자들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도리어 남자가 월경이라는 단어를 먼저 꺼낼 때면 무례하고 불쾌하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습관적으로 월경을 감추거나 혹은 반대로 별 거리낌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밝힌다. 월경에 대한 여성 자신의 태도는 전적으로 개인이 선택할 문제다. 하지만 이것만은 스스로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런 의문 없이 월경을 숨겨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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